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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산 5년 동안 더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청년이 행복한 음성·진천만들기]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청년 박한솔

등록|2024.08.30 09:46 수정|2024.08.30 09:46
어쩌다 보니 건축학을 공부했고, 어쩌다 보니 화려한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 파묻혔다. 그 속에서 피어난 한 권의 요리 에세이집. 한 청년의 인생은 뜻하지 않았던 곳에서 화려한 빛을 발했다. ‘보통날의 식탁’의 저자 박한솔(35) 작가의 이야기다. 충북혁신도시에서 신혼집을 꾸렸던 그는 음성군 생극면에서 책을 펴낸 뒤 지금은 진천군 초평면에 터를 잡았다. 충북의 중부권을 두루 부대껴온 그가 꿈꾸는 행복한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기자말]

8월의 무더위가 막판을 치던 28일 충북 음성군 생극면 한 작은도서관에 도착했다. 열평 남짓 작은 공간은 책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에 더위를 식히고 청년의 둥그스레 활짝 핀 얼굴과 마주한 순간, 행복감이 밀려온다.

박한솔 작가는 경남 진주가 고향이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유럽 어학연수 중 어릴 적 외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은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된 그는 귀국 후 푸드스타일리스트로 급선회한다.

동갑내기 남편 김기환(35)의 직장을 따라 충북혁신도시(음성군과 진천군 양군에 걸쳐있는 기획도시)에 신혼집을 차리면서 음성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시골에서 살어?' 모두가 고개를 흔들 때 그는 자연 속에서 소중한 요리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도시에 살아야 평범한 것인가? 오히려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말하는 그는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청년이다.

- 충북 음성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신랑 직장이 금왕읍에 있었어요. 5년 전 결혼하고 남편 직장 따라 충북혁신도시에 신혼살림을 차렸죠. 지금과 달리 당시 혁신도시는 규모가 작았고 사람도 많지 않았죠. 사실은 그게 좋았어요."

- 대도시 대구보다 작은 혁신도시가 좋았다고요?

"네. 제 고향은 경남 진주 소도시였죠. 외가는 더 시골인 경남 합천이죠. 유년 시절에 외가는 참 평화로웠어요. 어른이 되면 대도시에 가고 싶어 하지만 저는 늘 시골이 그리웠어요. 혁신도시는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골 같은 느낌이었어요. 1년 정도 살다가 진짜 시골로 이사했어요."

- 진짜 시골이라면?

"생극면 오생리 가구 몇 안 되는 진짜 시골로 이사했어요. 집 바로 뒤에 산이 있어 좋았어요. 자연을 정말 좋아했죠. 자연 속에 들어오니 글이 절로 써지더군요. 혁신도시에서 집필을 시작했지만 답답하기만 했던 것이 이곳에서는 술술 풀리는 거예요. 겨울에 눈 치우는 것도 좋았고, 모든 게 행복했어요."

- 시골살이 힘든 것 없었나요?

"있었죠. 어느 날 문득 친구도 없이 시골에서 산다는 게 자유인가, 고립인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연세가 많으신데다 '쟤들이 얼마나 살고 갈까' 하며 마음을 주지 않은 것도 힘들었어요."

▲ 박한솔 작가가 그의 요리 에세이집 '보통날의 식탁'을 들어 보였다. ⓒ 임요준


- 그 와중에 책을 내셨네요. 소개해 주세요.

"네. <보통날의 식탁>이라는 요리책은 아니고 요리 에세이집이에요. 저에게 밥이 주는 의미는 남달랐던 거 같아요. 어릴 적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은 장난감 선물보다 더 귀한 선물이었어요. 할머니 밥상을 받을 때면 정말 행복했어요.

그 느낌을 소박한 시골 일상과 함께 써 내려간 글이에요. 도시 친구들은 편의점에서 대충 한 끼를 때우는 게 일상이지만 제철 재료로 한 상 차리면 나를 챙겨주는 행복한 느낌이 있어요. 할머니의 밥상은 '마음의 씨앗'과도 같은 거죠."

- 서점가 베스트셀러였다고요?

"요리 에세이 부문으로 알라딘, YES 24, 네이버 등등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요. 2022년 상반기 청소년 필수 교양 도서로도 선정되었죠. 일기처럼 쓴 글인데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니 얼떨떨 하더군요."

- 지금도 오생리에 사세요?

"아니요. 남편 직장이 진천으로 옮겨져서 진천 초평면 오갑리로 이사했어요."

- 그곳 생활은 어떠세요?

"오갑리 마을 분들이 너무 잘 해주세요. 젊은이들이 이사와줘서 고맙다며 반겨주세요."

- 경상도 사람이 충청도로 이사 와서 충북혁신도시와 음성·진천군을 두루 경험해 보았네요. 충북 중부권은 어떤 곳 이던가요?

"솔직히 이곳은 남편 직장 따라 반강제로 오게 된 거죠. 문화생활을 즐길 수도 없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헌데 생극에 와보니 문화가 있었어요. 소극장 '하다'가 있고, 도토리숲작은도서관이 있었어요. 문화를 이끄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도토리숲작은도서관에는 독서 모임이 있어요. 매월 말에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도 불러요. 연령 제한도 없어요. 누구나 와서 콘서트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또 시민뮤지컬이 있어요. 20대부터 60대까지 모여요. 또래만 모이는 게 아니에요."

▲ 박한솔 작가가 지방 소도시에서의 청년의 꿈을 이야기 하고 있다. ⓒ 임요준


- 세대차이는 느끼지 않나요?

"아니요. 오히려 다양한 연령층이 있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세대차이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젊은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어른들을 보면서 배우고 있어요. 여기서 산 5년 동안 더 어른이 된 것 같아요."

- 음성과 진천 행정통합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혁신도시에 살 때였어요. 도로 이쪽은 음성, 저쪽은 진천이라니. 도로 중앙분리대 수리하는 것도 음성과 진천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수영장을 이용하고 싶어도 음성군민이 우선이고 진천군민은 일주일 뒤에 신청할 수 있었어요. 문화예술 활동에서는 지역을 따지지 않지만 행정은 불편한 점이 있어요."

- 시골살이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은.

"음성은 청년 커뮤니티가 참 잘 되어 있어요. 하지만 진천은 좀 덜한 것 같아요. 진천에 이런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남편만 보고 이곳에 왔고 마음 둘 곳이 없었지만 지금은 이곳이 또 다른 고향이 되었어요. 이것이 문화가 주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음성에서 청년 커뮤니티 YACC을 운영하면서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나를 반겨주는 곳을 만드는 것, 문화와 예술로 마음 둘 곳을 만들어주는 것이요. 이외 큰 계획은 없어요. 이곳까지 흘러온 것도 계획에 없었고, 마음 열고 흘러가는 대로 갔으면 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진천음성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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