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무서운 주장... 외국인에게 다 떠넘길 셈인가
[주방에서 보는 정치] 서울시가 도입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제도... 근본적인 문제점 고민해야
▲ 오세훈 서울시장(왼쪽 세번째)이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필리핀 가사관리사 임금, 문제와 해결책은?'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식당에서 일하다 보면 간혹 외국인들을 마주칠 때가 있다. 보통은 배달 라이더와 손님들이다. 중국, 인도, 중동이나 동남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문화 국가로 들어서고 있다는 현실을 체감하곤 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이 한 국가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일이다. 국가는 사회가 가장 구체화된 형태이고, 사회는 생각과 삶의 양식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인류가 발견한 결과물이니까. 결국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는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그런데 최근 오세훈 시장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이라는 나쁜 방법을 제안했다.
▲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노동자들이 지난달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2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싱가포르 출장을 다녀오더니 난데없이 '외국인 육아도우미'를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저출생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가정 양립을 해야 한다. 그러니 가정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기 위해 육아도우미를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하고 보장하자. 그런데 자국민을 고용하는 것에는 비용도 많이 들고 육아도우미가 일종의 기피업종에 속하는 일이라 지원도 잘 안 할 것 같으니, 외국인을 고용하자.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이미 그렇게 많이 하고 있다. 주로 필리핀 가사 관리사를 이용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일하면 더 많은 급여를 줄 수 있으니 서로 윈-윈(win-win)의 정책이 될 수 있다.'
일·가정 양립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은 가정에 할애하는 시간을 늘리고 직장에서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제도는 가사노동과 육아 부담을 지자체가 줄여줄 테니 직장생활에 더 전념하라는 방향에 더 가깝다.
한국 노동자는 연 평균 1915시간(2021년 기준)을 일한다. OECD 국가 평균보다 무려 300시간이나 많다. 그럼에도 지금보다 더 직장생활에 집중하라는 신호를 정책으로 보내고 있다. 오히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어도 그럴 마음과 여력이 사라지는 효과만 낼 것이다.
물론 '양육의 사회화'라는 측면에서 국가와 사회가 육아부담을 일정 부분 감당할 수 있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관점과, 육아도 '사회권'이며 '사회적 책임'이라는 접근방식은 필요하고 옳다. 그러나 이러한 육아를 '값싼 외국인 노동'에 위임하려는 의도에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외국인 고용, 만능 열쇠가 아니다
▲ 싱가포르 금융 지구와 마리나 베이의 스카이라인. ⓒ 로이터통신/연합뉴스
오세훈 시장이 언급한 싱가포르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떨까. 싱가포르는 1986년 합계출산율 1.43명이라는 수치에 충격을 받고 1987년부터 출산장려정책을 실행했다. 한국보다 20년이나 빠르다. 그러나 2023년 합계출산율은 0.97명으로 더 추락했다.
그럼에도 싱가포르의 인구는 1987년 300만 명대에서 2022년 564명으로 더 늘어났는데, 그 비결은 적극적인 이민 장려 정책을 통한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에 있다. 현재 싱가포르는 전체 인구 중 63%만이 싱가포르 시민권자이고, 나머지는 영주권자이거나 장기 체류 외국인이다. 외국인 노동자는 싱가포르 GDP의 1/3을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큰 규모다.
당연하게도 문제가 생겼다. 2013년 싱가포르는 44년 만에 대규모 시위와 사회적 갈등을 경험했다. 싱가포르는 아직까지 태형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치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집회·시위도 사실상 금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1969년 이후 최초로 싱가포르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도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싱가포르 자국민들에 비해서 열악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분노한 반면, 싱가포르 저임금 노동자들은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불만을 가지면서 사회적 갈등이 고조된 것이 배경이 됐다.
다른 인종·민족에 대한 포용적 문화가 상대적으로 강한 유럽에서도 난민 정책이 쏘아올린 사회적 갈등을 감당하지 못해 정치적 혼란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단일민족 신화가 매우 강한 한국 사회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오세훈 시장의 가사관리사 도입뿐만이 아니라, 일자리 부족 문제를 외국인 고용으로 해결하자는 주장 역시 급진적이고 위험해 보인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 수 있다.
하기 싫은 일 대신 해줄 외국인 찾는 것인가?
▲ 세계노동절을 사흘 앞둔 지난 4월 28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메이데이 집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 금지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사회적 갈등이 전무하다해도, 이런 접근 방식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학교에서 사회교과목으로 플랜테이션이라는 개념을 가르친다. 선진국의 대자본과 식민지 원주민의 값싼 노동력과 제3세계 열대 기후가 결합해 수출 중심 기업형 농업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제국주의의 침략'이라는 역사적 배경도 함께 배운다. 값싼 외국인 가사도우미와 선진국의 경제력이 만나 저출생 현상의 문제를 해결한다니, 가히 인구 위기 버전의 플랜테이션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인종·민족의 외국인들에게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과 외국인 노동자를 저출생 현상과 일자리 부족의 대안으로 삼자는 주장은 전혀 다르다. 현시점 한국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업종은 제조업, 건설업, 숙박 및 음식점업, 농업 등이다. 자국 시민들이 자국 시민으로서 생활과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착취하는 사회를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미래라 할 순 없다. 이것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한국사회에 잠재된 잘못된 우월의식의 발로다.
벌써부터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에 대해 "예상보다 가격이 비싸다", "결국 강남 부모들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냐"며 어긋난 방향의 반응들이 논란으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과제의 해답은, 필요하지만 하기 싫은 일들을 대신 해줄 외국인들을 찾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앞에 닥친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논쟁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의 분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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