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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천막농성을 시작하며

동두천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천막농성 ①

등록|2024.08.27 10:57 수정|2024.09.09 10:22
[기사 수정 : 27일 오후 4시 34분]

7월 하순 경부터 사상 최고의 폭염이라는 불볕더위가 한 달 넘게 이어졌다. 태풍 '종다리'가 지나가고 기온이 좀 떨어졌으나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후덥지근한 습도는 더 높아졌다. 나는 철재공장에서 오전엔 박스 포장을 하고 오후엔 대형트럭을 몰고 납품을 나가는데, 일을 할 때면 금세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8월 25일, 일요일이었다. 오후 4시 무렵에 동두천 시청 앞으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청 건너편, 인도와 잇댄 야산 아래 자그마한 풀밭에다 천막을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오후에도 여전한 더위에 무슨 일로 사람들이 천막을 들고 모인 것일까?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시민단체 김대용 대표를 비롯해서 고경환 사업팀장, 최유태 회원, '동두천역사문화공원추진시민모임'의 홍재웅님, 환경운동 단체에서 오신 김성길님, 양주작가회의 윤인구 시인, 그리고 연천에서 오신 시민과 처음 뵙는 젊은 여성분도 있었다. 모두 환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하고 곧장 의기투합했다. 천막 폴대를 조립하고 서로 일손을 거들었다. 오래된 텐트라서 잠시 버벅거리기도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연두색의 예쁜 천막이 자리를 잡았다. 천막 주변에 피켓이 세워지고 깃발들이 꽂혔다.

'옛 성병관리소 철거 반대! 동두천시는 성병관리소를 시도지정(등록) 유산으로 보존하고 역사문화·평화공원으로 활용하라'
'역사문화 파괴가 동두천의 미래인가? 역사교훈 잊은 민족에게 과거는 반복된다!'
'성병관리소 철거는 역사를 지우고 숨기는 행위입니다'
'성병관리소 보존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는 길이다'
'대한민국과 전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성병관리소를 보존하자'

성병관리소 보존, 역사를 지키고 아픔을 보듬는 일

▲ 8월 25일 오후 4시, 농성천막을 설치한 성병관리소 보존운동 회원들 ⓒ 임성용


위의 문구에서 보듯, 동두천 시청 앞에 사람들이 천막을 설치한 이유는 '성병관리소 보존'을 위해 농성장을 꾸린 것이다. 지난 8월 12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참여연대, 정의기억연대 외 전국 59개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출범한 '동두천옛성병관리소철거저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가 공식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많은 중앙언론과 방송에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에 관한 논란과 갈등 문제가 집중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성병관리소 철거반대, 보존운동은 이미 작년 봄부터 동두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기북부평회시민행동'에서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시민토론회, 기자회견, 보존문화제 등으로 대응해왔지만 중앙언론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경기북부 변방의 일로 치부되거나 동두천이라는 소도시의 지역문제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어찌 보면 동두천 외부에선 '개발과 철거' 과정에서 흔히 벌어지는 사소한 일로 여길 수도 있다. 더구나 "성병관리소? 그게 뭐지?" 하며, 이름부터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성병관리소! 그렇다.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 자락 입구에 위치한 '성병관리소'는 정확히 말하면 그곳은 이른바 '낙검자수용소'였다. 일명 '몽키하우스'라고 불렀다.

1960년대 초부터 전국에 산재한 미군기지 기지촌엔 성병진료소가 설치되었고, 당시 양주군 동두천읍엔 1973년 성병관리소가 설치되었다. 동두천읍의 성병진료소 4개소의 통합 관리와 성병에 걸린 것으로 판단된 기지촌 '미군 위안부'의 수용 치료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소요산 숲 속에 만들어진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20년이 넘도록 운영되었다.

성병관리소라니! 도대체 정부가 무슨 일로 성병을 관리했다는 것일까. 명목상 '관리'이지 사실 성병관리소는 강제수용, 감금시설이었다. 그렇다면 국가에서 성병을 관리한 배경과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배경은 '성병으로 미군의 사기를 저하한다는 주한미군의 관리 요청'에 한국 정부가 대책을 마련한 것이었다. 또한 미군을 상대로 '달러벌이를 획책한 국가가 미군을 위해 기지촌 여성들의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성병관리소는 주 2회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성병검진에서 떨어진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 즉 낙검자 여성들을 가둔 곳이었다. 검진에서 떨어진 여성뿐만 아니라 성병에 걸린 미군이 지목한 업소의 여성들도 끌려왔다. 심지어 길을 가다가도 끌려온 여성들은 철장으로 둘러싸인 성병관리소에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만 했다. 독한 페니실린 주사를 맞야야 했고 과다투여된 주사 쇼크로 죽기도 했다. 탈출을 시도하다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은 여성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죽어간 기지촌 여성들을 묻은 무덤이 동두천시 상패동 공동묘지에 무연고 묘지로 남아 있다. 그들의 무덤엔 성도 이름도 없다. 몇 명이나 묻힌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마 수백 명 되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그 무덤마저 조만간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동두천시에서는 상패동 공동묘지 일대를 공원으로 만든다고 파묘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경기북부평회시민행동에서는 상패동 공동묘지 공원화사업을 하고 있는 동두천 시청에 기지촌 여성들의 무연고 넋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고의 고민도 하지 않고 예산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성병관리소 건물 역시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동두천시는 미2사단 주둔 미군이 대다수 평택으로 떠나면서 낙후된 지역경제 발전과 관광활성화를 위해 2022년부터 '소요산관광지 개발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했다.

그리고 동두천시(시장 박형덕)가 지난 8월 14일 사업부지 내에서 '소요산관광지 개발사업' 준공식을 개최했다. 준공식에는 박형덕 시장, 김성원 국회의원, 김승호 동두천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시‧도의원, 단체협의회장과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석해 준공을 축하했다. 준공식이 이루어진 성병관리소 부근의 어린이박물관과 자유수호박물관 일대 개발사업은 총 사업비 190억 원(국비 87억 원, 도비 25억 원, 시비 78억 원)을 투입해 동두천시 상봉암동 160번지 면적 4만4000㎡을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앞서 동두천시는 2023년 2월 소요산 일대 관광지 확대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확대개발사업에 있어서는 동두천시에 문제가 생겼다. 개발의 핵심지인 소요산 입구에 성병관리소 건물이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 건물은 본래 학교법인 신흥학원 소유로 되어 있던 것을 동두천시에서 작년 초에 전격 매입했다. 그동안 사유지라서 어쩌지 못하고 수십 년 넘게 방치했던 부지가 시청 소유물로 바뀌게 됨으로써 시의 입장에선 개발의 걸림돌이 없어졌다고 본 것이다. 동두천시는 성병관리소 철거를 공식화했다.

성병관리소 철거가 기정사실화 되자, 그동안 성병관리소 보존운동을 해 온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에서는 즉각 반발했다. '성병관리소는 역사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높는 한국근현대사의 상징적 건물이다는 것, 성병관리소 철거는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려는 역사 지우기라는 것, 성병관리소를 시등록, 또는 지정문화유산으로 보존하라는 것, 정부 주도 미군위안부 성매매는 국가폭력이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성병관리소를 여성인권과 평화, 문화, 기억의 공간으로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두천시는 해당 건물이 시의 소유이므로 철거에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고 한다. 동두천시 의회에서는 8월 27일부터 시작되는 회기에 '성병관리소 철거비용'을 추경예산으로 포함시켰다. 이 추경심의안이 통과되면 성병관리소 철거는 시간 문제가 된다.

철거 위기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7월부터 40일 동안 동두천 시청 앞에서 일인시위를 지속하면서 '성병관리소 보존'을 요구한 사람들은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난 주, 동두천 시의회 앞에서 시청과 시의회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고 보존을 요구했지만 행정관료들은 당최 묵묵부답이었다.

전국공대위 출범으로 큰 힘을 얻은 사람들은 직접 행동에 돌입했다. 의회가 열리는 2주 간에 걸쳐 농성장 천막을 치고 항의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다. 역사를 지키고 아픔을 보듬는 일이다. 미래를 위한 일이며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

'동두천옛성병관리소철거저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에서는 성병관리소 보존과 활용 방안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철거에 대한 항의로는 UN 인권위 제소를 비롯해서 시의회 면담, 경기도지사 면담, 국가유산청 조사 등을 요청하고 있다. 활용으로는 전 세계, 대한민국 유일하게 남은 성병관리소를 세계유네스코에 등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분단과 전쟁으로 미군과 함께 한 한반도의 슬픔, 한국여성사의 눈물이 바로 성병관리소의 녹슨 쇠창살에 맺혀 있으므로 이를 결코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천막농성 첫날밤을 보내고 난 아침이었다. 80대 할머니 한 분과 오십 대의 여성 한 분이 천막농성장을 지나다,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성병관리소 문제에 관해 설명해 주었더니 뜨악해했다. 왜냐면 농성장 주변엔 보수단체들이 걸어 놓은 맞불 현수막과 농성장에서 매달아 놓은 보존 현수막이 뒤섞여 있었고, "보존이 웬말이냐"고 쓴 보수단체의 대형 현수막들이 훨씬 크고 눈에 잘 띠었다. 그래서 할머니 일행이 보기엔 동두천 시청이 보존을 하기로 해서 보수단체가 항의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금방 문제를 파악했다. 기지촌, 성매매여성, 미군 등을 말하니 대뜸, "위안부구만?" 그러셨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누가 나쁜 놈들이여? 그러니까 이쪽이 좋은 일 하는 거 아녀?"

그때 문득 돌아보니, 오십 대 여성분은 가로수에 매달린 현수막을 살펴 읽으며 마스크를 쓴 눈가를 손수건으로 슬쩍 훔치셨다. 울컥한 물기를 남몰래 닦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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