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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 시대, 노동자 건강권 보호 대책 마련하라"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 실효성 있는 '작업중지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

등록|2024.09.03 14:44 수정|2024.09.03 14:55

▲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는 3일 오전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후재난 시대, 노동자 건강권 보호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대전지역 노동계가 기후재난 시대에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강제성 없는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가 아닌, '폭염'에 따른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본부장 김율현)는 3일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대전시는 폭염과 폭우 등 기후재난 시대에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제도정비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 8월 2일에는 포항에서 골프장 확장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고, 9일에는 여수 GS칼텍스 공장에서 공장 정비 사전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사망했다. 또한 13일에는 예산에서 감자 분류 작업을 하던 태국 국적 이주노동자와 장성군 중학교 급식실 에어컨 설치공사를 하던 20대 청년노동자가 사망했다.

이처럼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일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일용직노동자이거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불안정노동자들이라는 것. 결국 폭염과 폭우 등 기후재난은 무차별적이고 불평등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폭염에 대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대책은 전혀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비록 고용노동부가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를 내놓았지만 강제성 없이 권고 수준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면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작업중지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기후재난 앞에서 노동자, 시민들의 삶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폭염, 폭우, 산불, 산사태, 태풍과 가뭄이 해마다 극심해져 간다"며 "2022년 반지하방 참사,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기후재난을 마주한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이어 "기후재난은 이 사회 불평등의 사다리 가장 낮은 곳부터 잠식한다. 그럼에도 기후재난 앞에서 국가와 정부는 참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하기만 하다"며 "기후위기로 인한 권리침해는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는 지금 즉시 기후재난으로부터 필요한 시급한 조치들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노동자와 시민 모두는 안전하게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날로 가속하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책임 있는 정책마련과 기후불평등 해소 대책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기후재난 속에서 건강권과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각 직종 대표들의 현장발언이 이어졌다.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권고는 노동자 우롱하는 것"

▲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는 3일 오전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후재난 시대, 노동자 건강권 보호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가장 먼저 건설노동자 대표로 발언에 나선 한경진 건설노조 대전세종건설지부 부지부장은 "건설노동자들은 현장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해도 제대로 된 휴게실이나 음료도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작업 특성상 철근공이나 콘크리트 타설공과 같은 작업은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따가운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도 쉬는 시간 없이 일을 해야 한다"고 현장 상황을 전달했다.

그는 이어 "정부에서는 폭염대책으로 '주의보'시 매시간 10분 쉬고 '경보'에는 매시간 15분 쉬라고 하고 있다. 가장 무더운 낮 2시부터는 옥외작업을 금지하라고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그저 권고사항일 뿐"이라며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권고는 노동자를 우롱하는 것일 뿐이다. 현실성 있는 대책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달노동자를 대표해 발언에 나선 송석호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대전지회 사무국장은 "도로 위에서 일하는 배달 노동자들은 어떤 기후 상황에서도 생계를 위해 일을 멈출 수 없다. 한여름 폭염에 50도가 넘게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에 숨쉬기조차 어려운 여름, 그리고 냉기 가득한 한겨울 강풍과 폭설로 얼어붙은 빙판길이 배달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노동환경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배달플랫폼 기업들은 극한의 기후일수록 추가 배달 운임과 프로모션을 통해 더욱더 많은 배달 노동자들이 도로에 나오도록 유인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사고와 재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는 배달노동자 현실에 적용할 수 없다. 아스팔트 복사열, 차량이 내뿜는 열기, 헬멧 등 안전장구 착용상황 등을 반영한 새로운 온열질환 예방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기상청 데이터와 배달플랫폼을 연동해 조치를 자동적으로 시행해 주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는 아울러 "일상이 되어버린 기후재난 상황이 닥치면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장치, 다시 말해 배달 주문을 라이더가 멈출 수 있는 작업중지권과 그에 대한 보상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기후재난으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때 자동으로 급여를 지급하는 기후실업급여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공동주택 경비노동자와 학교급식실 노동자, 물류노동자 등을 대표한 발언이 이어졌다. 이들은 각각 노동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설명한 뒤, 작업중지권 보장과 수익손실분 보장, 이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끝으로 연대발언에 나선 박은영 907대전기후정의행진 조직위 집행위원장은 "이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폐기해야만 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권리와 존엄한 삶은 잊혀지고, 노동은 자본을 위한 하나의 부품으로, 생태계는 이윤을 위한 착취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따라서 우리는 이윤보다는 생명을 말하고, 개발이 아닌 보호를 말하며, 경쟁보다는 공존과 돌봄으로 '기후'가 아닌 '세상'을 바꾸는 연대를 이루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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