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란 대통령... 이 사달이 누구 때문에 벌어졌나

[주장] "건국절 논쟁, 무슨 의미 있나" 언론에 전해진 대통령 입장... 김형석 임명한 게 누구인가

등록|2024.08.14 14:41 수정|2024.08.14 14:44
 

▲ 윤석열 대통령이 7월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왜 지금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 벌어지는지, 도대체 어떤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의 역사관을 두고 불거진 논란을 빗발치는 가운데, 언론을 통해 대통령실이 전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알려졌다. 이번 논란에 대한 윤 대통령의 공식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김 관장의 임명으로 야권과 시민사회로부터 '친일매국' 정권이라는 노골적인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인식이라고 보기에 참담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건국절 논쟁의 의미는 이미 이종찬 광복회장이 짚은 바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0일 광복회 학술원이 운영하는 청년헤리티지아카데미 특강 인사말에서 건국절 논쟁의 핵심에 대해 "일제가 해방 전 맺었던 조약들이 '불법'이냐 '합법'이냐를 놓고 한일이 지금까지 다투어 왔는데, 1948년 건국절은 그 이전 나라가 없었다는 일본 정부가 주장해오던 것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이라며 건국절을 찬성하는 입장을 비판했다.

이 회장은 "을사늑약 한일강제합병은 무효이자 불법이라는 것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견지해 온 일관된 주장"이라며 "1948년 건국절을 세운다고 하면 일본의 입장에 서서 (식민지배가) 합법이라고 하겠다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처럼 건국절에 찬성하는 것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합법임을 용인하는 논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 1905년부터 1910년까지 맺어진 모든 조약과 협약은 무효다'라는 것은 1952년 이승만 정권부터 1965년 박정희 정권까지 14년에 걸친 한일협정 협상기간 내내 줄곧 견지해 온 논리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지켜온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건국절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입장을 전했다니,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게다가 '무슨 의미가 있나'의 앞을 수식한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이라는 언급 또한 더없이 문제적이다. 먹고살기도 힘든 와중에 일제 식민지배의 적법성에 관심을 가져봐야 무엇하냐는 의미인 걸까?

해당 발언을 접한 직후 떠오른 윤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 있다. 바로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는 지난 2021년 12월의 발언이다.

윤 대통령에게 있어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들은 자유의 필요성도 모르고, 식민지배의 불법성도 의미가 없다고 치부하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왜 1919년 3월 1일의 가난한 민중은 자유를 찾아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수천 명이 피를 흘려가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는가. 윤 대통령이 민족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국민이 먹고살기 힘든 것은 대체 누구 때문인가. 집무실 책상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영어 문구를 담은 명패를 항상 놓고 바라본다던 윤 대통령의 발언은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비판

이번 논란의 시작은 윤 대통령이 독립기념관장으로 부적절한 인물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윤 대통령의 정치 입문을 도왔다는 이종찬 광복회장이 이토록 강경하게 반대하고 나섰겠는가. 본인이 이 모든 논란을 자초해 놓고 반성은커녕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는 것만 같다.

이번 논란은 이념적 사안도 아니고, 불필요한 논쟁도 아니다. '일제 식민지배는 불법이다'라는 대한민국이 여태 지켜온 명제를 사수하기 위한 '원칙적 사안'이자, 그러한 원칙을 송두리째 짓밟으려는 시도에 대한 '필요한 비판'이다.

이를 '불필요한 이념 논쟁' 따위로 치부하는 이는 대체 누구인가. 대한민국 정부가 일제 식민지배의 합법성을 용인하면 대체 국민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이 모든 사달의 근본적 원인인 윤석열 대통령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납득하기 어려울 뿐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