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노인의 고함소리... 관리소-경찰까지 출동한 까닭

범인은 '옆집 소음'... 소음 공해 없는 세상을 꿈꾸며

등록|2024.08.18 16:15 수정|2024.08.18 16:19

▲ Unsplash Image ⓒ mmpixz on Unsplash


에어컨 없이 매번 겪는 여름인데도 올해는 유난히 지친다. 거리에 내뿜는 열기는 둘째치고 시끄러운 소음 노출로 피로도가 심각한 경보 상태다. 낮에는 현관문을 열어놓고 생활하는 이웃들의 둔탁한 생활소음에 시끄럽고 밤에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발전실 팬소리에 죽을 지경이다. 매미소리 울어재끼는 여름의 낭만도 이젠 고문에 가깝다. 소음 전쟁으로 피서가 아닌 피소를 가야 할 것 같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T자형 복도식으로 한 층에 10호가 살고 있다. 평수가 큰 세 가구를 제외하곤 대부분 1인 가구다. 십 년 넘게 살지만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해 층간 소음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도 나와는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며칠 전 조용했던 저녁 시간 갑자기 큰소리가 복도를 강타했다. 한참이나 계속되는 노인의 고함에 관리소에서도 다녀가고 경찰도 한번 출동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소음 때문이었다. 층간소음이 아닌 옆집소음.

"소음 때문에 환장하겠다"는 노인의 하소연

더우니까 현관문을 열어놓고 생활하는 4인 가족의 소리가 너무 커서 신경 쓰인다는 3호 노인의 하소연이다. 그 집은 전에도 복도 창문 여 닫는 것으로도 다툰 적이 있다. 더우니까 복도 창문을 열어놓는 노인과 모기가 들어온다고 창문을 닫는 가족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것인데 그때도 복도가 떠나갈 듯 큰소리가 한번 났었다. 노인의 일방적인 고함 소리로 보아 4인 가족은 대응을 안 하는 것 같다.

'소음 때문에 환장하겠다'는 노인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생활소음 정도야 일상처럼 흘러가는 것이니 서로 양보하면 되지 하는 마음에 노인이 조금 야박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저 마음씨 좋은 사람처럼, 소음에 너그러운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오래가질 못했다. 누군가 바로 내 옆집으로 이사 오면서 나 역시 소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사 온 며칠은 그러려니 했지만 매일 쿵쿵 탁탁 큰 소음이 들렸다. 그동안 크고 작은 소음에 적응한 뒤론 웬만한 소음은 다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소음은 체급이 다르다. 손님도 날마다 찾아와 머물다 간다. 보일러실을 택배함으로 쓰고 있는데 그 문을 여닫는 소리도 하루 수십 번씩 쿵쾅 거렸다. 살짝 닫아도 되는데 습관인 듯 보인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끄러운 사람이 이사 와서 조금 피곤하게 생겼다. 할 정도로 가볍게 넘겼다.

그러나 무더위가 최고조에 달하고 가만히 있어도 끈적임이 심한 어느 날부터 달그락 거리는 생활소음이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탁탁 툭툭 물소리 설거지 하는 소리 서랍장 여닫는 소리 심지어 전화벨소리 대화소리까지 다 들렸다. 이상하게도 평상시와 달리 소리가 너무 커서 나가봤더니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생활하고 있었다. 며칠 전 시끄럽게 에어컨 설치하는 것을 봤는데 사용하지 않는가 보다.

소음에 지배당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문제는 원래도 시끄러웠는데 문을 열어놓자 그 소리가 더 커진 것이다. 고작 현관문 하나를 열어놨을 뿐인데 둔탁한 생활소음은 참을 수 없는 고문처럼 한계에 다다랐다. 하루 종일 툭탁거리며 웃고 떠드는 그들의 일상이 타인에겐 일상을 깨는 무법자가 된 것이다.

3호 노인이 내게 와서 시끄럽지 않냐고 물었을 때 그곳까지 들리냐며 반문했었다. 소음은 점점 심각해졌고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신경이 온통 소리에 집중되자 일상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관리소에 전화를 걸었다. 직접 부딪히면 감정이 다치게 될 거 같아서.

사실 소음 분쟁은 관리소도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한다. 자칫 더 악화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도움을 청하는 순서는 일종의 완충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인데 내 집문을 열어놓은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직원이 있고 해결해 주는 직원이 있다. 문을 열어 더위를 이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사실이 문득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현관문 열어놓는 게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며 이 정도는 이해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며 투덜거리는 옆집 손님의 소리가 들린다. 그들 입장에서야 웃고 떠들지도 못하는 사람 냄새 없는 아파트의 냉정한 현실이 야속할 수 있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어놓은 게 문제가 아니라 흘러나오는 소음이 문제란 걸 타인의 입장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몇 번의 민원이 들어간 후 다행히도 옆집의 현관문은 닫혔다. 소음에서 해방됐나 싶었는데 건너 건너 다른 집들의 현관문이 열려있다. 툭탁 거리는 생활 소음이 또다시 흘러나온다. 지친다. 집집마다 복도마다 소음 측정기를 달아 주의를 줄수도 없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곳이 소음 투성인건 알지만 소음에 지배당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없는걸까. 간혹 보복성 소음을 시전 하는 사람들도 봤지만 감정만 황폐해 진다. 설령 소음을 피해 도망간다고 해도 그곳이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인지 장담할 수 없다. 사람 사는 곳 어디든 소음은 발생하고 분쟁이 있기 마련이니 서로 조심하는 수밖에.

도로마다 질주하는 자동차 굉음, 끊임없이 돌아가는 환풍기. 웃고 떠드는 사람들 소리. 피할 수 없는 문명의 소음. 매번 겪었을 일인데도 올해 유난히 지친다. 더위를 이기지 못할 나이가 된 것인가. 더위 탓을 한다. 소음을 피하거나 이겨낼 방법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답은 아닐 텐데. 괜히 죄 많은 이 여름이 빨리 가기만을 기다린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 아파트 벽면마다 달린 실외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실내의 열을 밖으로 뿜어내면서 내부는 시원하게 만들지만 밖은 그 열로 인해 더 더워지는 아이러니. 내부에서 툭탁 거리는 행복한 일상도 외부로 빠져나가는 순간 소음 공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일상에서 소음 공해 없는 세상을 꿈꾼다면 너무 큰 욕심인 걸까. 서로 노력했으면 좋겠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