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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머리털이 빠지면 가을이다

[세종보 천막 소식 120일 차] 새들을 보면 가을을 알 수 있다... 뭇생명들과 함께 승리하기를

등록|2024.08.27 11:22 수정|2024.08.27 11:24
세 번째 계절의 길목이다. 지난 4월 30일부터 세종보 상류 300m 지점의 하천부지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기에 봄과 여름을 지나 이제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뚝뚝 떨어지는 서늘한 체감기온 탓만은 아니다. 세종보 수문개방 이후, 새들의 천국으로 변한 농성장 주변의 새들만 봐도 새로운 계절의 언저리에 서 있다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떠나는 새와 남는 새... 행태만 봐도 계절을 느낀다

한 때 청아한 소리로 농성장을 깨웠던 꾀꼬리들이 10여 개체 이상 무리를 지어 날아다닌다. 2~3 가족이다. 아마도 남쪽으로 이동을 준비하는 듯하다. 우리나라 여름철새들은 봄부터 번식을 시작해 여름까지 무더위를 견디며 새끼를 키워낸다. 번식을 끝낸 대부분의 여름철새들은 무리를 이루어서 함께 바다를 건널 준비를 한다. 가을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 농성장에 번식한 꾀고리의 모습 ⓒ 이경호


봄의 전령인 제비도 가을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새이다. 거세게 흐르는 금강을 가르며 자유롭게 날던 제비들이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남하를 준비하는 것이다. 동네에서는 소규모 내지는 중규모로 무리를 이루는데, 서해안과 남해안 바닷가에서 대규모로 집결한다. 무리 이동이 생존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물위를 쏜살같이 비행하던 제비가 잘 보이지 않는 것 역시 대규모 이동을 준비하는 탓일 것이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야생의 생물들에게 이동은 생사를 가르는 일이다. 8월 이즈음에 이 땅을 떠나는 무리가 있다면, 찾아오는 무리들도 있기 마련이다.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알락꼬리마도요를 발견했다. 북쪽에서 번식을 마친 알락꼬리마도요가 남하를 시작한 것이다. 이 새는 서해안 갯벌을 봄과 가을에 통과하는 나그네새인데, 아마도 선두 그룹 중에 일부가 내륙을 통과하다가 농성장 인근에서 우연히 관찰된 것으로 보인다.

▲ 농성장에서 확인한 알락꼬리마도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받은 보호종이다 ⓒ 이경호


지금도 일부 나그네새들의 이동 소식이 전국의 탐조인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수일 내에 더 많은 도요·물떼새들의 대이동 소식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100여 일이 넘는 풍찬노숙이 쉽지만은 않지만,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새들의 대이동을 농성장에서 육안으로 목격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이제부터 다양한 도요물떼새와 수금류, 섭급류들이 농성장 주변의 작은 습지와 여울 등에서 목격될 것이다. 농성장의 가을은 이동하는 철새들의 계절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가장 먼저 알려준 새가 알락꼬리마도요였다. 나그네새이기는 하지만 농성장에서 확인된 멸종위기종 한 종 더 늘었다.

하중도에서 번식을 마친 새들... 풀도 겨울을 준비한다

물론 이동하지 않는 텃새들의 행태를 봐도 가을을 알 수 있다. 까치들의 털갈이가 대표적이다. 최근 농성장 주변에 보이는 대부분의 까치들의 머리털이 빠졌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이 되면 까치들은 깃털갈이를 한다. 올해는 8월 10일이 칠월칠석이었다. 이맘 때 머리에 털이 빠지는 까치와 까마귀들이 견우직녀 설화의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 털갈이 중인 까치의 모습 ⓒ 이경호


꼬마물떼새와 흰목물떼새는 농성장 맞은편 하중도에서 무사히 번식을 마쳤다. 세종보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대규모 벌목이 진행됐기에 번식에 방해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번식을 마친 두 종류의 물떼새는 낮에는 잘 보이지 않고 밤이면 다시 이곳에 찾아온다. 멸종위기 2급인 흰목물떼새는 농성장 인근에 잠자리를 마련한 듯하다. 매일 밤 소리를 내어 자기 존재를 나타낸다. 하지만 최근 꼬마물떼새의 소리는 잦아들었다. 남쪽 해변으로 이동한 것이다. 내년에 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대규모 벌목으로 드러났던 농성장 앞 하중도는 이제 다시 풀밭이 되었다. 이곳의 풀들도 이제 다른 계절을 준비한다. 꽃을 떨군 자리에 생기는 씨방을 확인 할 수 있는 풀이 늘어나고 있다. 버드나무가 잘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지금쯤 겨울나기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그곳에서 또 다른 버드나무가 무럭무럭 커갈 것이다. 자연은 늘 제 모습을 찾아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연의 변화에 잘 적응하는 생명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100여 일 동안 녹색천막을 지킨 건 뭇생들이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녀석들도 눈에 띤다. 중대백로 한 마리가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농성장 주변에 머물고 있다. 가장 큰 천적인 사람을 경계해야 하지만 다리를 저는 중대백로는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준다. 다친 상태이기에 야생의 천적보다 더 안전한 사람주변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쉬운 사냥터를 찾아야만 하는 사정 때문일 수 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는 있지만, 가을과 겨울에 남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거나, 농성장 주변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될 수도 있다. 농성장 활동가들은 '여차하면 구조를 요청하자'고 결의하기도 했다. 우리가 지켜낸 현장에서 죽어가는 중대백로를 야생이라는 이유로 두고 볼 수 없는 측은지심이 발동한 탓이다.

▲ 농성장 주변 웅덩이에서 먹이를 찾는 아픈 중대백로 ⓒ 이경호


농성장에서 세 번째 맞는 계절. 윤석열 정부의 세종보 담수 철회를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만은 계절을 이곳에서 맞이해야 할까. 하지만 100여 일 동안의 농성은 단순한 기다림의 시간은 아니었다. 이처럼 계절의 변화를 함께 알려주는 생명들과의 적극적인 교감의 시간이었고, 우리가 지금껏 버텨온 것도 이런 자연과의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도 녹색 천막을 지키며 그간 이곳을 함께 지킨 생명들과의 시간을 무위로 돌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우리는 세종보 재가동을 막아낼 것이고, 뭇생명들과 함께 승리할 것이다. 이제 세번째 계절인 가을의 투쟁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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