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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 깎는 일 좋다는 아이에게서 교복 입은 내가 보였다

특성화고교생들의 꿈과 삶을 그린 소설가 문경민, <나는 복어>

등록|2024.08.27 18:18 수정|2024.08.27 18:18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적당히 불행하고 신나는 생활이었다. '적당히'라는 말을 쓴 이유는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현실을 일찍 만났기 때문이다. 10대 시절, 우리 집은 경쾌하리만치 빚에 허덕였고 맏이인 나는 인문계고 진학을 망설였다. 그래도 힘이 넘쳤다. 열여섯이었으니까. 글이 쓰고 싶었던 나는 며칠을 상고엔 가기 싫다며 떼를 썼다. 이윽고 봤다. 퇴근길 밤공기를 뚫고 현관을 비추던 부모님의 얼굴, 생존하느라 탈진한 사람이 간신히 끌고 온 기운.

그렇게 상고로 진학했다. 기대를 접고 간 학교에서 친구들은 우물 안 개구리의 눈을 넓혀줬다. 세상은 입시를 준비하지 않는 청소년을 여전히 소외계층으로 보지만, 내 친구들은 소외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등굣길 문간을 나서며 집안 사정과 남모를 고투로 골머리 앓는 친구를, 나를, 타인을 응원하는 법을 고등학교에서 배웠다.

가족을 돌보며 세무회계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는 열여덟, 책을 읽는 한편 취업 준비차 자기소개서를 달달 외는 열아홉을 학교에서 만났다. 물론 껌 좀 씹고 노는 친구들하고도 맛있게 밥 먹었다. 교실 속 같이 앉은 우리의 공통점은 타인의 사정을 미주알고주알 캐묻지 않았다는 것. 극심한 가난에도 통증에 침잠하지 않았다는 것. 가난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성인들의 얄팍한 자존심과는 결이 다른 의젓함이었다.

열여덟, 만만치 않은 세상에 펀치를 날리다

취업에 뛰어들었던 열아홉, 그 통증만큼은 선명해서 때때로 내 시절과 닮은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특성화고 학생들을 다룬 책이 출간되면 빠트리지 않고 사서 읽었다. 읽은 경험이 쌓이자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이 당사자의 사연을 단순히 사회적 약자의 서사로 해석하는지, 자신의 글쓰기 도구로 전략화하는지, 치열한 사회적 의제로 다루는지 촉각이 세워졌다.

그 예민함은 다른 소수자에 대한 관심으로 넓혀졌다. 누구든 한순간에 소수자가 될 수 있으며, 편협한 사회적 시선은 편견으로 곧잘 굳어버리며, 소수자라는 단어도 판단도 함부로 남용해선 안 된다는 앎이 생겼다. 최근 그 앎에 기쁨이 보태졌다. 너의 열여덟을 아프게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응원. 그 시절 네게 투지가 있었다는 위로. 소설가 문경민이 쓴 <나는 복어>는 내게 선물 같은 청소년 소설로 다가왔다.

소설 주인공은 김두현. 자현기계공고 하이텍기계과 2학년으로, 아빠는 몽골에 사업하러 갔다가 다른 여자와 바람났고 급기야 엄마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그 충격으로 식당 일을 전전하던 엄마는 충격에 청산가리를 먹고 세상을 뜬다. 홀로 남겨진 두현을 복국집을 하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거둬들인다. 부모의 사연이 기사화된 후로 개념 없는 동급생들이 종종 "청산가리!" 하고 놀려대는 통에 두현은 싸우는 일을 번번이 맞닥뜨린다. 그는 피하지 않는다.

기세가 굳센 두현은 할머니의 돌봄, 친구 준수와 재경의 우정을 디딤돌 삼아 학창 시절을 든든히 버틴다. 동급생 준수와 재경의 생활도 만만치 않다. 재경과 같은 학교에 다니던 오빠는 현장실습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재경은 1인 시위를 하며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준수는 어린 동생들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며 방과후 편의점 알바를 한다. 준수가 버는 돈은 고스란히 가족의 생활비로 쓰인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아픈 서사'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소설 밖 현실은 오히려 더 지옥이다. 일찍 어른이 되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는 더더욱. 그래서 잘 읽혔다. 지옥 가운데서도 현실적인 희망을, 10대 주인공의 번민을 솔직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내일의 나"를 기대하는 열여덟 어린 마음들을 교사이자 소설가인 문경민은 치열하게 그려냈으니까.

▲ 소설<나는 복어>에서 열여덟 어린 마음들을 교사이자 소설가인 문경민은 치열하게 그려낸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두현은 장차 자신이 하고자 하는 진로를 촘촘하게 걸으며 타인들의 곡절도 이해한다. '간절함'엔 높낮이가 없었다.

"이토록 단단한 쇠도 깎아 낼 수 있다면 무어든 다뤄 내지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밀링머신이 좋았다. 차분하고 단단한 마음인 내가 좋았다. 다들 이 마음 하나 얻자고 대학이네, 취업이네, 하며 고생하는 거 아닐까." - <나는 복어>(문경민) 중에서

생각보다 다채로운 특성화고교생의 하루

소설을 읽으며 특히 반가웠던 점은 작가가 특성화고 학생의 고통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것. 극중 두현은 학교에서 밀링(회전하는 절삭 도구를 사용해 재료의 표면을 깎아내는 가공 방식)에 자기 적성이 잘 맞다는 걸을 발견한다. 대개의 작가들은 '일하는 청소년' 서사를 다룰 때 일찍 철든 아이들 특유의 우울, 진지함, 견디는 마음에 천착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읽고 나면 위기를 딛고 나아가자는 모호하고 아픈 희망만 남을 때가 많다.

작가는 그 익숙한 묘사 대신 열여덟 주인공이 매일 등교하는 교실, 주변 인물의 생활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기술자로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의 내력을 한 땀 한 땀 직조한다.

버스 안에서 한 아저씨가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가 제조업에 종사하며, 직업 용어에 능통하고 "자신의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존재임을 목격한다. "이 바닥에서만 30년" 일해온 기술자의 자부심을 소설가는 두현의 두 눈으로 관찰하게 한다. 소설 속 기계공고 안팎의 공부와 생활, 미래는 납작해지지 않는다. 씽씽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처럼 리듬이 있다.

그 세계를 생동하게 해주는 주변인들이 두현 주변에 있다. "핸들로 조절하는 나사 선의 깊이에 따라 제품의 완성도가 달라지는" 밀링 작업에 예술적 경지가 있다는 정명진 교사. 그는 두현의 담임으로 폭풍우 같았던 십 대 시절을 간직한 인물이다. 같은 기계공고 출신이기도 한 장귀녀 사장은 '귀금 코리아'라는 중소기업 금형 공장의 대표다. 그녀는 모교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후배들을 챙기며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고급 기술로 살아남으라'고 일갈한다.

재경과 두현, 준수는 맞이할 스무 살을 앞두고 차츰 알아간다.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할 수 없을 어른들에게도 각자 삶을 버텨온 투지와 사정이 있고, 그리하여 고유한 세월의 문양이 있음을. 그러나 "도무지 눈 뜨고 볼 수 없는, 돈이 최고인 세상"에는 의문을 갖는다. 재경의 오빠가 사고를 당한 곳은 다름 아닌 장귀녀가 사장인 회사였고, 장귀녀는 '오빠에게 사과하라'는 재경의 요청을 거절한다.

자신은 "철저하게 노력하는 사람"이며 "공장은 학교가 아니"라는 말을 힘주어 말한다. 재경은 장귀녀의 딸 '제니퍼'가 실습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 거냐며 반문한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할 자유"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했다며 그 뻔뻔함이 어떤 희생의 결과를 낳았는지 질문한다. 그 물음은 독자에게로 송곳처럼 이어진다.

미래를 치열하게 계획했던 그를 기억했으면

소설은 파렴치한으로 가득한 이 세계가 두부 자르듯 선악을 구분할 수 없는 무엇이라 누누이 말하는 듯하다. 고체도 액체도 아닌 간교한 세월이 스민 선득하고도 다정한 복합체.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사를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서로 지향하는 가치관이 불과 얼음만큼 달라도, 계층이 천지 차이로 달라도, 우리들 삶의 고리만큼은 지독하게 얽혀 서로를 파괴하거나 지탱하고 있음을 작가는 보여주고자 했던 게 아닐까.

현장실습생 오빠를 사지로 몰고 갔기에 재경에게 원수 같은 장귀녀가 두현의 엄마 절친이었다는 사실, 무기력에 시달리는 엄마가 집을 비워 홀로 남은 어린 두현을 장귀녀가 돌봤다는 사실 등이 소설 중반부에 드러난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 삶이 예상보다 타인의 삶 영향권에 있다는 것, 우리 삶은 누군가의 세계에 발 들이지 않고선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던 듯싶다.

절망 속에서 두현은 각설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쇠를 깎는 순간에는 아무런 잡념이 들지 않았"기에 밀링을 꾸준히 좋아하고, 하고 싶고, 먹고 싶고, 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반가워한다. 청산가리의 천 배에 달하는 복어의 독성이 세상을 집어삼키면 악쓸 줄 알고, 악쓰지 못하고 스러져 간 엄마가 목숨을 던진 건 혼자였기 때문임을 이해한다.

나름 생애의 굴절이 스민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임에도 테니스공이 좌우로 통통 튀듯 문장이 경쾌하고 밝다. 일찍 철든 청소년이 읽는다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용기를, 이 세계를 모르는 청소년이 읽는다면 친구를 아는 공부가 될 것이다.

때때로 지옥 같은 일상에서 두현은 자라난다. '주식으로 재산 날린 비정한 불륜 남편… 홧김에 아내는 청산가리'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거 꼭 써야 했냐"고 시원하게 반문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나아가 주인공 두현에게 결정적으로 반한 대목이 한 가지 더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대학 안 나오셨잖아요.' 두 분의 학력은 나란히 중졸이었다. 할머니는 다섯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어릴 때 옷 가게에 들어가 장사를 배웠고 할아버지는 농사일을 거들다가 공사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근데 잘 사시잖아요. 이렇게 근사하게.'" - <나는 복어>(문경민) 중에서

내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를 살피며, 장차 일터에서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두어 명은 있었으면 하고 소망하는 두현.

나는 이 소설을 올해 봄에 읽었다. 만개한 벚꽃 사이에서 "쇠도 깎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두현에게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기운이 서린 열여덟을 보았다. 동시에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은 마음으로 교복을 입고 등굣길을 나서던 어린 나를 만났다.

'꿈 많은 나이에..'지난 7월 2일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와 진보당, 기본소득당이 함께 연 '전주페이퍼 청년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사망자 유가족이 고인이 적어둔 메모장을 보여주고 있다. 2024.7.2 ⓒ 연합뉴스


분명히 기억한다. 스무 살 계획을 종이에 쓰며 미래를 떠올렸던 나의 시절을. 올해 6월 16일, 전주시 팔복동에 위치한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목숨을 잃은 열아홉의 사고를 다룬 기사가 몇 개월간 쏟아졌다.

설비 점검을 하다 의식을 잃은 청년이 한 시간 가량 방치된 사실이 드러났지만 사측은 해명에만 급급하고, 정치 기사에 파묻힌 오늘의 더위는 여전히 지독하다. 여름이 다시 온대도 그를 이렇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열아홉 제지공장 노동자라는 이름 대신, 미래를 치열하게 계획했던 청년, 자기 삶을 잘 살고자 했던 한 사람으로.

'남에 대한 험담 함부로 하지 않기, 하기 전에 겁먹지 않기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아보자'고 손글씨를 썼던 청년의 시절은 지워지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가 그를 노동자 너머의 존재로 기억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끝낼 수 없는 진상규명과 함께 열아홉 청년의 투지와 소망을 새긴다. 그의 꿈이 구체적이었듯,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연습도 부디 구체적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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