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호령한 근육상어 파이터, '이것' 때문에 몰락...
[압박형 그래플러를 말한다 1] '머슬 샤크' 션 셔크
▲ 상위 포지션에서 상대를 압박하고 파운딩을 치는 방식은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통하고있는 전법이다.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가장 다양한 격투 기술의 집합체 MMA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압박을 당하는 쪽보다는 하는 쪽이 무조건 유리하다. 그렇기에 체급 내에서 강자로 분류되는 선수는 대부분 본인이 압박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압박형 그래플링 전법은 종합격투기 1세대부터 통용되던 방식이다.
프라이드 초창기 시절 마크 커(56‧미국)는 레슬링을 앞세운 압박형 그래플링 하나로 헤비급에서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영장류 최강의 사나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지나친 과대평가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얇은 선수 층에 기술 수준도 낮았던 당시, 만나는 상대마다 넘어뜨려 바닥에서 굴리던 괴력과 레슬링 스킬은 분명 범상치 않았다.
이런 파이팅 스타일에 대응하는 파훼법(운동 경기나 게임 따위에서 상대편의 전술이나 전략을 깨뜨리어 무너뜨리는 방법 - 기자 말)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압박형 그래플링을 구사하는 선수가 많은 이유는 그래플링 압박은 쉽게 깨트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플링 압박은 완력의 격차나 그래플링 기량 차이가 클 경우에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아도 당하기 일쑤다. 어찌 보면 알면서도 당하기에 정신적 충격은 더 클 수도 있다. 커, 콜먼 이후에도 '인간 기중기' 맷 휴즈, '아부다비의 대마왕' 히카르도 아로나, '머슬 샤크' 션 셔크, '헐크' 차엘 소넨, '더 넥스트 빅 띵' 브록 레스너, '70억분의 1' 케인 벨라스케즈, '울버린' 다니엘 코미어, '독수리'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나이지리안 악몽' 카마루 우스만 등이 그러한 스타일로 정상급에서 활약했다.
물론 그라운드 앤 파운드, 압박형 그래플링이라고 다 똑같지는 않다. 커나 콜먼 시절만 해도 힘 좋은 레슬러들이 실컷 테이크다운에 성공하고 상위포지션을 잡아놓고도 서브미션에 능한 선수들에게 암바나 초크 등을 허용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후 소넨, 레스너 등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런 경우는 큰 폭으로 줄었다.
레슬러들의 서브미션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어지간한 기술은 걸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위 포지션에서의 대응이 좋아진 만큼 상위 포지션에서의 압박 기술도 발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타격 스킬을 장착한 케이스도 늘어갔다. 벨라스케즈는 자신이 뛰던 시기 압박형 그래플러를 대표하던 선수였지만 수준급 타격도 함께 구사했다. 이를 역으로 이용해 자신의 테이크다운을 경계하는 상대를 타격으로 압박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줬다.
코미어는 한술 더 떴다. 중량급치고 작은 키에 무거운 몸무게 등 체형(175cm‧114kg)만 놓고 보면 다소 둔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엘리트 레슬러 출신답게 그래플링 압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수준급 킥복싱 실력을 갖춰 순수 스탠딩 싸움에서도 무척 강했다. 이름값 높은 스트라이커 여럿을 타격으로 녹아웃 시켜버렸을 정도다.
▲ 션 셔크와 헤르메스 프랑카의 경기는 라이트급 역사상 손에 꼽힐만큼 명승부였지만 이후 터진 약물파동으로 인해 빛이 바랬다.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약물파동'으로 한번에 훅 가버린 '근육 상어'
가장 원초적인 압박형 그래플러를 꼽으라면 전 UFC 2대 라이트급 챔피언 '머슬 샤크' 션 셔크(51‧미국)가 빠질 수 없다. 챔피언에 등극한 2006년 당시 셔크는 격투가로서 절정의 기량을 보이기에는 불리한 요소들이 많았다. 168cm의 작은 키는 갈수록 장신화 돼가던 MMA무대에서 큰 단점이었고, 30대 중반으로 치닫고 있던 나이 또한 젊은 선수들과 진흙탕 싸움을 벌이기에 부담이 컸다.
하지만 셔크는 평범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신장은 작지만 엄청난 양의 근육으로 이를 커버했고 위압적인 몸에 걸맞게 동급 최고 수준의 파워와 맷집 그리고 체력까지 겸비한, 상대 선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난적 중 한명이었다.
완전히 그립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도 무지막지한 파워로 상대를 번쩍 들어 메다꽂아버리는 플레이는 괴력과 기술의 집합체로 불렸다. 그와 붙는 상대는 누가 되었든지 간에 접근전을 극도로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2007년 7월 UFC 73대회서 헤르메스 프랑카(50‧브라질)를 상대로 완승하며 1차 방어전에 성공할 때까지만 해도 '과연 그를 이길 선수가 체급 내에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당시 프랑카는 예전부터 자랑하고 있던 빼어난 주짓수 실력에 타격 능력까지 일취월장하며 체급 전선의 복병으로 떠 오르고 있었다.
비록 객관적인 전력상 셔크의 우세가 예상되었지만 타격은 물론 그라운드에서도 만만치 않을 프랑카의 반란을 예상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경량급에서 가장 사나운 상어는 더 흉포해져 있었다. 공이 울리기 무섭게 총알 같은 태클로 프랑카를 바닥에 눕혔고 차원이 다른 파워까지 과시하며 경기 내내 그라운드에서 압박을 거듭한 끝에 완승을 거뒀다.
물론 프랑카에게 전혀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카는 주짓수의 고수답게 간간이 셔크의 '압박지옥'으로부터 탈출하기도 했으며 태클을 시도하는 셔크의 안면에 가속도까지 붙여 정확한 카운터 니킥을 명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안면에 니킥을 얻어맞고도 꿈쩍도 하지 않고 집어던지듯 태클을 반복하는 맷집과 힘, 그리고 프랑카가 필살의 기술로 시도했던 초크 공격마저 뿌리쳐버리는 셔크의 근성은 이변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경기 내내 지독할 정도로 반복되었고 결국 프랑카의 예리한 작살은 상어사냥에 실패하고 만다. 사실 셔크는 다소 늦은 나이에 이름이 알려진 케이스다. 자신에게 맞는 체급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던 탓에 상위 체급인 웰터급에서 한동안 활약해야 했는데 이미 그곳에는 맷 휴즈와 조르주 생 피에르 등 또 다른 괴물들이 버티고 있었다. 단순한 기량 문제를 떠나 사이즈 자체에서 차이가 컸고 그 결과 자신의 커리어에서 몇 안 되는 뼈아픈 패배를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뿐 셔크는 UW, RSF, 판크라스, UFC 등 다양한 무대에서 뛰며 나머지 경기들을 모두 승리로 장식했는데 그 중에는 카로 페리시안, 닉 디아즈, 케니 플로리안 등 쟁쟁한 강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커리어 내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했다. 압박형 그래플러 역사를 논할 때 그의 이름이 빠질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상어는 전성기의 물결에서 오래 헤엄치지 못했다. '약물 파동'이 원인이었다. 2007년 7월 19일 캘리포니아주 체육위원회는 "션 셔크와 헤르메스 프랑카가 타이틀전을 앞두고 각각 난드롤론(Nandrolone)과 드로스테놀론(Drostanolone)을 복용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이 복용한 약물은 근육 증강 및 식욕 증진, 골격 강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모두 '금지약물'에 해당하는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셔크는 다시금 암흑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일단 약물사용에 대해서 프랑카는 시인한 반면, 셔크는 끈질기게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밝혀진 문제인 탓에 고의성 여부는 어느 정도 참작이 되더라도 완전하게 무죄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셔크는 '6개월 출장정지(기존 1년 출장정지)'에 타이틀 박탈이라는 아픔까지 겪어야만 했다. 2008년 5월 징계 기간이 끝난 후 '돌아온 천재' BJ 펜을 상대로 복귀전을 했지만 플라잉 니킥과 펀치 연타를 허용한 끝에 경기 속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데미지를 입고 TKO로 패한다.
사실상 셔크의 전성기는 여기까지였다. 이후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며 선수 생활을 좀 더 이어 나갔으나 챔피언 시절 보여준 압도적인 맷집과 괴력은 찾아볼 수 없었고 결국 2013년 9월 고관절 부상으로 은퇴 선언을 한다. 대기만성의 모범이 된 파이터였지만 하지 말아야 할 약물로 인해 결국에는 명예까지 잃어버린 비운의 파이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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