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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 유시민 예언이 실현되려면

[서평] 광복절 앞두고 읽은 유시민의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등록|2024.08.15 19:10 수정|2024.08.15 19:10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이해라고 해서 '잘 알아서 받아들인다거나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는 사전적 의미는 아니다. 앞 문장에서 말한 이해란, '이성적인 앎'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한 책을 보고 일의 전말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뉴스 한 토막으로 사건의 진실을 알기란 어렵다. 뉴스 해설이나 비평을 들으면 이해가 수월하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읽고 헤아릴 수 있는 책이면 더욱 좋다. 모를 때는 답답하기만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한국 정치가 왜 혼탁하다고 하는지, 언론을 왜 불신한다고들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유시민 작가의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다. 책 제목의 '그'는 윤 대통령을 일컫는다.
 

▲ 유시민의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생각의 길,2024) ⓒ 생각의길

 
유 작가는 책에서 '국민의힘'이라는 당명 대신 '국힘당'이라고 줄여 쓴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힘당'이라 약칭을 쓴 이유를 해명하고 넘어가자. 나는 '국민의 힘'을 믿는다. 경제 발전도 민주화도 모두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국민 절반이 싫어한다. 그래서 둘을 구분하려고 약칭을 쓴다." (p. 34)

국민은 지난 총선에서 의사 표시를 확실히 했다. 그럼에도 현 정부가 정책과 국정에 임하는 태도는 그대로다. 오히려 논란은 가속화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가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는 더욱 멀어졌다. 오물 풍선이 언제 또 날아올지 모른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묵인하는 외교참사까지 일어났다. 대통령의 굴욕적 외교는 다수 국민에게 모욕감을 준다.

경제지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대통령과 배우자에 대한 의혹도 가라앉지 않는다. '이·채·양·명·주'(이태원 참사, 채해병 사망 수사 외압 의혹, 양평고속도로 의혹, 배우자의 명품가방 수수와 주가조작 의혹) 말고도 국민들의 분노와 의혹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이어진다. 이 책은 일련의 일들에 대한 작가의 시각과 해석을 담았다.

유 작가는 윤 대통령의 당선을 '정치적 사고'로 보았다. 사고의 원인은 여럿이겠지만, 특히 언론의 영향이 컸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에서 시민들은 두 후보자(윤석열과 이재명)를 거의 같은 비율로 지지했다. 당시 대선 결과 윤석열 후보가 48.56%, 이재명 후보는 47.83%로 득표율 차이는 0.73%P였다(약 24만 표).

이번 총선에서는 민주당을 조금 더 지지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언론은 압도적으로 윤석열 후보와 국힘당을 편들었다고 책은 분석한다. 민주당 성향 언론사는 극소수의 조그만 인터넷 신문뿐이라고 유 작가는 진단했다. '한국 언론은 재벌 대기업과 한몸이고 국힘당의 전위이며 부패한 권위주의 문화의 수호신이다'라고 일갈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에 앞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창밖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1.29 ⓒ 대통령실 제공

 
저자는 그러면서 세상의 균형을 위해서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신문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표를 준 유권자들도 그가 이토록 무지하고 무능하고 포악한 사람인 줄 몰랐다. 윤석열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와 같다. '의도'가 아니라 '본성'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 도자기가 깨지는 것은 그의 의도와 무관한 '부수적 피해'일뿐이다." (p.7)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하여 유 작가는 어느 방송에선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리가 그 사람을 보여준다. 어떤 자리에 갔다고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가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면이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국민을 속이지 않았다. 검찰총장으로서 대통령 후보로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p.7)

'국민이 언제나 옳다'는 말은 립서비스였고, 사실은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원하는 것을 무시하고 정반대 선택을 주저 없이 해왔다고 작가는 비판했다. 전두환이 극소수 정치군인을 권력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처럼, 그는 극소수 정치 검사를 권력의 핵심에 기용해서 권력을 운용한다고도 했다. 이러한 태도는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의 사태는 더욱 충격적이다. 지난 8일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생전에 그는 영부인 명품 가방 사건 처리 문제로 극심한 심적 고통을 느꼈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의 조사 실무를 총괄했던 김 국장은 이 사건을 수사기관에 이첩하자고 했으나 그런 의견은 묵살되었다고 한다(관련 기사: '김건희 명품백 ' 조사 지휘, 권익위 국장 사망...무슨 일 있었나 https://omn.kr/29q6d ).

권익위 수뇌부는 사건의 종결을 '혐의 없음'으로 밀어붙였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반대였던 것이다. 공무원으로서의 양심에 큰 상처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숨을 내던질 만큼의 고통이었던 것일까.

'인사 참사'도 일어났다. 최근의 인사 청문회에서 불법적인 법인카드 사용 문제를 중심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방통위원장 임명을 둘러싸고 설왕설래했으나, 결국은 이진숙이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이 또한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형석이 관장으로 임명되었다.

독립기념관장 자격 논란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신임 김형석 관장이 뉴라이트 성향이라는 게 주된 쟁점이다. 본인은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하지만, 광복회를 비롯한 역사학자 그리고 독립운동 관련 단체는 김 관장이 뉴라이트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8월 12일, YTN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신율의 정면승부'에 출연해서, 뉴라이트라는 사람들 치고 스스로 뉴라이트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또 뉴라이트는 형체가 없는데도 해독을 끼치는 연탄가스 같다고 말하면서 강한 반발을 나타냈다(관련 기사: "윤석열 정부, 친일 역사 쿠데타 멈춰야" https://omn.kr/29spp ).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단체는 8월 15일에 열리는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여당에서조차도 뉴라이트 논란이 있는 인사 임명을 부적절하다고까지 하였다.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시민들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광복 79주년 국회·시민사회·종교인 1000인 선언’에 참석해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 역사 왜곡에 동조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광복절 같은 뜻깊은 경축일에 이게 무슨 일인가. 일본이 현 사태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조롱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한 선조들께 미안하지도 않은가. 온 국민이 기뻐해야 할 광복절이 반쪽짜리 경축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형석 신임 관장 주장대로 뉴라이트가 아니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스스로 사퇴하고 물러나는 게 맞다고 본다. 아니면 정부라도 나서서 임명을 철회하고 국민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혼탁한 우리의 현실에 직면한 대통령은 그의 운명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유 작가는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자진 사임
둘째, 야당과 협치
셋째, 대결 노선

유 작가는 가장 바람직한 것이 '자진 사퇴'라고 보았다. 본인과 가족 그리고 한국 정치와 국민의 불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진 사퇴는 안 할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도 기대하기 어렵다.

유 작가는 현 대통령이 결국 대결 노선을 갈 것이라고 예언한다. 대결 노선은 지금처럼 '대통령의 권력을 휘둘러 야당과 싸우는 길이다'. 유 작가는 말한다. 대한민국이 멍들고 상처 난 건 맞지만, 아직 뼈가 부러진 건 아니라고. 그래서 희망은 있다고. '희망은 힘이 세다'고도 말했다.
"코끼리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간 것은 사람이 허락한 탓이다. 코끼리를 욕할 게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을 탄핵해 교도소에 집어넣는다고 해서 국민이 책임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사임을 원할 때는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지 않고 물러나는 것이 좋다. 그런 결단을 북돋우려면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사면법을 개정해 미국식 '놀리 프로시콰이(항구적 불기소 특별사면)'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감옥에 보내야 마땅한 악당을 풀어준다고 비난하지 말라.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만하지만 이 제도는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만 사면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해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의 잘못도 함께 사면하는 제도다. 주권자인 국민이 후임 대통령을 통해 자기 자신을 사면하는 것이다."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p. 284)-

앞으로 남은 3년 동안을 지금처럼 의혹과 분노 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퇴로'를 열어주는 게 현명한 전략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데, 대통령이 그냥 물러날 리 있겠는가." 최근의 어지러운 우리나라 정치 사회 현상에 대한 궁여지책으로 나온 대안으로 읽힌다.

박물관에 코끼리가 들어왔다.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서 온 건 아니다. 코끼리는 도자기의 가치를 모른다. 그저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온 것뿐이다. 움직일 때마다 도자기가 떨어져 깨진다. 코끼리는 잘못이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코끼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어찌 되었든 코끼리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관건이다. 코끼리가 박물관을 잘 나갈 수 있도록 더 이상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퇴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코끼리가 잘 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건 코끼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나마 남아 있는 도자기를 위한 것이다. 일을 더 이상 망쳐서는 안 되니까.
덧붙이는 글 브런치스토리에 게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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