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년 강수량 24% 수준... '여름 가뭄·폭염'에 농작물 피해 심각
농작물 화상 입는 폭염에 생산량 하락·병충해 우려도... 정부-지자체 대응책 마련 필요
▲ 비가 내리지 않아 시들한 노지 깻잎의 모습, 그리고 가뭄으로 열과가 발생한 복숭아와 일반 복숭아를 비교한 모습. ⓒ 옥천신문
"여름가뭄·폭염에 시들고 터지고 못 크는 농작물."
7월에 폭우로 고통을 받던 농민들이 8월에는 여름가뭄·폭염으로 또 다시 시름하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해 농민들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는 상황 속 정부와 옥천군이 면밀하게 현장을 점검하며 농가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필요한 설비를 보조사업으로 지원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월까지는 구름이 많이 끼고 산발적으로 비가 오면서 습한 날씨였다면 7월 말부터는 강한 햇빛에 비도 내리지 않아 '여름 가뭄'이 발생했다는 게 농민들의 판단이다. 문제는 비가 오지 않다 보니 작물이 제대로 크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하는 것.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8월 상순 강수량은 21.8mm로 평년 강수량인 90.3mm의 24% 수준이다.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어촌 알리미 누리집에 따르면 농어촌공사가 관할하는 우리지역 내 농업용 저수지는 총 27곳인데 8월15일 전체 저수지의 저수율은 68.1%로 지난해 저수율인 92.5%보다 20%p 넘게 줄었다. 농지 70ha에 물을 공급하는 읍 삼청저수지의 저수율은 57.8%로 평년 대비 약 76%, 농지 217ha에 물을 공급하는 안남 농암저수지의 저수율은 58.7%로 평년대비 약 70% 수준에 그쳤다.
복숭아 농가 A씨는 "원래 같으면 비가 적당히 오기 때문에 작물에 물 주는 걸로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 8월에는 비가 거의 안 왔다. 500평 복숭아 밭에서 2톤 정도 수확을 해왔는데, 비가 안 오다 보니 복숭아가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쭈글쭈글해지거나 열과 현상이 발생해 다 버려야 할 상황"이라며 "깻모 심은 사람들은 깨가 제대로 크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름 가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농가차원에서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고령농들은 본인들의 피해에 대해 직접 신고하는 것도 어렵다"며 "군이나 정부 차원에서 현장 농민들의 피해상황을 촘촘히 살피면서 기후 변화에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관정시설 설치 지원금 등 농가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폭염·여름가뭄 등 이상기후 대비책 부족한 정부·지자체
농민 B씨도 "심어놓은 깨는 다 말라 죽어버리고, 배추 심을 때인데도 작업을 시작하지도 못하는 농민들이 많다. 산골짜기에 있는 밭은 관정시설도 없어 경운기에 물을 일일이 길어다가 줘야하는데, 고령농들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기후위기로 농사를 짓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런데 농민의 위기는 곧 먹거리의 위기이지 않나. 관련 기관에서 대응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한 자외선을 동반한 폭염이 연일 이어지면서 사람뿐만 아니라 농작물에도 피해를 입히고 있다. 현장에서는 일소피해(강한 햇빛과 고온으로 과실이 화상을 입는 것)가 발생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소피해로 과실이 상처를 입을 경우 탄저병 등 병충해에 취약해진다는 게 농민들의 설명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8월 상순(8월1일~10일) 기온은 28.7℃로 평년 기온인 26.4℃ 보다 2.3℃ 높았다. 일조량은 평년보다 20.5시간 많은 82시간을 기록했다. 추풍령 기상대 기준 7월 중순 이후부터 33℃를 넘기는 폭염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상황.
옥천사과영농조합법인 주재인 대표는 "사과가 자외선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화상 초기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에도 수확기 직전에 과다한 일조량 문제로 조직 파괴가 발생하면서 탄저병까지 발병한 바 있다"라며 "탄저병이 오면 다 헛일이다. 사과가 자라는 데 최적의 온도는 20~25도다. 근데 낮에도 너무 더운 데다가 열대야까지 이어지니 정상적으로 농작물이 자랄 수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이어 "7월에는 비도 많이오고 일조량도 적어 피해가 있었는데, 지금은 강한 햇빛과 폭염 때문에 또 걱정이다"라며 "폭염 때문에 한낮에 일하지 말라고 재난문자는 계속 오는데, 내가 농사일 안 하면 누가 해주겠나. 더워도 참고 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발굴해야
폭우 이후 폭염으로 인한 병충해 및 작물 피해가 심해지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고추 농사를 짓는 B농민은 "온도가 18~28℃ 사이여야 고추농사가 잘 되는데 꽃이 안 피는 경우가 있다. 고추를 통상 5번 정도 수확하는데, 두 번째까지는 수확량이 괜찮다가 세 번째부터 수확량이 뚝 떨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벼농사를 짓는 C농민도 "덥고 통풍이 잘 안되고 습하다보니 문고병 등 병충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축산농가 또한 고민이 깊다. 더위에 지치면 사람도 식욕이 떨어지는 것처럼 가축 또한 사료를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것. 축사의 경우 여름철에 환풍기를 틀어서 축사 내 열기를 빼내거나, 차광막을 설치하고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리며 열을 식히는 것 외에는 더위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지역에서 젖소를 키우는 주민 D씨는 "이렇게 더운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젖소가 사료를 제대로 못먹으니 우유 생산량도 20~30% 가량은 줄어든 것 같다"며 "보통 마리당 하루에 30kg 정도의 우유가 생산됐다면 지금은 22kg정도 생산하는 데 그친다. 여름철마다 발생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올해 유독 심하다"고 말했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폭염·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 대책이 부족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옥천군의 경우 자체적으로 농작물 폭염 및 가뭄 피해에 대한 현황파악은 진행하지 않은 걸로 확인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5일 '폭염관련 대통령 지시사항' 공문을 각 지자체에 통보했는데 '노약자 등 폭염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을 점검하고, 건설 택배 등 현장 근로자와 농업인 등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라고 명시했을 뿐이다. 기후로 인한 농작물 피해 양상이 예측할 수 없고, 다양해진 만큼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면밀하게 현장을 점검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며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옥천군의회 산업경제위원회 송윤섭 위원장은 "7월 중순 폭우 이후 8월 중순까지 소나기도 거의 오지 않아 농가 피해가 심각할 거라 예측된다. 행정 차원에서도 경험이 없다보니 자발적으로 움직이기에 힘들 수 있지만, 능동적으로 대응을 해야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사업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군 농업정책과 조도연 과장은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위기라고 판단한다. 이상 기후 현상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발굴하고 중앙정부에 건의를 하는 동시에, 현장에 있는 농민들의 어려움에 대해 소통하며 파악해나가겠다"고 말했다.
▲ 가뭄 때문에 바닥이 드러난 하천 ⓒ 옥천신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옥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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