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택배기사에게 건넨 찬 음료수 하나, 그리고 또

자신의 힘듦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등록|2024.08.22 09:12 수정|2024.08.22 10:16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휴일 오후, 곧 택배가 도착한다는 문자가 왔다. 산청 햇밤고구마 하나를 주문했었다. 거리로 향한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뜨거운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거리에는 다니는 사람도 없다. 그나마 내가 사는 곳은 엘리베이터라도 있지만 이 폭염 속에서 택배를 들고 옮겨야 하는 기사들의 힘듦은 정말 가늠이 되지 않는다.

▲ 택배기사님이 바닥에 물건을 내려놓고 들고가기 좋게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음료수를 그릇에 담아 현관문 얖에 두었다. ⓒ 김숙귀


도착한다는 시간에 맞춰 냉장고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문 앞에 놓아두었다. 얼마후 문 앞에서 언뜻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여니 택배가 놓여 있고 음료수는 없었다. 나는 택배 기사님이 차에 내려가 음료수를 마시며 잠깐이라도 더위를 식혔으면 하고 바랐다.

그저께 아침에는 외출을 하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는데 청소 아주머니께서 밀대로 복도를 닦고 계셨다. 아침 시간인데도 아주머니의 얼굴에 땀이 흐르는 게 보였다.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음료수를 하나 꺼내 아주머니께 드렸다. 아주머니는 '안 그래도 되는데' 하시더니 고맙게 잘 마시겠다고 인사를 하셨다. 돌아서 걷는 내 등 뒤로 캔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주 어느 날, 잠시 외출했다 집에 돌아와 버리려고 묶어두었던 쓰레기봉투를 들고 분리수거장에 내려갔다. 경비원 아저씨께서 더위에 벌게진 얼굴을 한 채 목에 두른 수건으로 연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계셨다.

그늘도 없는 분리수거장에서 일을 끝내면 지상과 지하 1, 2층 주차장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주민들이 내놓은 종이박스도 일일이 납작하게 만들어 가지런히 정리해야 한다. 자꾸 마음이 쓰였다.

마침 호주머니에 거스름돈이 들어 있었던 터라 아파트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시원한 음료수를 사서 아저씨께 드렸다. 그저 잠시라도 땀을 식힐 수 있기를 바랐다.

사나운 더위가 한 달 넘게 맹위를 떨치고 있다. 가축 수십 만 마리가 폐사하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정도면 가히 살인적인 더위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힘듦을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받는다.

폭염 속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던 20대 청년이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보며 몹시도 가슴이 아팠다. 주위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그런 참담한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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