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지옥' 금강, 새들의 천국으로 변한 까닭
[천막농성 100일 기획-4대강 청문회 열자 ⑤] '그깟 새 한 마리'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8월 6일은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진행한지 100일 째 되는 날이다. <오마이뉴스>는 '세종보 천막농성' 100일을 맞아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과 함께 '4대강 청문회를 열자'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글은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썼다.[편집자말]
20년 동안 환경운동을 하면서 수도 없이 들은 말이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깟 새 한 마리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타박이었다. 하지만 세종보 100여 일 동안의 천막농성 소회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새들이 찾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정치인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지역 경제도 죽은 강에선 살릴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그깟 새 한 마리'가 소중한 까닭이다.
여기 한 개의 알이 있다. 지난 4월 30일, 세종보 천막농성을 시작하던 날에 건너편 하중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 농성장 건너편 하중도에서 포란중인 흰목물떼새 ⓒ 김병기
다음날에는 두 개, 그 다음 날에는 세 개로 늘었다.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흰목물떼새알이다. 그 주변에서 꼬마물떼새도 포란을 하고 있었다. 이렇듯 자갈과 모래로 된 하천의 섬, 하중도는 물떼새의 고향이다. 하중도는 사람과 포유류 등의 위협에서 조금 더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100일 전과 달라진 풍경이 있다면 유조(어린새)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다. 올해 알에서 막 깨어난 어린 새들이다. 금세 청년이 된 흰목물떼새와 꼬마물떼새, 오리류 등은 강가나 자갈밭을 서성이면서 먹이사냥을 다닌다. 박새는 농성장 교각의 작은 구멍에서 두 번이나 무사히 번식을 마쳤다. 작은 벌레를 사냥해 부지런히 나르며 새끼를 키워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 농성장에서 번식을 마친 박새(좌)어미새 (우)박새새끼 ⓒ 이경호
천막농성장 앞 작은 웅덩이를 매일 찾아오는 코발트빛의 새는 물총새이다. 겉모습은 아담하고 아름답지만, 고기사냥의 명수이다. 물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나뭇가지나 바위에 앉아 있다가 화살처럼 물속으로 다이빙을 한다. 사냥한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바닥에 내팽개쳐 기절시킨 뒤 머리부터 먹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녀석들은 잡은 물고기를 암컷에 선물하면서 유혹하기도 하는데 우리네 삶과 다를 게 없다. 농성장에 앉아있으면 두 마리가 함께 날아다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여름철새였던 물총새는 최근 겨울에도 월동하는 종으로 변화되었다. 천막농성장이 유지되는 한 매일같이 만날 수 있는 새라는 뜻이다.
▲ 농성장 작은 웅덩이에 매일 찾아오는 물총새 수컷 ⓒ 임도훈
중국과 인도 쪽에서 4월 말에 날아오는 여름철새 꾀꼬리의 산란철은 6월이다. 이때가 되니 농성장에서도 "꾀꼴~ 꾀꼴~"하면서 짝을 찾는 진노랑색의 꾀꼬리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그 모습과 소리를 듣고 있으면 "훨훨나는 저 꾀꼬리/암수 서로 정겹구나"라고 노래한 유리왕의 <황조가>가 저절로 떠오른다. 금강변 손바닥만한 나무숲에서 꾀꼬리는 새끼인 연둥이를 키우고 있다. 9~10월이면 다 큰 새끼를 데리고 다시 금강변을 떠날 것이다.
▲ 농성장에서 새끼를 키워내고 있는 꾀꼬리(좌하)꾀꼬리어미새 (우2개체)꾀꼬리새끼=연둥이 ⓒ 이경호
눈으로 확인한 여름 철새만 36종... 최상위포식자 새호리기 등
쏜살같이 날아가는 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새호리기이다. 천막농성장 주변의 최상위 포식자. 날개를 편 길이는 84cm 정도이다. 곤충부터 작은 조류와 포유류까지 사냥하는 종이다. 새호리기가 비행을 시작하면 위험을 느낀 작은 생명들이 분주하게 대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연의 적자생존의 법칙을 매일매일 확인하는 셈이다.
▲ 농성장에서 비행하는 새오리기 ⓒ 임도훈
뻐꾸기는 탁란에 실패했다. 농성장을 설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울어대던 뻐꾸기 소리가 사라졌다. 탁란할 둥지를 찾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탁란의 숙주가 되는 새들은 뻐꾸기가 오면 바로 경계한다고 알려져 있다. 올해 농성장 주변의 숙주가 되는 새들은 자신의 새끼를 뻐꾸기로부터 지켜낸 것이다. 그래도 농성장을 찾았던 뻐꾸기가 다른 곳을 찾았기를.
지난 100여일간 농성장을 지키면서 눈으로 확인한 새의 종류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민물가마우지, 노랑발갈매기, 원앙,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왜가리, 중대백로, 쇠백로, 검은댕기해오라기, 물총새, 흰목물떼새, 흰물떼새, 깝짝도요, 삑삑도요, 알락할미새, 검은등할미새가, 제비, 꾀꼬리, 뻐꾸기, 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쇠박새, 딱새, 칡때까치, 때까치, 파랑새, 참새, 꿩, 큰부리까마귀, 후투티, 까치, 물까치, 멧비둘기, 새호리기, 황조롱이, 방울새...
텃새와 여름철새만 36종이나 확인된 것을 보면 종 다양성이 풍부한 곳이다. 이 정도면 새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왜일까.
[세종보 상류 겨울 철새] 수문개방 후 2배로 늘어나
대전환경운동연합은 그동안 금강의 겨울철새를 조사해왔다. 세종보 개방 전후의 변화는 극적이었다. 세종보 상류 12km 구간을 살펴보면, 수문 개방 전인 2017년까지 겨울철새는 2천 여 개체였다. 그 뒤 4천 개체 내외로 급증했다. 종수 역시 50종에서 78종까지 증가했다. 특히 큰고니(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의 경우 4대강 사업 이후 사라졌다가 2023년 48개체로 증가했으며 지난해 겨울에는 100개체로 늘었다. 겨울철 확인된 멸종위기 야생생물 조류만 17종이나 된다.
▲ 세종보 상류 조류 개체수 변화상-대전환경운동연합 ⓒ 대전환경운동연합
▲ 세종보 조류조사 - 종변화 ⓒ 대전환경운동연합
위의 그래프에 나타난 추이만 봐도 수문개방의 효과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이유가 있다. 세종보 수문개방으로 수위가 4m 낮아지자, 모래톱과 자갈밭 등의 산란처가 급격하게 늘었다. 새들의 삶터가 늘자, 개체수도 자연스레 증가한 것이다.
환경부도 지난 2022년, 금강 3개 보의 수문개방 이후 4년간을 관측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금강의 모래톱은 축구장 면적 약 188배(1.343km2) 늘었고, 수변 서식공간은 축구장 면적 약 299배(2.133(km2) 늘었다고 밝힌 바 있다.
▲ 4대강 보개방 모니터링 종합 분석보고서 22년 5월 ⓒ 환경부
▲ 4대강 보개방 모니터링 종합 분석보고서 22년 5월 ⓒ 환경부
새의 종수가 늘어난 것은 물의 깊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수문을 닫았을 때에는 수심이 4m로 일정했고, 깊은 물에서 살 수 있는 잠수성 오리류 일색이었다. 수문을 연 뒤에는 평균 수심이 80cm 정도 낮아졌다. 깊은 곳과 낮은 곳 등의 자연성 하천 지형이 복원됐다. 얕은 물에서 살 수 있는 큰고니, 원앙, 흰뺨검둥오리, 황오리 등 수면성 오리와 백로류와 도요물떼새 등의 섭금류가 증가한 것이다.
이렇듯 강의 지형 변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이게 바로 인류가 그간 확인한 자연 과학이다. 하지만 MB는 4대강의 수심을 6m로 파면서 '철새가 찾아오는 강'을 만들겠다고 홍보했었다. 이런 주장이 사기이자 언어도단이었다는 것을 수문을 개방한 뒤, 금강에 날아드는 새들이 직접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세종보 수문을 닫으려고 하는 환경부도 이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다. 환경부가 2022년 5월에 발표한 4대강 보 개방 모니터링 종합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보 수문) 완전 개방 후 수위 저하로 발생한 수변 서식 공간 증가(모래톱, 하중도 등) 및 서식공간 다양화로 금강 보 구간의 물새류 출현 종수는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장기간 완전개방한 세종보 구간에 출현한 물새류 종수는 '18년 25종(6개월 조사), '19년 38종, '20년 36종, '21년 47종으로, '19년부터 그 수가 지속해서 증가하는 경향을 보임
- 장기간 완전개방한 공주보에서 연도별 출현한 물새류 총 종수는 '18년 15종(6개월 조사)에서, '19년 23종, '20년 34종, '21년 39종으로 점점 증가하는 경향을 보임
- '20년 5월 이후 지속해서 개방한 백제보에서 연도별 출현한 물새류 총 종수는 '18년 21종(6개월 조사), '19년 24종, '20년 32종, '21년 29종으로, 보 개방 이후 30종 내외의 물새류 종이 관찰됨"
▲ 4대강 보개방 모니터링 종합 분석보고서 22년 5월 ⓒ 환경부
▲ 4대강 보개방 모니터링 종합 분석보고서 22년 5월-조류변화상 분석자료 ⓒ 환경부
지금의 환경부가 계획하는 '세종보 정상가동'은 바꿔 말하면 금강에서 새들을 쫓아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기획인 셈이다.
[세종보 다시 닫힌다면] 조류 절반 이상 감소... 인간은?
하지만 세종보 농성장을 지키며 확인한 건 세종보 수문이 개방된 뒤 새들만 돌아온 건 아니라는 점이다. 세종보에 담수를 했을 때만 해도 이곳 세종보 농성장은 접근금지의 땅이었다.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악취와 녹조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 수위가 2~3m 높아져서 강변에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 곳곳에는 접근금지 팻말이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종시민들이 가족들과 함께 내려와 물수제비를 뜨거나 산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인들이 밀어를 나누는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잠시 내려와 낄낄거리며 머리를 식히는 휴식의 장소이기도 하다. 멸종위기 새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을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그야말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땅으로 바뀐 것이다.
▲ 물수제비를 뜨는 모습 ⓒ 시민행동
▲ 농성장에서 물놀이 하는 가족 ⓒ 이경호
이 모든 것을 경제가치로 환산한다면 얼마나 될까? 세종보 수문을 닫아서 새와 오리를 쫓아내고 오리배를 띄운다면 이보다 더 가치있는 금강이 될까? 금강의 모든 구간을 접근금지 해놓고, 녹조의 강에 수륙양용버스를 띄우면 지역 경제가 살아날까? 매년 장마 때면 쓸려나가는 강변 시설물 보수에 쓰이는 막대한 혈세를 상쇄할 정도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그깟 새 한 마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을 통해 친수공간을 늘이면 '녹색 뉴딜', '녹색 르네상스'가 될 것이라고 장밋빛 청사진을 내걸었던 정치인들이 있다. 대대손손 누려왔던 강변의 친수공간을 수장시키고, 그 위에 수조원을 들여서 조성한 금강변의 1백여 개가 넘는 강변 공원은 아무도 찾지 않는 '유령 공원'이 된 지 오래다. 이 와중에 혈세로 토건 재벌들만 배를 불렸다. 이런 악순환을 대놓고 반복하겠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환경부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도 바로 눈앞에서 할미새가 돌탑 위에 앉아 지저귀고 있다. 바로 앞 웅덩이에선 다리를 다친 중대백로가 절룩거리며 물고기를 잡고 있다. 멧비둘기들이 떼로 몰려와 강변에서 목을 축인다. 참매가 농성장 상공을 선회하며 먹잇감을 찾고 있다. 사냥터로 출근했던 가마우지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 쉼터로 향하고 있다. 힘차게 흐르는 강이 있어 가능한 풍경들이다.
▲ 돌탑위에 알락할미새 ⓒ 이경호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새들도 찾지 않는 곳에선 사람의 숨결이 머물 수 없다. 사람이 모이지 않는 썩은 강에서 지역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 세종보가 재가동된다면 새들이 삶터가 수장될 곳에서, 세종시민들이 대대손손 누릴 진짜 친수공간이 사라질 곳에서 우리가 100여 일 넘게 버티는 까닭이다.
국회에서 4대강 청문회가 열린다면 '그깟 새 한 마리'의 의미를 반드시 짚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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