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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서 모두와 만나

햇빛연금은 신안군 안좌면 여흘리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등록|2024.08.20 15:15 수정|2024.08.20 20:34
지난 6월 24일부터 29일, 5박 6일간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와 전남도당이 주관하고 주최한 <2024 햇빛바람농활 - 공유의 섬 신안, 지속가능한 미래>의 농활대가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여흘리를 다녀왔다. 기후위기와 지방 소멸을 넘어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를 시행하여 태양광 발전의 수익을 나누는 햇빛연금을 배운다는 취지의 조금 특별한 농활이었다.

햇빛연금을 받고 있는 주민을 직접 만나는 주민 구술 인터뷰, 신안군청과 협동조합의 전문가를 초청하는 햇빛연금 간담회, 농가 일손 돕기, 해변 플로깅 등을 진행했다.이 중 주민 구술 인터뷰는 햇빛연금뿐만 아니라 농촌의 상황과 지방 소멸 등에 대해서도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본 기고문에서 다룰 인터뷰는 여흘리를 집집마다 방문하여 인터뷰를 요청한 과정에서 흔쾌히 인터뷰와 언론 기고를 허락해주신 두 분의 주민인 A 어르신과 B 어르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간을 내어 질문에 답해주신 두 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한때는 붐볐던 마을, 여흘리

여흘리는 주로 마늘과 양파 농사를 짓는 마을이다. 안좌도(안좌면)의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안좌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지 않는 마을인 여흘리는 토양이 비옥하여 전부터 사람이 많이 모여든 풍요로운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 여유로움을 보여주듯 여흘리에는 언제나 새소리가 가득했고 마을 어귀의 우실(방풍림)에는 300년 넘은 보호수가 마을을 감싸 안 듯 가지를 뻗고 있었다.

여흘리여흘리 마을입구 모습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대원들은 어르신들께 현재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흘리는 언제부터 살게 되셨는지 등의 질문으로 물꼬를 틀며 이들이 여흘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대원들은 그들이 직접 겪고 있는 농촌의 상황 또한 전해 들을 수도 있었다.

여흘리에서 나고 자랐다던 A 어르신은 젊은 시절부터 목포에 거주하다 노년이 되어 여흘리로 다시 돌아왔다고 언급했다. 어릴 적의 여흘리와 지금의 여흘리가 어떻게 달랐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어르신은 예전에 비해 인구가 상당히 줄어든 것을 꼽았다.

"여흘리가 인구가 상당히 많았죠. 그랬는데 지금은 말 듣기로는 뭐 100명 미만이라고 한 것 같은데. (…)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어. 옛날에는 이 구멍가게가 우리 마을만 해도 다섯 개인가 있었어요. 그랬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고 면 소재에만 있잖아요."

농촌의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노동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A 어르신은 힘든 일을 하기 위해 면 소재에 있는 인력센터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일당을 주고 고용한 적이 있다고도 하셨다.

"면 소재지에 인력센터가 두 군데가 있어 갖고. 태국, 베트남, 중국, 필리핀 사람들이 와서 일당 받고 그렇게 (일을) 하거든요. 여기서는 이제 젊은 사람들이 없으니까. (…) 농촌 일을 특히 하려면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한디, 인력센터에 그렇게 의뢰를 해갖고 힘든 일을 해나가고 그러죠. 저도 인자 뭐 치우고 그럴 때는 외국 사람 불러서 일당으로 얼마 주고 이렇게 하고 그랬었어요."

한편 여흘리에 거주한 지 30년 정도 되었다는 B 어르신은 30년 전의 여흘리와 비교했을 때 농기계가 들어오거나 도로가 포장되는 등 농촌에 현대화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눈에 띄었다고 말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이나 영화관 같은 시설들을 이용하려면 최소한 목포까지는 가야 하고, 신안에서 목포까지 가는 버스가 무상이긴 하지만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하루 운행 횟수는 적어 버스보단 주로 차로 이동한다고 하셨다.

"교통은 지금은 차 끌고 다니니까 이제 좀 덜하고. 병원 같은 거, 우리가 영화를 한 편 본다 해도 볼 수가 없는 환경이었잖아요. 그런 편의시설 같은 게 없대요. 그런 걸 하려면 이제 나가야 되니까 최소한 목포까지는 가야 하니까. 요새는 인터넷으로 영화들을 보지만 그래도 영화관에서 보는 거 하고 또 틀리잖아요?"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은 과거 섬에서 섬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배를 타야 했지만 현재는 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숱하게 많고, 2019년에는 신안 중부권의 7개 섬을 잇는 천사대교가 개통되기도 했다. 과거에 비해 교통도 많이 발전하고 복지도 생겼지만, 문화생활을 하거나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긴 시간을 들여 외부로 나가야 한다. 아직 상대적·절대적 인프라가 부족한 시골 지역은 지속적인 인구 유출과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햇빛연금 '받으니까 좋지만 걱정은 된다'

올여름 우리가 농활을 신안으로 떠나기로 한 것은 신안의 햇빛연금에 대해 알고, 좀 더 자세히 공부하면서 점차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원들이 서울에서 뉴스 기사로 접할 수 있는 자료들은 대부분 신안군의 입장 위주였기에, 여흘리에서 주민들과 대화하며 솔직한 생각을 들을 기회라고 생각해 구술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했다. 여흘리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신재생에너지 협동조합에 가입한 마을이기도 하다.

A 어르신은 다시 여흘리로 돌아온 후 국가가 농촌 복지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느끼셨다고 말했다. 대원들이 혹시 신안의 햇빛연금도 그런 혜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냐고 질문하자 그렇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여흘리에서 받을 수 있는 햇빛연금 배당금은 3개월에 인당 17만 원. 햇빛연금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시냐는 질문에 어르신은 주기적으로 목포에 다녀오곤 하는데, 큰돈은 아니긴 해도 주유소 기름값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저 같은 경우도, (금액이) 가정에 큰 도움은 안 되지만 내가 목포를 다니고 그러니께 유류값만 해도 솔찬히 되거든요. 그러니께 여기 지역 화폐로, 이 지역 내에서 써야 되기 때문에 주유소에서 나는 많이 활용하고 있죠. 다른 분들은 퇴비, 거름 같은 거 농협에 가서 구입을 하고, 인자 또 마트에 가서 식료품 그런 것도 사고 그러는 것 같애요."

인터뷰 당시에도 종자로 쓸 마늘을 계속 쪼개고 계셨던 B 어르신의 경우 햇빛연금으로 농약이나 생필품을 구매한다고 하셨다.

"농약 같은 거 생활 필수품 같은 거 필요할 때 한번씩 쓰고 그러죠 뭐."

대원들이 햇빛연금을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협동조합 가입 경로를 질문했을 때 B 어르신은 처음엔 사람들이 믿지 않았지만, 안 하면 나만 손해였기에 가입했다고 답했다.

"그때 당시에는 면에서 서류를 가져오고 이랬었제. 그래서 서로 (가입)하면 뭐 달달이 돈 얼마 주네 어쩌네 그 당시에 처음에 할 때 그랬었는데 믿지 않았제, 사람들이. 근데 우리는 제일 처음에 했어.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어, 돈 준다니까 한다고. 근데 안 하면 나만 손핸데 해야지."

물론 햇빛연금을 통해 정기적으로 돈을 수령하니 좋고, 큰 돈은 아닐지언정 가계와 생활에 도움이 되어서 좋지만 곧이어 두 분 모두 장기적으로는 태양광 발전소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우리는 매설된 송전선로가 인체에 해롭지는 않은가 하는 걱정, 패널을 처분할 때 발생할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 등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은 또 어떻게 보면 우리 사람에게는 좋지 않거든. 전자파가 나오고 그러니까. 그래서 이 시골 사람들은 그런 것을 많이 모르니까 우선 그런 혜택을 좀 받는다 해서 그걸 좋아는 하지만은, 이것이 만성적으로 시설이 많이 되면 결과적으로 우리 인간에게는 별로 그렇게 좋지는 않거든."

"(햇빛연금이) 괜찮다고는 생각 않지. 좋은 건 아니니까. 우리 인체에 좋은 건 아니잖아요."

"이게 나중에 처분할 때, 파괴됐을 때 쓰레기로 발달(발생)되니까 그것도 문제가 되죠. 재활용을 한다든가 뭐 그런 것도 없고."

여흘리는 발전소가 인접한 지역은 아니지만, 발전소와 더 가까운 주변 마을에서는 주민들의 반대 투쟁도 있었고, 거리가 가까워 더 많은 금액을 지급받는다고도 말씀하셨다. 농활을 오기 전 햇빛연금에 대한 사전조사를 했을 때 '발전소 거리에 따라 가중치를 둔다'는 건조한 문장으로만 보았던 부분이 실제로는 주민이 피해나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돈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전에 언제 나 목포 갔다 오는디 차가 막혀 있더라고. 그래서 뭔 일이냐고 그랬더만 (옆 마을) 주민들이 도로에서 막 누워가지고 데모를 한 모양이에요. 그래갖고 이렇게 잘 합의를 봐갖고 그 마을은 또 우리보다 1인당 얼마씩 더 지급을 받죠."

한편 햇빛연금의 금액이 더 늘어나면 어떠실 것 같은지에 대한 질문도 했는데, 신앙인이기도 한 A 어르신은 농촌에서의 신앙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A 어르신은 농촌의 인구가 적다 보니 교회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그러한 혜택을 많이 받는다면 교회를 운영하는 사람이 교회 활동을 계속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정기적으로 보장받는 충분한 금액의 소득은 농촌 공동체에서, 혹은 꼭 농촌이 아니더라도 신앙 외에도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농촌교회가 상당히 좀 어렵거든. 인구가 없고 또 젊은 사람들이 가서 또 교회에서 북적북적해야 좀 생동감 있고 그럴 텐디 나이 묵으면 (신을) 믿었던 사람들도 다 노쇠해갖고 하늘나라 가셔버리고 그러니까 농촌교회가 어려워. (…) 그렇게 혜택을 받으니까 교회 활동하는 데 좀 도움이 되겄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대기업이 독점하는 이익, 주민들과 나눠야

농활대원들은 이렇게 주민의 실제 생활 속에서 느끼는 햇빛연금이란 어떠한지 들어본 한편 지자체의 정책적인 관점에서도 햇빛연금을 바라보는 시간도 가졌다.

주민 구술 인터뷰를 마무리한 다음날인 목요일(27일)은 여흘리에서 잠시 벗어나 내호리 태양광 발전소에서 햇빛연금 제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해 신안군청 미래에너지팀과 안좌쏠라시티(주) 태양광 발전소, 협동조합의 연사를 모시고 농활대원이 직접 기획한 간담회에 참여했다.

햇빛연금 간담회<기본소득이 바꾸는 우리 마을, 햇빛연금으로 비춰보다> 간담회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간담회에서는 태양광 발전소 현황부터 신안 재생에너지 이익 공유제의 추진 과정 및 성과에 대해 정리된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간담회 내용과 인터뷰 내용을 대조해 볼 수도 있었는데, 이익 공유제에서 발생하는 주민소득이 제도상에서도 피해보상금의 개념으로 되어있으므로 주민이 이를 '연금'이라기보다는 피해에 따른 보상금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대개 태양광 발전소와 같은 대규모의 산업 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의 주민들이 받는 피해보상금은 일시적이다. 마을회관을 지어주는 것으로 개별 피해보상금 지급을 대신하기도 한다. 신안군에서는 피해보상금을 지급한 이후의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으로 남겨지는데 이익은 기업이 모두 가져가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이익을 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햇빛연금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주민 인터뷰에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태양광 발전소가 환경이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에 대해 대원들이 질문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연사들은 전자파 등 인체에 해로운 영향은 거의 없다며 관련 사실에 대해 매우 능숙하게 답변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자체가 주민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모두와 함께 가기 위해

여흘리에서 주민들을 만나 직접 들어본 이야기는 그전까지 접한 정보와 일맥상통하는 것도 있었지만, 처음 듣는 것이나 생각하지 못해본 점들도 있었다. 태양광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민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햇빛연금 또한 피해보상금의 차원으로 인식되는 면이 있었다.

아쉽게도 어떠한 경로로 그러한 믿음이 생겼는지, 전자파에 대한 염려는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으나, 우리가 주민 구술 인터뷰와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주민들의 생각과 신안군청·협동조합의 생각에는 다른 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매끄럽게 정리된 언론 매체로부터는 알 수 없었던 햇빛연금에 대한 의견과 시각의 차이는 현실에서는 모든 일이 결코 그렇게 말끔할 수 없으며, 서로 다른 개인들이 존재하므로 굴곡짐과 요철이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오히려 주민들에게서 어느 한 가지의 의견만 일률적으로 들었다면 더욱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에서 비추어지는 주된 서술과 지역 주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차이는 기존에 햇빛연금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우리들의 인식에 신선한 균열을 일으켰다. 그 틈을 타고 불어온 것은 더 많은 소통에 대한 가능성이었다. 신안군에서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주민과 공유하는 것을 추진해왔듯이, 주민과 기업 등 햇빛연금과 관련된 이해관계자 모두가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라본다.

이번 햇빛바람농활은 모든 농활대원들이 참여하여 합의한 대로 직접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방식으로 농활을 진행했다. 자잘한 생활 수칙부터 여흘리 주민 분들을 모시고 저녁을 대접하고 함께 어울리는 마을잔치의 세세한 준비까지 모든 것을 회의를 통해 합의하여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의견, 저런 의견도 제시되며 하나의 결정을 도출해내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경험은 우리에게 소통의 의미와 가치를 체감하게 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온 배경과 역사가 다르기에 생각과 입장도 다르다. 제각기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 중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공동의 합의를 만드는 것은 분명히 힘든 일이다. 하나의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모두의 이야기가 말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고, 충분한 시간과 적합한 절차를 통해 끊임없이 논의하는 것은 분명 더 좋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 줄 것이다.

간담회에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지만, 신념이 있었기에 어려워도 해낼 수 있었다'는 연사 분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신안이 모두의 손을 잡고 지속가능한 길로 가는 길의 첫걸음을 내딛는 중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 또한 그 길을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을잔치햇빛바람농활 대원들이 여흘리 주민 분들과 함께한 마을잔치 모습이다 ⓒ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

덧붙이는 글 '2024 햇빛바람농활 기본소득 구술 인터뷰' 연속 기고글 연재글입니다. 남혜윤(y00nie), 김재현(orye) 시민기자가 함께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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