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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역사부정" 윤 대통령 향해 물풍선 던진 시민들

[현장] 광복절 앞둔 기림의 날 부산 수요집회... "소녀상 훼손에 독립기념관장 논란까지"

등록|2024.08.14 14:34 수정|2024.08.14 14:34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부산시 동구 일본영사관 인근 항일거리에서 '역사부정 세력 규탄' 등을 내건 부산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의 얼굴 그림에 참석자들이 물풍선을 던지고 있다. ⓒ 김보성

 
체감온도가 33도를 넘어선 8월 14일, 부산시 동구 정발장군 동상 앞으로 100여 명의 시민이 노란나비가 달린 '평화우산'을 나란히 들고 한자리에 모였다. '윤석열 규탄', '소녀상을 지키자'라는 손팻말까지 든 이들에게 "(현 정부의) 역사 부정이 도를 넘었다"라는 비판이 연신 터져 나왔다.

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벌어진 독립기념관장 임명 파장 탓인지 참석자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두웠다. 소녀상을 지키는 부산시민행동,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부산여성행동,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 등은 이날 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 수요집회를 함께 열었다. 매달 둘째 주와 마지막 주 수요일 각각 수요시위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엔 여러 단체가 힘을 합쳤다.

일제강점기 전쟁범죄를 증언한 피해자들을 떠올린 이들의 시선은 너나없이 한 곳을 향했다. 최근의 쏟아지는 '역사관' 논란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듯 참석자들은 "지금의 현실을 보면, 참담함을 넘어 분노스럽다"라고 입을 모았다. 과거사 사죄배상을 거부하는 일본뿐만 아니라 이를 바로 잡지 않고 여러 논쟁거리를 만들고 있는 우리나라 정부가 성토의 대상이 됐다.

제2의 독립운동, 시일야방성대곡 언급된 까닭

한 참석자는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함, 한국 정부의 태도가 도를 넘었다"라고 꼬집었다. 정지영 민주노총 부산본부 통일위원장은 조선인 강제동원의 흔적인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일본과 이에 협조한 윤석열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한국이 등재에 조건부 찬성하면서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전원 동의 방식으로 이를 결정했다.

이를 친일 외교로 규정한 정 위원장은 최근 독립기념관장 문제까지 바로 겨냥했다. 그는 "이도 모자라 독립군을 때려잡던 백선엽 등을 옹호한 김형석을 독립기념관장에 앉히는 등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 역사 지우기에 혈안이 돼 있다"라고 목청을 키웠다. 정 위원장은 '뉴라이트' 인사를 곳곳에 기용하는 윤 대통령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부산시 동구 일본영사관 인근 항일거리에서 '역사부정 세력 규탄' 등을 내건 부산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윤 대통령의 최근 인사 논란과 소녀상 훼손 시도를 강하게 비판하는 장선화 부산여성단체연합 대표. ⓒ 김보성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부산시 동구 일본영사관 인근 항일거리에서 '역사부정 세력 규탄' 등을 내건 부산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평화우산을 든 참석자들의 모습. ⓒ 김보성

 
정 위원장의 말에 참석자들도 "(노골적으로) 자국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고, 일본을 옹호하는 자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라고 거들었다. 결국 제2의 독립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발언도 나왔다. 지은주 부산겨레하나 대표는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나아가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를 문제 삼으며 "다시 시일야방성대곡을 얘기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부 극우단체의 소녀상 철거 테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 김검회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변량근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역위원장은 같이 낭독한 성명에서 "상황이 이러하니 소녀상이 노골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라고 동시에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소녀상 하나만 치우려는 게 아니라 여기에 담긴 의미를 지우려는 게 목적"이라며 현 정국을 걱정했다. 소녀상은 지난 4월 철거라는 글자가 적힌 검은 봉지가 씌워지는 수난을 겪었다.

참석 명단에는 정치권도 이름을 올렸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녹색당·민주당·조국혁신당·정의당·진보당 등 5개 야당이 수요집회의 맨 앞자리를 채웠다. 발언에 나선 박성현 민주당 동래지역위원장, 노정현 진보당 부산시당 위원장, 박수정 정의당 부산시당 사무처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며 적극적 대응을 약속했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번 행사의 마무리는 물풍선 세례였다. 준비된 발언이 끝나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의 얼굴 등이 그려진 그림판이 무대 앞에 등장했다. 사회자가 "이렇게 더운데, 우리를 더 덥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라며 행동을 제안하자 참석자들은 그제야 얼굴을 폈다. 이 퍼포먼스는 재료가 동이 날 때까지 이어졌다. 한 시민은 "윤석열은 혼나야 한다"라며 물풍선을 여러 번 던졌다.

8월 14일 기림의 날은 31년 전인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의 만행을 최초로 알린 날짜를 말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성폭력 문제가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나 일본의 사죄배상 거부 속에 피해자들의 숫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2022년 이옥선(93) 할머니에 이어 지난해 1명이 더 세상을 떠나면서 정부에 등록된 생존 피해자는 한 자릿수인 9명이 됐다.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부산시 동구 일본영사관 인근 항일거리에서 '역사부정 세력 규탄' 등을 내건 부산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의 얼굴 그림에 참석자들이 물풍선을 던지고 있다. ⓒ 김보성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부산시 동구 일본영사관 인근 항일거리에서 '역사부정 세력 규탄' 등을 내건 부산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 노동자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조건부 찬성을 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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