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도 너 겸업 알아?" 대답 들으면 놀라겠네
N잡러의 시대, 부업 권하는 사장... 돈보다 중요한 건 '내 일을 찾는 것'
어릴 적 나는 좀 산만한 편이었다. 이것도 했다가, 저것도 했다가, 고개를 돌리면 또 딴짓이다. 초등학생 때도 학교에 내는, 미래 장래희망을 적는 란에 어찌나 많은 직업을 썼었는지. 4학년엔 선생님, 5학년 땐 작가, 6학년에는 대통령. 만약 그걸 다 하려면 몸이 100개라도 아마 부족했을 것이다.
산만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졌지만, 한 가지 습성은 영원히 남아 내 정체성이 됐다. 바로 '이것저것 일을 벌이는 버릇'이다. 난 커서 N잡러가 되었다.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상대방 따라 다른 명함을 건넨다
20대 후반인 나는 가진 명함도 여러 개다. 하나는 회사 직책을, 하나는 외주 프리랜서, 하나는 그냥 '작가'라는 직함을 파보고 싶어서 만들었다. 실제로 쓰기엔 영 부끄러워 서랍 한 켠에 박혀 있다. 언젠간 쓰리라. 어쨌던 나의 페르소나는 한 눈에 보인다. 상대방에 따라 다른 명함을 건넨다.
하루의 루틴도 꽤나 복잡하다. 아침에 일어나 잡지사에 보낼 원고를 쓴다. 회사에 출근하면 동료 직원들과 바쁘게 회의하고, 점심 시간에는 개인 메일에 온 외주 연락을 확인한다.
오후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노트북을 켠다. 매주 월요일마다 유튜브 브이로그 영상을 올리기 때문이다. 가끔 의뢰를 받아 타인의 영상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스케줄러에 글씨가 빼곡하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일정이 온통 뒤죽박죽이 된다.
요즘 내 지인들 10명 중 6명 정도는 N잡러로 보인다. 본업 외에 부업을 하거나,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는 모습이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
희한하게도 최근 내게 'N잡'에 대해 물어보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회사에서 허락은 하는지, 일은 어떤 식으로 받는지,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은지 등등. 과거엔 그냥 나의 독특한 업무 방식 정도로 여기던 친구들도 이제는 자신의 일처럼 진지하게 물어본다.
이유도 다양하다. 코로나 이후 고물가 시대에 월급만 믿을 수가 없어져서, 자기 전문 분야를 키워보고 싶어서, 회사에 매너리즘이 생겨서 등등.
과거 부모님 세대의 청년들이 먹고 살기 위해, 즉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집에서 단추를 꿰고 신문을 배달했다면, 우리는 인공지능(AI)등 격변하는 시기에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부업에 뛰어든다. 오늘은 청년 세대가 N잡러가 되는 이유에 대해 써보려 한다.
회사 생활 하면서도 '내 일 찾겠다'는 친구들
내게는 꽤나 독특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 중 몇몇은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다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내 일을 찾겠다"고 한결같이 말한다는 것이다.
개발을 따로 공부하거나, 어플리케이션을 배포하고, 밤을 새워 온라인 비즈니스 사이트를 구상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에 열중한다. "한 회사가 평생 우리를 책임져 줄 수는 없다." 이 말에 많은 또래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그들 중 일부는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 되기를 꿈꾼다. 단순히 노동을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양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 나이가 들어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것이 꼭 당장의 이익과 직결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요즘 청년들은 부모님 세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정정한 신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년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모습을 보며, 평생 원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쌓고자 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부업'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주말마다 물류센터 단기 알바를 나가는 친구들도 있다. 이들은 달에 5~6번만 일해도 내야 할 월세 정도는 세이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 이후 불안정해진 수입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처음에 느꼈던 '노가다'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은 사라졌다고 한다. 오히려 경제적인 이점 외에도 다양한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고.
회사에서는 주로 사무직으로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주말에도 집에만 있으면 몸이 무거워지기 일쑤다. 하지만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동안은 몸을 움직이며 활동하니 잡생각도 사라지고, 정신적으로도 훨씬 가벼워진다는 얘기였다.
또한, 큰 규모의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급여 계산이 정확하고, 급여도 익일에 지급된단다. 일용직의 특성상 일정 조절이 가능해, 다른 서비스업 알바처럼 대타를 구할 필요 없이 마음이 편하다. 무엇보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일하면서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되니, 시야가 넓어지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급전이 필요할 때 과거 어른들은 전당포를 찾았겠지만, 오늘날의 청년들은 물류센터 일용직 알바를 선택하는 게 보편화됐다. 부업도 이제는 매뉴얼화되면서 접근성이 좋아지고 있다.
'프로 N잡러'인 내게 친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겸직(겸업) 허락을 하는지'였다. 보통 회사 측은 피고용자들, 직원들의 겸업을 꺼린다.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능률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작은 3D프린팅 공예회사다. 사장님은 30년 간 주물을 하다 3D프린팅을 도입하며 회사 규모를 키워왔다.
그는 처음부터 나의 업무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영상도 건드려보고, 외국어도 건드려보고, 그 중 괜찮은 것을 섞어 제안하기도 하고. 사고가 유연한 사장님은 이런 나를 나무라지 않고 되려 '알바'를 주기 시작했다.
"누리씨, 여기 와서 기계 써봐라. 이걸로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다."
"이것 한번 봐봐. 이거 팔면 돈 되지 않을까?"
그래서, 회사의 몇몇 제품은 내가 실제로 부업으로 온라인스토어를 만들어 추가로 더 팔기도 했다.
이제 타인의 주문만 받아서 천편일률적으로 생산하는 제조업은 미래가 더 어둡다. 여러 분야에서 부딪치며 고유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청년들의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기업 입장에서도 자산
그런 의미에서, 젊은 직원들이 이곳저곳의 분야를 경험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도 자산이 된다. 우리 회사에서 일을 배운 뒤 나가서 사업장을 차린 몇몇 청년들이 있다. 과거의 직원이 이제는 거래처가 된 상황이다. 사장님의 유연성이 작은 인프라를 만들어냈다고 해야 할까.
N잡러는 일하는 자아도 N개라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누구인가"를 고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와서는 이 질문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CF 속 배우가 인공지능(AI)인지, 실제 사람인지조차 헷갈리는 시대다. 이런 때에 "내가 누구인가"는 이미 말장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다. 이 질문에 N잡러가 답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다. 난 글도 쓰고, 영상도 만들고, 마라톤도 나가고, 회사에서 사장님을 도와 물건도 판다.
내게 N잡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내 삶에 색깔을 입히는 여정이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등 여러가지 색깔을 입히고 나면 난 모든 색깔을 다 포용할 수 있는 깊은 내면의 검은색을 지니게 된다.
고물가 시대는 일하는 우리를 바쁘게 만들고, 때로는 강제로 N잡러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 피하지는 말자. 우리는 이미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하나의 실험 물체가 되고 있으니, 시대는 바뀌어가고 있으니.
산만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졌지만, 한 가지 습성은 영원히 남아 내 정체성이 됐다. 바로 '이것저것 일을 벌이는 버릇'이다. 난 커서 N잡러가 되었다.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 스케줄러 ⓒ 정누리
20대 후반인 나는 가진 명함도 여러 개다. 하나는 회사 직책을, 하나는 외주 프리랜서, 하나는 그냥 '작가'라는 직함을 파보고 싶어서 만들었다. 실제로 쓰기엔 영 부끄러워 서랍 한 켠에 박혀 있다. 언젠간 쓰리라. 어쨌던 나의 페르소나는 한 눈에 보인다. 상대방에 따라 다른 명함을 건넨다.
하루의 루틴도 꽤나 복잡하다. 아침에 일어나 잡지사에 보낼 원고를 쓴다. 회사에 출근하면 동료 직원들과 바쁘게 회의하고, 점심 시간에는 개인 메일에 온 외주 연락을 확인한다.
오후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노트북을 켠다. 매주 월요일마다 유튜브 브이로그 영상을 올리기 때문이다. 가끔 의뢰를 받아 타인의 영상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스케줄러에 글씨가 빼곡하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일정이 온통 뒤죽박죽이 된다.
요즘 내 지인들 10명 중 6명 정도는 N잡러로 보인다. 본업 외에 부업을 하거나,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는 모습이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
희한하게도 최근 내게 'N잡'에 대해 물어보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회사에서 허락은 하는지, 일은 어떤 식으로 받는지,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은지 등등. 과거엔 그냥 나의 독특한 업무 방식 정도로 여기던 친구들도 이제는 자신의 일처럼 진지하게 물어본다.
이유도 다양하다. 코로나 이후 고물가 시대에 월급만 믿을 수가 없어져서, 자기 전문 분야를 키워보고 싶어서, 회사에 매너리즘이 생겨서 등등.
과거 부모님 세대의 청년들이 먹고 살기 위해, 즉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집에서 단추를 꿰고 신문을 배달했다면, 우리는 인공지능(AI)등 격변하는 시기에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부업에 뛰어든다. 오늘은 청년 세대가 N잡러가 되는 이유에 대해 써보려 한다.
회사 생활 하면서도 '내 일 찾겠다'는 친구들
▲ 다양한 일을 하다보니 다양한 작업환경을 만나게 된다. ⓒ 정누리
내게는 꽤나 독특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 중 몇몇은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다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내 일을 찾겠다"고 한결같이 말한다는 것이다.
개발을 따로 공부하거나, 어플리케이션을 배포하고, 밤을 새워 온라인 비즈니스 사이트를 구상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에 열중한다. "한 회사가 평생 우리를 책임져 줄 수는 없다." 이 말에 많은 또래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그들 중 일부는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 되기를 꿈꾼다. 단순히 노동을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양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 나이가 들어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것이 꼭 당장의 이익과 직결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요즘 청년들은 부모님 세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정정한 신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년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모습을 보며, 평생 원하는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쌓고자 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부업'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주말마다 물류센터 단기 알바를 나가는 친구들도 있다. 이들은 달에 5~6번만 일해도 내야 할 월세 정도는 세이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 이후 불안정해진 수입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처음에 느꼈던 '노가다'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은 사라졌다고 한다. 오히려 경제적인 이점 외에도 다양한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고.
회사에서는 주로 사무직으로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주말에도 집에만 있으면 몸이 무거워지기 일쑤다. 하지만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동안은 몸을 움직이며 활동하니 잡생각도 사라지고, 정신적으로도 훨씬 가벼워진다는 얘기였다.
또한, 큰 규모의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급여 계산이 정확하고, 급여도 익일에 지급된단다. 일용직의 특성상 일정 조절이 가능해, 다른 서비스업 알바처럼 대타를 구할 필요 없이 마음이 편하다. 무엇보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일하면서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되니, 시야가 넓어지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급전이 필요할 때 과거 어른들은 전당포를 찾았겠지만, 오늘날의 청년들은 물류센터 일용직 알바를 선택하는 게 보편화됐다. 부업도 이제는 매뉴얼화되면서 접근성이 좋아지고 있다.
▲ N잡러는 자아도 N개라 할 수 있다. N잡은 삶에 색깔을 입히는 여정이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프로 N잡러'인 내게 친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겸직(겸업) 허락을 하는지'였다. 보통 회사 측은 피고용자들, 직원들의 겸업을 꺼린다.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능률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작은 3D프린팅 공예회사다. 사장님은 30년 간 주물을 하다 3D프린팅을 도입하며 회사 규모를 키워왔다.
그는 처음부터 나의 업무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영상도 건드려보고, 외국어도 건드려보고, 그 중 괜찮은 것을 섞어 제안하기도 하고. 사고가 유연한 사장님은 이런 나를 나무라지 않고 되려 '알바'를 주기 시작했다.
"누리씨, 여기 와서 기계 써봐라. 이걸로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다."
"이것 한번 봐봐. 이거 팔면 돈 되지 않을까?"
그래서, 회사의 몇몇 제품은 내가 실제로 부업으로 온라인스토어를 만들어 추가로 더 팔기도 했다.
이제 타인의 주문만 받아서 천편일률적으로 생산하는 제조업은 미래가 더 어둡다. 여러 분야에서 부딪치며 고유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청년들의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기업 입장에서도 자산
그런 의미에서, 젊은 직원들이 이곳저곳의 분야를 경험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도 자산이 된다. 우리 회사에서 일을 배운 뒤 나가서 사업장을 차린 몇몇 청년들이 있다. 과거의 직원이 이제는 거래처가 된 상황이다. 사장님의 유연성이 작은 인프라를 만들어냈다고 해야 할까.
N잡러는 일하는 자아도 N개라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누구인가"를 고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와서는 이 질문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CF 속 배우가 인공지능(AI)인지, 실제 사람인지조차 헷갈리는 시대다. 이런 때에 "내가 누구인가"는 이미 말장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중요한 질문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다. 이 질문에 N잡러가 답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다. 난 글도 쓰고, 영상도 만들고, 마라톤도 나가고, 회사에서 사장님을 도와 물건도 판다.
내게 N잡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내 삶에 색깔을 입히는 여정이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등 여러가지 색깔을 입히고 나면 난 모든 색깔을 다 포용할 수 있는 깊은 내면의 검은색을 지니게 된다.
고물가 시대는 일하는 우리를 바쁘게 만들고, 때로는 강제로 N잡러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 피하지는 말자. 우리는 이미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하나의 실험 물체가 되고 있으니, 시대는 바뀌어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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