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발뺌하고, 노동부는 떠넘기고, 언론은 '이모님'이라고
[박정훈이 박정훈에게] 서울시가 도입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제도의 문제점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남성이 경제적으로 부모를 부양하는 게 불가능한 시대에는 부모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고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여성을 선호하는 딸바보 현상이 생긴다고 분석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살갑고 다정한 딸을 기대합니다. 딸에게 예쁜 유니폼을 입혀 같이 공놀이도 하고 싶네요. 그러나 기대만큼 걱정도 큽니다.
좁은 집이라 아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소중한 책들을 선별해서 버리고, 중고차를 살지 말지 고민 중입니다. 경제적 문제야 검소하게 살면 해결될 것 같은데, 노동시간과 아이를 돌볼 시간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돌봄을 수입하자는 오세훈
▲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노동자들이 지난달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서울시는 저출생 문제와 돌봄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필리핀에서 가사노동자를 도입했습니다. '돌봄'을 소비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개별 구매가 가능한 상품으로 본 겁니다. 마트 진열장에 필리핀 돌봄노동자와 한국 돌봄노동자를 진열해놓고 소비자에게 구입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나 다름 없어 보입니다. 수입을 하면 좀 더 저렴하게 돌봄을 구매할 수 있으니 부모가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발상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단,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았습니다. 최저시급 9860원과 사대보험을 다 주면 월 238만 원을 부담해야 합니다. 이러다 보니 강남의 부모들만 필리핀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에 화답하듯 외국인에게 최저시급보다 적은 돈을 줘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돌봄'이라는 상품을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이 논의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사람들은 '가사관리사'라는 명칭 때문에 필리핀 노동자들이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육아정책연구소 김아름 연구위원에 따르면 필리핀 노동자들은 케어기버(Caregiver, 돌봄제공자)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간호조무사 수준의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케이기버들은 일본과 이스라엘에서도 일을 하는데, 병원 요양원 등 전문인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홍콩,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도메스틱 헬퍼(Domestic helper, 가사도우미)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명칭과 홍보는 가사관리사로 해놓았지만, 가사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 겁니다.
실제 한국으로 온 필리핀 가사관리사 중에는 교사 출신도 상당수 있어, 가사서비스보다는 교육목적의 수요가 높다고 합니다. 영어교육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저렴한 선생님을 집에 들이는 거죠.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세운 명분과 실제 시범사업의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가사관리사' 도입으로 인종차별과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최저임금법 위반을 모의하는 국회의원과 교수들
▲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 참석자들이 지난달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필리핀 가사관리사 임금, 문제와 해결책은?' 세미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오세훈 시장에 호응해 외국인 최저임금 차별적용 국회토론회까지 열었습니다. 제목이 거창합니다. '저출생 인구위기 시대에 외국인 근로자와 국민이 모두 WIN-WIN 하는 외국인 근로자 최저임금 구분적용' 세미나입니다. 세미나 자료집을 읽어봤는데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최저임금으로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수입했더니 국내 돌봄노동자의 현실이 드러나 버렸습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던 국내 돌봄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겁니다. 민간 육아도우미의 경우 노동법을 적용받지 않고 시간당 페이만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날 세미나에 참여한 김아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민간육아서비스 시장의 80% 이상이 시간제이고, 최근 민간 플랫폼을 통해 대학생, 보육교사, 유치원교사 등의 시장 진입이 활발해져 가격을 낮추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노동조건이 나빠서 인력을 못 구하는 문제를 외면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하는 꼼수를 쓰려다 문제만 더 키운 겁니다.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임금을 낮출 수도 없습니다. 헌법과 최저임금법을 위반할 뿐만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협약과 각종 국제조약을 위반하는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김경선 한국공학대학교 석좌교수도 발제문에서 외국인에게 생계비를 고려한 최저임금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외국인의 경우 주거비용과 식비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대신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외국인 종사자에게 양질의 숙식서비스를 제공하고 이 비용을 제한 금액의 최저임금을 지급하면 이용자가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가사관리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제안입니다. 그런데 '돌봄서비스분야 민간 시장 기능 활성화와 서비스 고도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입니다. 외국인 인력을 수입하고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인프라는 공공이 부담하고, 그 과실은 민간기업이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공공돌봄을 강화하는 쉬운 길을 놓아두고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최저임금 사용자위원도 반대하는 외국인최저임금 차별
외국인 돌봄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면 성차별을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여성의 경력단절 없어져야 한다'면서 외국인 최저임금 구분(차별) 적용을 주장합니다. 김준형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저렴한 외국인 돌봄노동자를 활용한다면 여성노동의 참여와 성별격차 해소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돌봄은 대표적인 여성 노동 일자리입니다. 인종에 따라 돌봄노동자 임금을 삭감한다면 성별임금격차가 해소될까요? 오히려 외국인노동자와의 가격경쟁 때문에 국내노동자 임금에 대한 동결삭감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외국인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인종차별에 멈추지 않고 성별, 업종, 나이 등에 따른 차별로 심화 될 수 있습니다.
이날 세미나에 참가한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부장은 최저임금 외국인 차별 적용뿐만 아니라, 업종별, 사업장규모, 나이에 따라서도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는게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여성들의 대표적 일자리가 소규모, 서비스직인 것을 고려한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성별임금격차를 보다 심화시키겠다는 주장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주목해야 할 주장도 있었습니다. 제가 최저임금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사건건 부딪쳤던 사용자최저임금위원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도 이날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업종별 차별적용을 주장했는데, 이날 세미나에서는 '일본 등과 아시아개도국 외국인근로자 유입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을 감안하면 최저임금 감액적용은 불리'하다고 주장합니다.
외국인근로자의 해외국 취업 이유 1순위는 임금 수준인데, 중장기적으로 아시아개도국도 저출산 문제가 심해질 경우 인력 해외유출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장들이 외국인 근로자 관리 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의사소통과 생산성 문제를 들었습니다. 인건비 부담은 10.9%(2023 외국인력 종합애로 실태조사)에 그쳤다고 합니다.
다른 발표자들이 인종차별적 시선으로 이주노동자를 인식했다면 중소기업중앙회만큼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이주노동자를 바라본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노동력상품의 수요, 공급 측면 상품의 질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최저임금 차별 적용은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오죽했으면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조차 최저임금 차별적용은 안 된다고 하겠습니까.
국가의 임금체불
▲ 지난 3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첫 출근해 업무지시를 보고 있다. [서울시 제공] ⓒ 연합뉴스
어떻게든 임금을 깎겠다고 서울시장과 국회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달 20일 받기로 약속됐던 (월급 성격의) 교육수당을 지급받지 못한 것입니다. 임금체불이 벌어지자 외국인 가사도우미 사업으로 치적을 쌓으려던 오세훈의 서울시는 고용노동부 책임이라며 문제에서 발을 뺍니다.
고용노동부는 업체의 유동성 문제라고 민간업체에 책임을 떠넘깁니다. 사실 이번 임금체불 사태의 또 다른 배경에는 플랫폼업체가 있습니다. 필리핀 가사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맺은 대리주부와 돌봄플러스는 가사서비스 플랫폼입니다. 대리주부 홈페이지에는 시급 평균 1만 5000원~2만 원 이상. 월 320만 원, 연간 4000만 원이 가능하다고 광고했습니다. 그런데 월급 줄 돈도 없다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언급했던 티몬·위메프 사태와 비슷합니다. 일감의 양과 근무시간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는데도 일단 사람들을 모아놓고, 서비스 수요자의 돈이나 투자금을 받아 그때그때 자금을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업체들은 정부 인증을 받은 곳입니다. 국가가 공공돌봄을 민간에 맡겨놓고 임금체불이라는 명백한 범죄를 묵과 방조하고 있는 겁니다.
여성 노동자는 '이모님이 아닙니다
이번 필리핀 노동자 문제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언론사들이 필리핀 '이모님'이라고 제목을 뽑은 겁니다. 필리핀 노동자를 '이모님'으로 쓰다니요? 이러니 시민들이 유튜브와 언론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국가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임신·출산·육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노동시간 단축과 공공돌봄서비스 및 사회보장제도의 강화, 특고플랫폼노동자들은 적용받지 못하는 육아휴직과 배우자출산전후휴가 등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즐비합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필리핀의 '이모님'에게 맡기겠다는 발상부터 실패입니다. 여성노동자는 이모님이 아니고, 돌봄은 상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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