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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스멀스멀... '철도 지하화', 혈세 써서 지역 불균형 키우나

기어이 본궤도 오른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사업... 세 가지 조건 선결돼야

등록|2024.11.17 11:20 수정|2024.11.17 11:20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기자말]

▲ 도심 철도의 지하화를 두고 논쟁이 거센 가운데, 국토교통부가 철도 지하화 제안서의 1차 제안을 받고 나섰다. 사진은 서울 용산역 구내의 철도 모습. ⓒ 박장식


인프라 불균형만 키울 것이 뻔한 사업이 추진 본궤도에 올랐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5일까지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제안서를 5개 지자체로부터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철도 지하화 사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그리고 총선 때마다 늘 나오곤 했던 철도 지하화 공약이 이제 본격적으로 현실화되는 셈. 이번 통합개발 제안에는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 대전광역시, 경기도 등 철도와 도시철도가 관내 도심 지역을 통과하는 총 5개 지자체가 나섰다.

철도 지하화. 필요에 따르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의 제안은 시내 지상철도 94%를 지하화하겠다는 등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기에 어려운 제안이다. 아니, 가능하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지하화는 인프라를 중복으로 빨아들이는 이기주의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제시 예산, 턱없이 부족해... '민자유치'도 리스크 존재

인프라를 조성하기 위한 비용은 정해져 있다. 올해 정부 SOC 예산은 26조 4000억 원. 가용 가능한 시·도의 예산을 더한다 하더라도 지하화를 하기에는 빠듯한 예산이다. 꼭 필요한 곳에만 지하화 공사를 하면 모를까, 서울특별시는 한 술 더 떴다. 서울을 지나는 철도 67.6km가량을 죄다 지하에 묻겠다고 선언했다.

서울특별시는 25조 6000억 원가량의 예산으로 경부선·경인선 일대 지하화가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우선 두 구간을 지하화 한 뒤, 그에 따라 나오는 상부 개발 이익으로 경원선 지하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란다.

하지만, 겨우 25조가량으로 전 구간 지하화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실제 지하화 공사가 완공된 경부고속도로 동탄 구간의 사례를 보면 '글쎄올시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당초 10차선 고속도로의 1.2km 구간을 지하화하기 위해 꾸린 사업비는 3400억 원이었지만, 실제로는 518억 원가량을 더 썼다.

비슷한 철도의 예도 들어볼까. 가까운 일본에서는 도쿄 근교에 위치한 가와사키 시를 지나는 광역전철인 '도큐 다이시선'의 일부 구간을 지하화했던 바 있다. 두 가닥 선로 2.1km를 지하화하는 데 들었던 예산은 1426억 엔, 한화 약 1조 3000억 원이 들었다.

물론 가와사키 시의 경우 연약 지반에서의 공사였기에 공사비가 많이 들었다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서울 관내의 철도 규모는 예상보다 크게 방대하다. 경부선의 서울 도심 구간은 여섯 가닥의 철도가 오간다. 경인선의 구로-동인천 구간도 네 가닥 선로로 이루어져 있다. 25조 6000억 원의 예산, 많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부족한 부분을 민자로 추진한다고 해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민자 사업은 결국 공사로 발생한 손해를 사업 추진 기관, 국가에 부과한다. 결국 조금이라도 사업이 꼬인다면 나랏돈이 쓰일 여지가 크다. 고속도로와 민자철도 등에서 손실 보전금을 국가가 지원해주는 문제로 갈등을 빚은 여러 사례를 떠올린다면 더욱 그렇다.

30년 넘게 걸렸던 타이베이 지하화... 한국은 덜할까

▲ 1979년부터 2011년까지, 타이베이는 타이베이역을 포함한 16km 구간의 도심 철도를 지하화하는 공사가 이어졌다. 사진은 타이베이역. ⓒ 박장식


지하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유발할까. 대만의 최대 도시, 타이베이의 철도 지하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타이베이 시는 타이베이역을 포함한 도심 철도, 반차오-난강 간 16km 남짓의 구간을 지하화했다. 2000년대 신규 개통된 대만고속철도 역시 지하로만 타이베이 시내를 통과한다.

타이베이 도심 철도 지하화에는 복잡한 두 가지 이유가 담겼다. 이른바 '국공내전' 이후 타이베이 시가 중심 도시로 크게 발전하면서 도심 한복판을 지나는 철도로 인해 불편을 겪은 것도 컸지만, '핑퐁 외교'로 인한 미중관계 개선으로 양안 간 전쟁 위협이 커지자, 철도와 시설물의 폭격을 막고 방공호로 쓰기 위함도 컸다.

그렇게 1979년 장징궈 당시 총통이 타이베이역을 중심으로 한 지하화 계획을 승인하면서 본격적으로 지하화 프로젝트가 실시되었다. 타이베이역을 전후한, 즉 도심 핵심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공사는 1989년 완공되었고, 도심 전 구간, 즉 반차오-타이베이-난강 구간의 공사는 2011년에 완공되었다.

총 32년이 걸렸던 타이베이 도심 철도 지하화 프로젝트는 대도시의 간선철도를 전부 지하화했다는 성공적인 사례로 남았다. 특히 타이베이 도심 핵심 구역의 경우 차량기지·검수고 등에 쓰이던 공간 등을 지하화 공사 도중 임시 시설물이 들어설 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비교적 원활하게 공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이었다. 지하화 공사 초기 타이완 정부는 178억 대만 달러(한화 약 7700억 원)를 예산으로 잡았던 데다, 이 중 절반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차관으로 확보했다. 이러한 차관은 2003년에서야 완납할 수 있었고, 정부의 부담 역시 오랫동안 이어졌다.

특히 공사 기간 임시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간의 공사에서는 철도가 파행 운행하기도 했다. 간선열차의 종착역이 도심에서 떨어진 역으로 변경되는 일도 잦았다. 이러한 불편 끝에 2011년 공사를 완료하기까지, 투입된 예산은 모두 약 1800억 대만 달러(한화 약 7조 5000억 원)에 달했다.

타이베이 도심 철도 지하화는 도심 경관이 개선되고, 교통 흐름이 좋아지는 장점을 가져왔지만, 뚜렷한 단점도 안고 왔다.

타이완 정부의 교통부 산하 철도국이 지하화를 계기로 만들어진 만큼, 정부의 인력·예산이 다른 지역의 철도 개량 및 신규 철도 노선 개설에 많은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타이완에서 고속철도를 제외하고 새로 개통된 간선철도는 타이완 남부 지역을 연결하는 남회선이 1985년 개통된 것이 마지막이다.

'님비 현상'보다 악질... 인프라 홀로 빨아 먹는 철도 지하화

▲ 경의중앙선의 응봉역 인근 구간. 응봉역에서 서빙고역까지의 구간은 대다수가 한강·간선도로와 접해 있어 지하화의 편익이 크지 않은 대표적인 구간이다. 서울특별시의 제안서에는 주거지가 가깝지 않은 지역까지 모두 지하화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 박장식


특히 서울시가 지하화가 필요하다며 제시한 구간 중에는 거주지와 산·하천으로 이격되어 있어 소음 피해가 크다고 보기 어려운 곳(경원선 월계동 구간), 철도 선로와 병주하는 강변 도로가 자연스럽게 방음벽 역할을 하는 곳(경의중앙선 한남동 구간) 이 포함되어 있다. 비싼 예산을 들여 지하화를 추진할 이유가 없는 구간이다.

이렇듯 무분별한 철도 지하화 요구는 혐오 시설의 유치를 거부하며 집단 행동을 하는, 이른바 '님비 현상'보다 악질에 가까운 현상이다. 역은 그 자리에 있길 원하고, 편리한 이동을 하길 원하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세권 개발 호재는 누리고 싶으면서, 내가 그 인프라를 누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아쉬운 점을 가장 비싼 예산을 써서 해결하겠다는 점은 이기주의다. 지하화는 지역의 교통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비수도권·비광역시 지역은 언제나 인프라가 부족하다. 대도시에서는 언제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철도가 없는 것은 둘째치고, 고속도로나 철도 등의 인프라 부족으로 지역 밖과 교류하는 것마저도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도 많다. 국내에 '철도가 없는 시·군·구'는 여전히 50여 곳이 넘는다.

그들을 위한 예산을 따로 빼놓는다 쳐도 문제는 여전하다. 지하화 공사 기간 동안 불편을 겪는 것은 지역 주민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지하화 하는 구간을 거쳐 또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애꿎은 다른 시민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미 추진된 지하화의 사례를 들어볼까. 영동선 강릉역의 지하화를 위해 2014년부터 3년 동안 강릉역이 문을 닫았고, 이 기간 도심에서 20km 가까이 떨어진 정동진역이 강릉의 관문 역할을 해야 했다. '경의선숲길'로 이름이 난 경의중앙선의 수색-용산 구간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공사 여파로 열차 자체가 다니지 못했다.

지하화 공사는 아무리 신경을 써서 한들 철도 이용에서 운행 횟수 축소·운행 중단 등 유·무형의 손해를 보고, 사고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2007년에는 지하화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경의선 가좌역에서 지반 침하 사고도 났었다.

멀쩡히 전철을, KTX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는 '역세권' 거주민을 위해 '목숨을 건 여행'을, 그리고 '30분 일찍 일어나 대체 교통수단을 타고 불편한 출근'을 할 이유는 없다.

꼭 필요한 구간만, 짧게, 시민 불편 없이 해야

그렇다고 해서 모든 철도 지하화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단 모든 철도를 지하화하고 봅시다"라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최소한도 내에서 꼭 필요한 만큼의 구간만을 지하화하는 것이 지역 균형 개발의 측면에서도 옳은 일이다.

꼭 필요한 구간이라면 지하화해야 한다. 철도가 심각할 정도의 지역 단절을 유발하고, 그리고 그로 인해 심각한 교통 정체 등 유·무형의 피해 비용이 발생하는 서울 가산동 수출의 다리 일대와 같은 곳이 대표적인 예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지하화 공사로 인해 불편을 겪을 시민들을 위한 대안이 필연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전광역시가 내놓은 대안은 현실성이 있다. 도심 철도를 무리하게 지하화하는 대신, 철로 위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데크화'를 제안했다. 기존 도시 기반 시설을 훼손하지 않고, 상부에 공원이나 건물 등을 올릴 수 있다. 예산·현실성, 그리고 철도 안전이라는 명분에서도 적합한 대안인 셈이다.

결국 지하화 공사를 하기 전에 세 가지 평가 조건이 선결되어야 한다. ▲ 지하화가 아닌, 데크화·방음터널 설치 등 다른 대안이 없는가 ▲ 불가피한 구간이라면, 편익에 비해 지나치게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가 ▲ 공사 구간에서 초래될 열차 운행 지장에 따른 '다른 지역 시민'의 불편을 해소할 방안이 있는가의 조건이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12월에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제안서의 1차 대상 사업을 선정할 계획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인프라 과잉 확보' 대신 꼭 필요한 구간을 짧게, '무작정 지하화' 대신 다른 대안을 포함해 추진하는 지자체에게 손을 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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