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원을 부르는 손님의 호칭, 내 귀를 의심했다
냉탕과 온탕, 계산원 바라보는 극과 극 시선... 귀천이 정말 없습니까
▲ 모 편의점 외관. (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는 상관이 없음) ⓒ 김아영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어떤 직종의 어떤 일이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사회에 보탬이 되기 마련이다.
단, 월급에는 귀천이 있다. 귀와 천, 계산원의 월급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뻔하다. 누가 봐도 귀보다는 천이다. 내가 일하는 식자재 마트에는 10년을 장기 근속한 분이 계신데, 월급이 다른 직원들과 똑같다. 10년 내내 최저시급이었던 셈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아무리 스스로 떳떳하려 해도, 딱딱한 표정의 손님이 오기만 하면 한 것도 없이 위축되고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전후 사정을 떠나 손님이 나를 다그칠 때면, 그땐 내가 진짜 잘못을 했든 안 했든 어딘가 정말 모자란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 가장 먼저 맞부딪친 난관은 담배였다. 비흡연자인지라 담배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손님마다 같은 담배를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것도 혼란을 가중시켰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손님이 '에세 라이트'를 달라고 해서 진열장에서 똑같은 이름표를 찾았는데 아무리 훑어도 없는 것이다. 알고 보니 손님이 원하는 건 '에세 프라임'이었다. 말보로 골드를 말보로 라이트, 던힐 6밀리를 던힐 라이트로 부르는 것도 비슷한 경우이다.
심지어 담배 이름을 임의로 줄이거나 일부만 부르는 손님도 부지기수다. 특히 팔리아멘트 제품이 그렇다. 누구는 '팔라', 누구는 '필라'라고 부르고, 그냥 "아쿠아 파이브 주세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담배가 아무리 많아도 근무 경력이 쌓이면 담배 이름이 귀에 익기 마련이다. 진짜 문제는 정작 손님이 담배 이름을 모를 때이다. 빈 담뱃갑을 가져와서 보여주면서 달라고 하면 그나마 낫다.
자기가 뭘 찾는지 본인도 헷갈려서 이건가, 저건가 창의적인 이름을 대면 계산원은 뭘 내줘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손님이 말하면서 미안한 기색이 있으면 이마저도 그나마 낫다. 정말 최악은, 손님이 무조건 계산원 탓을 할 때이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다.
보자마자 반말하며 담배 찾아오라는 손님
▲ 담배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은 처음 알았다. ⓒ 김아영
내 알바 경력이 아직 6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 성미가 까칠해 보이는 한 남성 손님이 담배를 사러 오셨다. 손님은 대충 손가락질로 "저거 줘"라고 진열장을 가리켰다. 그것도 반말로.
나는 첫눈에 그가 만만치 않는 손님이란 걸 알아채고는 잔뜩 긴장했다.
"이거요?"
"아니, 저거."
손님이 서 있는 계산대 바깥쪽에서 담배 진열장까지는, 거리가 꽤 있어 성의 없는 손가락질로는 정확히 알아맞추기 힘든 거리였다. 내가 자신 없게 짚은 진열장 부분은 정답이 아니었다. 나는 손님에게 맞다는 대답을 얻어내고자 손님의 손끝이 향하는 곳에 있는 담배를 하나씩 짚었다.
하지만 내 어림짐작은 번번이 어긋났고, 손님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짜증이 실렸다. 그럴수록 내 목소리는 더 기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기 오른쪽이라고!"
손님은 끝까지 자기가 찾는 담배 이름을 대지 않았다. 잔뜩 위축된 채로 하나하나 찾아가던 나는 한참 만에 손님이 원하는 담배를 찾았다.
"그래, 그거! 쯧, 답답하기는…."
손님은 지폐를 툭 계산대 위로 던졌고 내가 잔돈을 꺼내는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매섭게 쏘아보았다. 나는 그날 계산원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인지 똑똑히 깨달을 수 있었다.
계산원은 무능한 사람이 겨우 할 수 있는 직업, 워낙 단순해서 일 같지도 않은 직업, 가벼운 수입만큼 가벼이 여겨도 되는 직업. 아무리 자부심을 끌어안으려 해도, 경력과 상관없이 나는 계산 과정에서 '불통'의 책임을 홀로 뒤집어써야 하는 무력한 종사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디든 예외는 있는 법. 감동은 전혀 기대하지 않을 때 찾아와서 이 일을 계속하게 한다.
보름 뒤가 명절이라서, 계산대에 손님이 내내 끊이지 않던 주말이었다. 처음 그 손님은 여느 손님과 다른 점은 거의 전혀 없었다. 40대 여성 분이었고 같은 나이대로 보이는 남편 분,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함께 계산대에 오셨다.
카트에 있던 상품을 하나씩 레일에 올리고 내가 바코드를 찍을 때까지 세 분이 포장대에서 기다리셨다. 계산하면서 손님의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들었는데, 마트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들를 계획인 것 같았다.
"아, 커피를 미리 주문 해 놓을 걸. 바로 찾아가게."
"내가 지금 해 놓을까?"
남편 분은 아내 분에게 카드를 받아 먼저 나가셨고 아내 분과 따님이 상품을 종량제 봉투에 하나씩 담았다. 나는 정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고, 상품을 다 담은 손님은 이내 날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 했다. 계산원이 계산을 왜 안 하고 그냥 서 있냐는 뉘앙스였다. 그 분이 물었다.
"제가 카드를 안 드렸었나요?"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데 여념이 없어서, 미처 계산원들에게 카드를 내밀지 못한 손님을 이미 여럿 봤기에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 주셨다고.
"네. 손님, 아까 남편 분께 (카드를) 주시는 것 같던데…."
"아! 내 정신 좀 봐. 난 또 선생님 드린 줄 알았네."
손님은 자신의 착각이 스스로 우스웠는지 머리를 내저으며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그런데 나는 그분의 착각이 전혀 웃기지 않았다.
그 분이 계산원인 나에게, 당연하다는 듯 '선생님'이란 호칭을 쓴 것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아가씨', '어이'만 듣다가... 선생님이라니요
▲ 여러 비하와 차별에 백 번 힘이 빠져도, 이렇게 한 번 힘을 얻으면 또 몇 달은 그 기억으로 버티게 된다.(자료사진) ⓒ jannerboy62 on Unsplash
그동안 손님들에게 들은 호칭이라고는 아가씨, 학생, 알바, 이모, 저기, 거기, 어이 따위였다. 내가 40~50대 중후한 나이도 아니고, 한 눈에 봐도 자기보다 아랫사람인 게 확실한데...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썼다는 것이 마음 한 구석을 울렸다.
그것도 찡한 울림이 아니라 쩡한 울림이었다. 신경 써서 어색하게 부른 게 아니라, 이런저런 계산이나 오랜 고민도 없이 툭, 예사롭게 그 호칭을 썼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무심코 쓴 호칭 덕에 나, 아니 계산원이라는 직업 자체의 격 자체가 높아진 것 같았다. 물론 자신의 일상에 들어온 모든 직업군을 존중하는 그분이야말로 진정 격 높은 손님이었다.
여러 비하와 차별에 백 번 힘이 빠져도, 이렇게 한 번 힘을 얻으면 또 몇 달은 그 기억으로 버티게 된다. 이런 손님을 몇 번 만났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울림의 횟수보다는 강도가 더 중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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