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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만 위기일까... 위험한 윤 정부의 자화자찬

[오기출의 기후 리터러시] 윤석열 정부 말 믿고 안심? 수출길 막힐 수 있다

등록|2024.08.16 11:57 수정|2024.08.16 11:57
 

▲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자동차 화재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 김성욱

 
강력해지는 국제 규제 정책에 둔감한 우리나라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자동차 화재가 그 중 하나다. 화재가 난 벤츠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는 시장점유율 세계 1위인 중국 CATL 제품으로 알려졌지만,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중국 파라시스 제품이 탑재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전기차를 소유한 이들은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 배터리 제조사, 안전성 여부, 구성 물질, 환경성 등에 대한 기초적인 이력을 공개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전기차 소유주가 배터리 제조사를 알고 싶으면 개인적으로 전기차 공업사에 가서 확인해야 했다. 배터리에 대한 정보가 깜깜이다 보니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동안 한국은 영업 기밀 등의 이유로 배터리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고, '자동차관리법' 등에서도 배터리를 공개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고로 소비자들의 배터리 정보 공개 요청이 쇄도하자 자동차 제조사들은 홈페이지에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했고, 정부 관계부처도 지난 12일 회의를 열어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 대책이 성공하려면 국제적 기준에 대한 전향적인 수용이 필요해 보인다. 국제 기준과 호환성이 없는 배터리 공개 정책은 대내외적으로 배터리에 대한 신뢰와 경쟁력을 모두 약화시키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 대책이 신뢰와 경쟁력을 갖추려면 지금처럼 자동차 기업들이 홈페이지에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는 정도로 그쳐선 안 된다.
 

▲ 2023년 7월 유럽연합은 관보에 배터리 규제법을 발표했다. 2026년부터 배터리 여권을 통해 재료 원산지, 탄소발자국, 위험물질, 배터리 내구성. 용도 변경과 재활용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해야 한다. ⓒ 유럽연합

 
국제 기준은 무엇일까? 유럽연합은 2023년 7월 배터리규제법을 발표하면서 2026년부터 '배터리 여권'(Battery Passport)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배터리 여권에는 배터리 재료 원산지, 탄소발자국, 위험물질, 배터리 내구성, 용도 변경과 재활용 이력 등을 기재하는데,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안전 기준과 환경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광산에서부터 생산과 수송, 재활용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정보 등도 포함된다. 2027년에는 이러한 정보를 누구나 볼 수 있게 라벨로 만들어 차량에 부착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이런 안전기준과 환경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제품을 애초에 배제할 목표를 갖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유럽연합으로 가는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수출액이 14억 7623만 달러(2조 160억 원)로 2022년보다 31% 감소했다고 한다. 유럽연합의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한국산 배터리의 수출길이 더욱 막힐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2023년 유럽 시장의 40%를 차지한 중국 배터리의 전략은 무엇일까? 중국은 2018년부터 정부가 주도해 전기차 배터리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차량 정보, 탄소배출량, 안전성 등 유럽연합 기준에 맞추어 신뢰성 있는 이력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중국 정부가 관리하는 '국가 이력 추적 관리 플랫폼'은 2022년 3월 기준으로 중국 내 900만 대 이상의 전기차를 등록, 그 이력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은 2022년 4월 유럽연합 배터리 규제 정책과 호환되는 '일본식 배터리 공급망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유럽연합 배터리 여권 제도에 대응하고 있다. 한국을 제외한 이웃 나라들의 전기차 배터리 정책은 모두 유럽연합 배터리 규제 정책과의 호환에 맞추어져 있다. 중국과 일본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국제 시장에서 자국 배터리 산업의 신뢰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자국 산업 보호가 주요 이유다.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발생하는 소비자들의 요청에 한국 정부가 만들어갈 배터리 정책도 유럽연합 규제 정책과 호환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12일 정부가 대책을 논의하자마자 영업기밀과 기술기밀 유출을 우려하는 자동차 관련 업계의 저항도 만만찮다.

국제 규제 정책에 무력한 한국 정부
 

▲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본부 밖에 유럽연합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국제사회의 새로운 규제 정책에 대응해야 할 산업은 전기차 배터리만이 아니다. 유럽연합이 이미 실행하고 미국 등도 준비하는 탄소국경조정제(이하 탄소국경세)가 한국 제조업 전반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정부가 민감하게 대응할 사안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는 철강, 알루미늄 등 6대 품목에서 시작하지만, 2030년이 되면 유럽연합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적용되는 전 품목으로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세계적인 종합 회계·재무 기업인 KPMG는 홈페이지에서 철강과 알루미늄을 주재료로 하는 자동차 등이 탄소국경세 확대 검토 대상임을 밝히고 있다.

2023년 10월 1일부터 시행하는 유럽연합 탄소국경세는 2025년 12월까지 분기별로 해당 수입 품목에 포함된 온실가스 정보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2026년부터 유럽연합 탄소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탄소국경세를 징수한다. 철강을 수출하는 포스코의 경우 2030년 탄소국경세로 유럽연합에 적게는 2000억 원에서 최대 1조 원을 지불할 수 있다고 한다.

필자는 지난 2일 <오마이뉴스>에 "무능한 윤 정부… 조만간 한국 기업 수백 개 사라질 위기"(https://omn.kr/29mty)라는 제목으로 탄소국경세 기사를 썼다. 이에 대해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정부는 우리 기업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 2024년 8월 2일 <오마이뉴스. "무능한 윤 정부··· 조만간 한국 기업 수백 개 사라질 위기" 기사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보도설명자료 ⓒ 산업통상자원부

 
산업부는 이 입장문에서 ▲ 정부는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도입 초기부터 고위급 인사 등이 직접 유럽연합을 방문해 우리 기업의 요구사항을 적극 개진, 우리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고 ▲ 관련 설명회와 간담회 10회 이상, 대규모 기업 설명회, 1298건의 상담 등을 제공했다고 했다.

고위급 인사의 유럽연합 방문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난날 고위급 인사의 방문을 통해 한국 제품에 대한 탄소국경세 면제를 요청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7월 18일 산업부 보도자료는 6월 26일 한국 고위급 대표단이 유럽연합을 방문해서 역외 기업을 차별하지 말고 기본값 활용, 민감 정보 보호 등을 전달했다고 한다. 아울러 유럽연합이 한국 측 의견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한국 정부가 요청한 기본값(Default Value)이란 실제 배출량 산정이 불가능할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준비가 안 된 한국 기업들의 취약한 실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탄소국경세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으니 기업들은 안심하라'는 말로 들릴 수 있는데, 이는 위험하다. 현실은 정부의 설명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집행은 27개 회원 국가의 국가감독청(NCA)이 책임을 지고 있다. 한국 대표단 방문 직후인 7월 9일, 유럽연합 회원국인 벨기에 감독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올해 10월 30일로 예정된 4차 탄소국경세 보고부터 원칙적으로 기본값을 사용할 수 없고, 제품에 포함된 실질적인 온실가스 데이터를 제출하라고 밝혔다.

해당 감독청은 기본값을 거부할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과 과징금 부과 기준도 설명했다. 과징금은 미신고한 품목에 포함된 온실가스 기준으로 1톤당 10~50유로(1만 5000~7만 5000원)다.

이것은 유럽연합 27개 국가들이 갖고 있는 공동의 태도다. 한국 정부가 전달한 기본값 활용이 제외된다는 말이다. 아울러 내년 1월부터는 엄격한 유럽연합 기준으로 보고를 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규제 정책이 더욱 강화되고 있어 정부 말만 믿고 안심했다가는 수출길이 막힐 수 있는 상황이다.

유럽연합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약 1만 8000개, 그중 1만 6000개가 중소기업이다. 유럽연합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을 조사해온 글로벌 로펌 '루스 라보리스'는 홈페이지에서 한국 중소기업들이 대체로 국제사회의 새로운 규제에 대응할 내부 자원과 정보가 부족하며,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2일 입장문에서 밝힌 '우리 기업의 탄소국경세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이 정말 필요할 때다. 최근 문제가 되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전기차 배터리 정책이라도 국제사회의 규제 정책과 호환할 수 있길 바란다. 하나의 좋은 사례가 국제적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모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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