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공범들이 널렸으니 일본 극우는 얼마나 좋을까
[사의재의 직필] 일본 역사 세탁의 공범들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4.8.15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연합뉴스
"친일이 뭐 어때서?"
광복절을 전후해서 윤석열 정부가 보여주는 태도는 이 말로 요약해도 될 듯싶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나 일제 강점기 때 쌀을 수탈당한 게 아니라 수출했다고 미화한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과 김주성 이사장 등 뉴라이트 인사들을 버젓이 임명하고도 오히려 당당하다.
▲ 미국 외교 전문지<디플로매트>는 기고 형태로 실린 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내각이 자국 역사를 세탁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완벽한 공범”(The Kishida administration has found a perfect accomplice in South Korea’s President Yoon Suk-yeol in laundering Japan’s history)"이라고 했다. ⓒ <디플로매트> 보도 갈무리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시마노킨잔(佐渡島の金山)' 일명 사도 광산의 세계 산업 유산 등재도 일본의 이런 수정주의적 민족주의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사도 광산은 일본 니가타 노동 기준국이 작성한 공문서를 통해서도 최소 1140명의 한국인 강제 노동이 확인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추진하는 일본을 향해 거세게 항의하고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는 등재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어야 한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 등 산업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할 때 지키겠다고 약속했던 후속 조치를 지키지 않고 있다. 당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한국인 수만 명이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던 하시마(군함도) 탄광, 야하타 제철소, 미쓰비시 조선소 내 7개 시설을 포함한 일본 메이지 시대 산업 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면서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understanding of the full history of each site) 할 수 있는 해석 전략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래서 일본 대표는 "이 권고를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1940년대 수많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 아래서 강제 노역한 사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와 같은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포함시키겠다"라고 발언하였고 이 발언은 결정문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조건부 승인을 해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몇 해를 끌다가 강제노역이란 표현 대신 "일본의 산업을 지원한(supported) 한반도 출신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었다"라고 기록했다. 2020년 일본 정부가 공개한 도쿄 소재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 내용에서도 한국인 강제노동과 민족 차별을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들만 전시하자 2021년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의 유네스코 결정 불이행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채택한 바 있다.
그런데 일본은 거기서 그친 게 아니다
일본은 "누가 역사를 날조하는가. 군함도는 지옥 섬이 아니다" 이런 자료를 한글로 만들어 배포하고 홍보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메이지 시대 산업 유산을 홍보하는 사이트를 만들어서 많은 예산을 들여 제국주의 역사를 미화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2024년 예산을 심의할 때 동북아 역사재단 예산 중에 일본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을 늘리자고 주장했다. 일본이 산업 유산 홍보비로 일 년에 우리 돈으로 40억 원을 쓰는데 우리는 있던 홍보 예산도 반토막을 내서 6천만 원으로 축소 편성되어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비 75억 원 중에 30억을 삭감해서 편성했다.
일제 침탈사 연구는 2028년까지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인데 목표인 260권 발행을 225권으로 45권 축소하고 기간도 2026년으로 2년 앞당겨 종료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해서 국회에 제출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일제 침탈사 사업비 예산을 15억 원 증액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교육부는 도리어 10억 원을 삭감해서 국회에 제출했다. 일본 침탈사 연구 같은 것에 돈 많이 쓰고 오래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노골적인 태도였다. 이 예산을 복원하기 위해 교육위와 예결위에서 수없이 지적하고 요구했지만 끝내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 광산 내부에 모형이 설치돼 있다. 사도 광산 내부는 에도 시대 흔적이 남은 '소다유코'와 근현대 유산인 '도유코'로 나뉜다. 사진은 소다유코 모습. 2024.7.28 ⓒ 연합뉴스
우리가 이렇게 일본의 역사 왜곡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동안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일본의 메이지 시대 산업 유산을 소개하는 관광 가이드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홍보 사이트를 만들어 영상으로 쉽게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유네스코에 등재한 이 산업 유산 속에 요시다 쇼인이 세운 쇼카손주쿠(松下村塾)가 들어 있다. 야마구치현 하기시 관광 가이드 자료를 보면 쇼카손주쿠에 대해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 유산" "이토오 히로부미와 같은 일본의 근대화에 큰 공헌을 한 많은 사람들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쇼카손주쿠는 요시다 쇼인이 세운 사설학당이다.
요시다 쇼인은 일본 극우 정한론자들의 정신적 스승이고 일본 우익 세력의 원조다. 아베 총리가 취임식을 앞두고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던 사람이다. 이 학교에서 요시다 쇼인은 이토오 히로부미, 가쓰라 태프트 밀약의 주인공 가쓰라,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 총독 등 조선을 침탈한 주역들, 수많은 정한론자들을 길러냈고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의 논리와 당위성을 가르쳤다.
메이지 시대의 산업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것의 부당성을 거론할 때 우리는 가혹한 노동 조건과 인권 유린 그리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는 태도를 지적한다.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유네스코 정신에도 위배된다.
그러나 일본이 하는 짓을 보면 그런 지적은 아예 들을 생각조차 없다. 일본은 일본 산업 유산의 한복판에 요시다 쇼인을 추앙하며 새롭게 부활하는 요시다 쇼인의 정신을 가슴 깊이 지니고 싶고,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속내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태도다
윤덕민 주일 대사는 등재 추진에 대해 "절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교부도 마찬가지다. 한·일 간 협의가 이루어질 때 외교부가 우리의 뜻을 주장해야 하는데 우리 외교부는 일본과 협상할 때는 일본 눈치만 보고, 미국과 협상할 때는 우리 뜻을 미국에 전달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뜻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일을 주로 해 왔다. 어느 나라 공무원인지 알 수가 없다.
<디플로매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내각이 역사 세탁을 하는데 완벽한 공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대통령이 일본에 항의하거나 우리 뜻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매사에 일본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이니 눈치 빠른 외교부 공무원들 중에 누가 바른 소리, 이 나라를 위한 의로운 소리를 하겠는가. 국가의 중요한 자리마다 공범들이 널려 있으니 일본 극우 세력들은 얼마나 좋을까.
▲ 도종환 ⓒ 도종환
*필자 : 이 글을 쓴 도종환 시인은 19대 20대 21대 국회의원과 문재인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올해 5월에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창비)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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