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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토박이 연극인이 광야 같은 충북 음성을 택한 이유... "이젠 내 지역 됐다"

[청년일기, 청년이 행복한 음성만들기] 홍정연 극단 '잇다' 대표

등록|2024.08.22 15:28 수정|2024.08.22 15:57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힘이 넘치는 시기, 청년. 그러기에 청년이 머무는 곳은 활기가 넘친다. 특히 충북 음성군같은 소도시에서 청년의 활력은 지역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준다. 그렇다면 음성군의 청년들은 행복할까? 이 물음에서 ‘청년 일기, 청년이 행복한 음성만들기’는 기획됐다. 청년의 소리를 듣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음성을 꿈꾸며, 극단 ‘잇다’의 홍정연 대표를 만났다.[기자말]

▲ 충북 음성군 생극면 소극장 '하다' 소속 극단 '잇다' 홍정연 대표. ⓒ 임요준


충북 음성군 생극면 응천 가로수 벚나무길을 달리다 보면 주변과 색다른 빨간색의 건물을 마주한다. 서울 연극인들이 터를 닦은 음성생활문화예술공간 소극장 '하다'이다.(충북 음성군 생극면 음성로 1619번길 38)

그곳에서 만난 극단 '잇다' 홍정연(35) 대표는 생기가 넘쳤다. 에너지 넘치는 성격에 소화하기 힘든 올 블랙 옷차림은 청년이기에 잘 어울렸다.

홍 대표의 연극 인생은 아홉 살 때 찾아왔다. 초등학교 2학년 어린아이는 부끄럼도 없이 엄마의 김장담그는 모습을 1인 마임으로 재현해 1학년부터 6학년 전 교실을 돌며 배꼽을 잡게 했다.

홍 대표의 연기는 경기대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화됐다. 원로 배우들의 연극공연에 스탭으로 참여하면서 극단 운영을 익혔고, 단국대 대학원에서 연극학을 배우며 철학이 담긴 연극을 접했다.

국립극단 단원이기도 했던 그는 선배 황금미영씨가 금왕에 소극장을 열면서 음성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기를 5년의 세월.

처음 와본 음성은 광야와도 같았다. 친구가 없고, 경제적인 고통에다 낯설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성 곳곳에 있는 저수지를 보면서 눈이 확 트였다. 용산저수지, 사정저수지, 백야저수지, 원남저수지... "음성은 참 아름다운 저수지가 많구나."

저수지 매력에 빠지면서 음성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는 홍 대표. 그는 말한다. "음성에 이제 사는 것 같다. 음성은 내 지역이 되었다. 그리고 어디 가서도 살 수 있겠구나."

- 연극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친구들에게 엄마의 김장담그는 모습을 마임으로 연기했는데 어찌나 재밌었던지 학교 전체에 소문이 나면서 전체 교실을 돌면서 연기를 한 기억이 있어요. 그때가 제겐 첫 공연이 아니었나 싶네요.(활짝 웃음)"

- 어려서부터 끼가 있었네요.

"맞아요. 그런데 엄마는 무척 싫어하셨어요. 엄마의 반대로 결국 포기했죠. 고3 수능을 망치고 좌절해 있을 때 언니가 원서비를 내주면서 3개 대학 연극영화과에 지원했죠. 그중 두 곳에서 합격했고 경기대에 진학하게 됐어요.(실기 과외 한번 받지 않고 이룬 결과다)"

- 힘든 시기에 대학원에도 진학하셨다고.

"네. 단국대 일반대학원 연극학을 마쳤지만 아직 논문을 마무리하지 못해 수료로 돼 있어요."

- 일반대학원 공부는 어렵지 않았나요?

"많이 어려웠죠. 솔직히 대학원 진학은 엄마의 소원이었어요. 교수님은 나의 무식함에 놀라셨지만 나는 정말 재밌었어요. 철학을 공부하는 것 같았어요."

▲ 충북 음성군 생극면 소극장 '하다' 소속 극단 '잇다' 홍정연 대표. ⓒ 임요준


- 입봉은 무엇이었나요?

"프로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더욱이 졸업과 동시 입봉을 올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죠. 다행히 저는 스무 살 때부터 대학로 소극장에서 조연출로 일한 게 엄청 큰 경험이 됐어요. 2011년 졸업과 동시 '돌고래가 나오는 꿈'으로 올리게 됐어요."

- 국립극단 단원도 하셨고 경력이 화려하시네요. 음성은 어떻게 오시게 됐죠?

"5년 전쯤이네요. 연습실 하나 없이 여기저기 헤매고 있을 때였는데 황금미영 선배께서 금왕에 소극장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죠. 깜짝 놀랐죠. 지하창고를 개조했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잘 꾸며 놓으셨어요. 선배는 언제든지 이곳을 이용하라고 하셨죠. 정말 고마웠어요. 저는 인복이 많아요. 이게 인연이 되어 음성으로 오게 됐어요."

- 회고하면서 눈물을 흘리셨는데 많이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음성에 와 보니 어땠어요?

▲ 홍정연 대표가 음성에서 첫 시작을 회고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 임요준


"처음에는 서울과 안산을 왔다 갔다 하면서 공연을 했고 이곳에서는 충북문화재단 거점 단체로 문화예술교육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역이 보였어요. 캄캄했어요. 서울에서 누려왔던 것을 이곳에서는 불가능했어요. 충격적이었죠. 일단 기동성 때문에 자가용을 준비했고, 운전하면서 이곳저곳을 다니게 되었는데 저수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너무 예쁘고 좋았어요. 낚시도 배웠어요. 물 위에서 잠을 자면서 별을 보고 아침엔 물안개가 정말 아름다웠어요. 자연과 함께함이 좋았어요. 돌파구였는데 나름 좋았어요."

- 자연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지금은 정말 자유로워요. 충분히 즐기고 있어요. 주말에는 수안보에 가서 식당 서빙을 하죠. 도립극단 단원이 되었으니 경제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거라 생각해요. 경제적 갈증은 해소됐는데.... 문제는 또래가 없어요. 언니들은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어요. 친구를 만나려면 서울을 가야하고 오픈채팅은 무서워서 못해요. 나랑 맞는 친구는 누구일까? 그때 황금미영 선배가 한마디 툭 던졌죠. '청년문화예술 사업을 해봐'라고요. 그래서 시작됐죠."

- 또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시작된 게 청년문화예술이군요. 청년들이 많이 모였나요?

"작년 첫 회에는 부족했고 올해는 15명 모집에 30명이 지원했어요."

- 홍 대표에게 음성은 어떤 곳인가요?

"음... 음성에 이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성은 내 지역이 됐어요. 그리고 또 하나, 어디 가서도 살 수 있겠다라는 용기가 생겼어요."

- '음성에 사는 것 같다'라는 말이 와닿네요. 그렇다면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극단 열심히 해서 내년에도 활동하고 싶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 많이 하고 싶어요. 항상 도움만 많이 받았는데 이제 베풀고 싶어요."

▲ 충북 음성군 생극면 소극장 '하다' 소속 극단 '잇다' 홍정연 대표. ⓒ 임요준


- 음성군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정책에 파격성이 있었으면 해요. 대개 행정은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데 과감하게 도전하고 노력해줬으면 해요. '충주맨'도 파격적이잖아요. 윗분들께서 '우리가 책임질 테니 해봐' 하는 게 있었으면 해요."

- 행정의 파격성, 정말 의미심장 하네요. 끝으로 지역 청년으로서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강남은 도로가 빨리 깔린다'라는 말이 있어요. 강남 주민들은 불편하면 즉각 행정에 해소 요청을 한다는 거죠. 불편하면 들여다보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이 있었으면 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진천음성신문에 동시 보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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