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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는 얼마나 많은 삶을 지켜보았을까?

신령한 은행나무가 지키고 있는 천년고찰 용문사

등록|2024.08.19 08:25 수정|2024.08.19 08:25
경기도 양평 땅은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에서 시작된 남한강이 한줄기가 되어 산 깊고 물 맑은 기운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자연스럽게! 산 좋고 물 맑은 양평. 그중 용이 드나들었다는 산세가 웅장하고 신령스러운 용문산 용문사를 찾아갑니다.

"와! 징하게 덥다 더워. 뭔 날이 이렇게 푹푹 찐다냐!"

용문사 가는 길목에 만난 아낙네들이 볼멘소리를 쏟아냅니다. 한여름의 열기에 짜증이 묻어 있습니다. 양평 용문사 관광단지 앞 짙은 녹음 속. 시끄럽게 떠드는 매미 소리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여름이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 용문산 용문사 일주문. 양쪽 기둥에 용이 새겨져 특이합니다. ⓒ 전갑남


일주문 앞을 지나자 산자락 사이로 굽이치는 물줄기가 시원스레 흐릅니다. 개울 속 바위 틈을 들추면 가재가 튀어나올 것 같은 맑은 물입니다. 부서지는 계곡물을 보니 마음마저 시원해집니다. 바쁠 것도 없는 사람들은 자리를 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쉬어갑니다. 도랑물을 따라 신발을 벗고 걷는 젊은 연인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피서가 따로 없습니다.

▲ 용문사 가는 길목은 숲이 우거져 있고, 계곡에 물이 시원스레 흐릅니다. 도랑을 설치하여 맨발로 걸으면 색다른 맛이 납니다. ⓒ 전갑남


보현교를 지나 박새 한 마리가 이리저리 부지런히 옮겨 다닙니다. 녀석들은 더위도 모르는가? 작은 생명이 평화롭게 노는 모습을 쳐다보니 땀이 식습니다. 길이가 42m 출렁다리가 보입니다. 어린이를 대동한 가족이 다리 위에서 출렁출렁 건넙니다. 나도 따라 걸어보는데 재미있습니다.

아! 천년을 지켜온 은행나무

▲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100여년의 용문사 은행나무. 신령스러운 노거수에 사람들은 소원을 비는 쪽지가 매달았습니다. ⓒ 전갑남


뒷짐 지고 유유자적! 해탈교를 지나 사천왕문에 다다랐습니다. 몇 그루 하얀 수국이 여름꽃으로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그 유명한 은행나무가 눈에 띄입니다. 천연기념물 30호인 천년 고목 은행나무는 푸른 녹음으로 그 위용이 대단합니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좀 전 맨발로 도랑물을 건너던 젊은 친구들이 은행나무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습니다.

"은행나무 수령이 1100년이래. 연년세세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을 지켜보았을까?"

"그 숱한 세월 속에서 이렇게 푸르고 늠름하다니!"​

"암놈일까? 수놈일까?"

"저기 보라구. 이파리 사이 열매가 달렸잖아."

"그럼 암 그루. 노거수인데도 숱하게 달렸네!"

은행나무 녹색 이파리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그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헤아리기도 힘든 열매를 생산했으리라.

▲ 은행나무에는 싱싱한 이파리 속에 탐스런 은행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 전갑남


수많은 전란과 병화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의젓하게 살아남은 고목.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키가 무려 42m, 줄기의 몸통 둘레가 11m가 넘는 고거수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유실수라니 그 가치가 너무도 소중합니다.

은행나무 난간에 많은 사람이 소원지를 붙였습니다. 무슨 소원들일까? 대부분 가족건강과 사업번창 등을 비는 내용이 많습니다.

'저희에게 귀한 자녀를 점지해주세요.' 눈에 띄는 문구 하나가 절실해 보입니다. 신령한 은행나무여, 그분의 소원을 꼭 들어주세요.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열매를 생산한 것처럼, 우리나라에 건강한 자손이 번성하도록 영험함을 보여주세요.

용문사의 소중한 보물

▲ 팔작지붕의 용문사 대웅전. 화려한 단청이 아름답습니다. ⓒ 전갑남


'자비무적(慈悲無敵)'이 새겨진 비석을 끼고 계단을 오르니 팔작지붕의 대웅전이 보입니다. 화려한 단청이 참 아름답습니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여느 절에서는 보지 못한 미소전이 보입니다. 전각 안 마주치는 나한님의 미소를 보고 내 안에 아름답고 편안한 미소를 지어보라는 안내문이 마음에 닿습니다.

천년고찰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년) 대경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고려, 조선조를 거쳐오는 동안 법등이 끊이지 않은 천년고찰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미년(1907년)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워져 화를 입었고 중건하였으나, 6.25전란으로 사찰이 전소되었습니다. 그 뒤 1982년부터 하나씩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 용문사 관음전. 이곳에 보물로 지정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모셔있습니다. ⓒ 전갑남


가장 높은 곳에 산령각과 칠성각이 있고, 대웅전 옆으로 지장전과 관음전이 배치되었습니다. 특이한 팔각형 모양 관음전은 보물 1790호로 지정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모셔 있습니다. 14세기 이곳에 정지국사 정지천이 머물 때 조성된 불상이라 전해집니다. 전형적인 고려 후기 보살상 양식을 하고 있는데, 사실적인 이목구비와 어깨 위에 흘러내리는 수발이 특이한 인상을 줍니다.

용문사에는 보물 531호로 지정된 정지국사의 행적과 업적을 기록한 비와 그의 사리를 보관한 탑이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관음전 옆 산길로 안내되었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용문사 가람이 한눈에 들어오고 용문산의 위용이 드러납니다.

아름드리 숲속에 나타난 정지국사 김지천의 부도탑과 비입니다. 부도탑은 팔각형 탑신에 문짝 모양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 꼭대기에 연꽃 모양 장식이 있습니다. 단순하고 간결한 조선조 초기 부도 양식을 보여줍니다. 비는 정지국사 삶과 업적을 권근이 지은 비로 알려졌습니다.

▲ 정지국사 김지천의 부도탑. ⓒ 전갑남

▲ 정지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정지국사비. 정지국사탑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 전갑남


정지국사 지천은 고려 후기 승려로 고려 우왕 때 용문사 대장전을 짓고 황해도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장경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산기슭을 내려오는데 좀 전에 만난 젊은 친구들이 내게 묻습니다.

"뭐가 있는 데 거기서 내려오죠?"

"보물로 지정된 정지국사탑과 비를 보고 오는 길이에요."

조금만 걸으면 만나게 된다는데, 자기들은 은행나무가 노랗게 단풍이 드는 가을에 탐방하겠다고 발길을 돌립니다. 하기야 지금은 보통 더운 날이 아니니까요.

숲길을 내려오며 물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세수를 하고 땀을 식히니 시원합니다. 발걸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덧붙이는 글 인천in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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