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남주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2024, 지금 김남주] '그런 시'를 읽는 일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딱 30년이 되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 온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김남주 정신이 필요하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지금 여기에서 김남주가 다시 살아 서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24인의 문학인들과 활동가들이 2024년의 한국 사회를 짚어 보며,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한다.[편집자말]
김남주 30주기를 맞아 기획된 이 연재에 참여하기로 했을 때, 나는 '아 그 김남주' 했다. 그런데 '그 김남주'라니? 김수영, 신동엽과 함께 언급되었다고 기억하는 그 이름. 그렇다는 건 고등학생 시절 대입을 대비하는 주입식 교육이 낳은 뜻밖의 수혜 가운데 하나였을 '그 김남주'일 터였다.
(물론 의무교육 과정이 아니라, 대학에서 배운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체제는 '억압에 저항하는 시민 주체'로서의 감각이 깃든 문학을 '가르치도록' 승인했다. 그게 대입 입시를 위해서든 취업을 위해서든 뭐에 따라서였든 말이다. 체제는 내게, 시민에게, 청년에게, 학생에게 무엇을 승인해왔던가. 그런 시를 읽히는 일이란 건 '유능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문학적 소양 학습에 불과한 것일까?
이것은 '활자'에 대한 탄압이다, 아니다
'시' 혹은 '문학'을 통해서 시대정신을 배우고 그것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다. 단어, 문장, 활자 따위를 보고 어떻게 정치적인 감각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며, 어떻게 '역사' 즉 시간을 건너뛴 시대 감각을 헤아린다는 것일까?
하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활자 매체를 탄압함으로써(검열하거나, 복자 처리하거나, 배부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고 체제의 정당성을 고수하려고 했던 '탄압의 역사'를 헤아리건대 활자의 형태로서 제출되는 문학이란 것은 분명 '위험한 사상'인가 보다. '보이는 것보다 많은 것이 들어있는', 글자의 조합이 의미하는 것 이상의 무엇.
▲ 1985년 광주교도소에서 김남주 시인(제일 왼쪽) ⓒ 김남주기념사업회
내가 기억하는, 그리고 사람들이 그의 출소 전후의 시를 통해 목격되기를 바랐던 김남주 시의 '정수'란 시대의 폭력과 유신 체제의 폭압이 반공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공공연하게 민중-주체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지는 현실에 대한 신랄하고도 생생한 감각일 것이다.
김남주는 자신이 국가 이데올로기의 직접적 피해 당사자이자, 그것에 저항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렇듯 시대의 폭력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살아있는 증인, 그리고 그 체험 당사자의 말과 삶이 곧 하나의 '시-문학'으로서 제출되는 한 우리가 그의 '시'를 통해 기대하는 바란 단연 당사자적인 정치성이자 생생한 폭력에 대한 기록이다. 나아가 그 기록은 지금 우리의 삶이 어떤 식으로 구속되고 있는가를 '느끼게 만든다'. 그러므로 시는 '활자' 이상의 것이다. '학살1'은 이를 잘 보여주는 시 가운데 하나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
오월 어느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날 밤이었다
(...)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학살1' 일부)
광주 시민을 학살했던 국가 폭력의 현장을 '보았다'라는 말의 반복으로 이야기해나가는 이 시는, 1980년 '광주'를 다루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나는 보았다'라는 당사자성을 통해 발화하면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당시는 언론 통제와 조작 등 체제의 간섭과 구속이 전방위적으로 행하기에 직접 당사자의 감각 속에서 생생히 구현되는 '지금'에 대한 촉구는 '은닉될 수도 있었던 공공연한 사실'에 대한 폭로일 수 있었다.
그러한 현장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고하는 문학은 '활자'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는 하나의 매체였으며, 따라서 시인과 더불어(혹은 시인을 검증하는)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날 김남주의 '시'를 말한다는 것은, 시대의 당사자가 발언하는 진실 앞에 마주선다는 의미다. 우리는 '시'를 읽으며 한 명의 시대인을 발견하고 또 그의 증언을 추체험하면서 '지금 이 시대'에 대한 정치적 감각을 벼려나간다.
김남주를 이어나가기 위해
지금까지 내가, 그리고 세간에서 김남주를 기억하는 혹은 김남주를 통해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김남주를 기억해나가기 위해서 약간 다른 접근 또한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른바 혁명적이고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는 지식인-작가의 시대에 곧 활동가이자 작가이기도 했던 이들의 삶을 톺아봄은 내게 늘 '어떤 질문'을 떠오르게 했다.
혁명 정치와 개인의 삶이란 왜 양자택일 되어야만 하는가? 김남주 시에 따르면 선생, 학생, 목사, 신부, 화이트칼라와는 달리 직공, 농부, 운전사, 아가씨, 어머니, 할머니는 "잃을 것은 압박과 가난의 쇠고랑밖에 없었기 때문"('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일부)에 혁명에 죽기 살기로 참여하기를 당부받는다는데, 정말 그러한가?
'민중 의식'이 프롤레타리아적인 것과 머잖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 '특수한 계급'에 대한 인지가 이항대립적 의미를 구성해내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또다른 '계급성'을 의식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한편 어머니, 아내, 여성의 모습이란 어째서 '순결-민족-민중'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과 밀착되어 있거나 외국 간섭에 의한 탄압의 역사 속에 바쳐지는 부당한 성(性)으로서 묘사되는가 하는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존재는 왜 '그렇게' 재현되었어야 했을까?
혁명시 속 젠더 및 계급에 대한 재현 양태는 학술 지면에서 별도로 탐구되어야 할 지점이기는 하다. 다만, 이 지면을 빌려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우리가 과거의 혁명성을 이어가는 방식이란 것이 '우리가 기대하고 추구한 혁명성'에 대한 보존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시대의 혁명성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채택되었던 재현의 방법론이 오늘날에는 다른 방식으로 평가될 수 있을 어떠한 위계적 지점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질문이 그의 '혁명성'을 기억하고 오늘날 그것을 이어나가는 데 있어 필요한 작업이지는 않을까. 김남주의 시를 읽으면서 그의 시대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점은 이러한 내부적 돌출 또한 주지하여 가지고 가는 일일 것이다.
'그런 시' 읽기
하여 어쩌면 사람들은 별로 기대하지 않을 부분일 수도 있지만, 내게 있어 김남주의 시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혁명하는 삶에 온통 자신을 투신했다는 점,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개인의 생활'이라는 것이 완전히 포기되었다는 점이었다.
그의 시를 살펴보면 자신도 어느 정도 이러한 양립 불가능성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부인 박광숙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남주는 "자유인이고 막힌 데가 없"는 '호인'이었으나, "생활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구제불능"이었다고는 하는데) 그 역시 한 명의 생활인이었기에 '생활'에 대한 갈망을 완전히 떨쳐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식구마다 논밭 팔아/대학까지 갈쳐논께/들쑥날쑥 경찰이나 불러들이고/허구헌 날 방구석에 처박혀/그 알량한 글이나 나부랑거리면/뭣한디요/뭣한디요/뭣한디요"라며 그를 비난하는 아우를 두고 "내 눈 속 네 얼굴을 위하여/시라도 써야겠다/그 알량한 시라도 써야겠다/오늘밤과 같이 눈앞이 아찔한 밤에는"으로 응답하는 '아우를 위하여'를 들 수 있다.
다만 그가 포기한 바로 그 '개인의 삶'이 온존되기 위해서 자신의 삶에 지워진 책무가 있음을 그는 알았고 그것에 투신했다. 이러한 지점은 그를 대표하는 '혁명시'에는 전면화되어 있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의 '안온한 일상'에 대한 감각의 시작을 헤아림에 마땅히 시선을 주어야 할 부분이다.
김남주의 시를 통해서 '시대'의 정치성을 읽는 일이란 '정치'를 위해 '생활'을 포기하는 게 마땅하다는 그 구도에 머물지 않고, 정치를 위해서는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할 수밖에 없다)는 데서 오는 자책감을 만들어내는 바로 그 구조적 폭력에 눈을 돌릴 줄 아는 것일 테다.
현대사에 자리한 정치적 개인으로서의 김남주를 돌이킴으로써 이어지는 정치성은, 생활인으로서의 감각을 포기한 위에서야(사실은 '포기'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가족에게, 친구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시를 썼던 것이겠지만) '부끄러운 시'를 쓸 수 있었던, 또 '그런 시'를 쓰게 만들었던 시대를 볼 수 있을 때 더욱 뚜렷해진다.
그의 시는 충분히 '정치적'임에도, 그는 한 시집의 후기에서 자신의 시를 채찍질했다. 왜 그랬던가? 나는 자신의 시를 저주하는 그의 말을 통해 그가 대결하고자 했던 것과 지키고 싶었던 것의 하릴없는 충돌의 장면을 본다. 그리고 그저 '과거'의 계승이 아니라, '현재'의 연속이기 위해 필요한 일에 대해 생각한다. 활자를 넘어, 쓰인 것 이상을, 아니 어쩌면 쓰인 것 그 자체를 제대로 읽어내는 일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책무로 남아 있다.
자본은 인간성과는 양립할 수 없다. 자본은 인간의 탈을 쓰되 스스로 인간의 얼굴을 한 적은 없다. 이것은 철칙이다. 이 철칙이 전일적으로 관철되고 이는 현실에서 시와 시인의 일차적인 일은 저항의 몸짓일 터이다. 이 몸짓 없이 시를 쓰고자 하는 자에게 도피 있어라, 허위 있어라, 저주 있어라. 나와 나의 시에 도피 있어라, 허위 있어라, 저주 있어라. (<사상의 거처>(창작과비평, 1991) '후기' 일부)
*이 글에서 인용된 시는 모두 <김남주 시전집>(염무웅‧임홍배 엮음, 창비, 2014)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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