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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속에서도 씩씩한 아이들을 통해 포기해야 할 아이는 없음을 배웠습니다"

80여 년 역사를 지닌 홍제동 아동양육시설 송죽원 신영례 원장 인터뷰

등록|2024.09.04 11:06 수정|2024.09.04 15:08
서대문구 홍제동에 자리한 아동복지시설 송죽원.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막상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송죽원은 일제강점기에 '뜻있는 여성들'이라는 의미의 송죽결사대를 조직해 활동하던 여성 독립운동가 박현숙 장로가 1946년 10월 20일 설립한 곳이다.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이웃사랑이라는 신앙고백을 담아 송죽원을 세웠다.

80여 년 역사를 품고 있는 송죽원은 6.25 전쟁 등 혼란한 시기에 부침을 거듭하다가 1959년 11월에 퇴계로에서 홍제동으로 이전했다. 벌써 65년간 홍제동에 터를 잡은 셈이다. 한때 운영상의 갈등이 있기도 했지만, 2014년 신영례 원장이 송죽원의 사무국장으로 취임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2021년에는 송죽원 일대가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해 앞으로의 환경 변화와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10여 년간 송죽원을 이끌고 있는 신영례 원장님께 송죽원의 현재와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 여성 독립운동가가 세운 홍제동 아동양육시설 송죽원 신영례 원장 ⓒ 송죽원


- 본인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

"저는 홍제동에 있는 아동양육시설 송죽원에서 10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함께 성장해가고 있는 송죽원 원장 신영례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자주 부르던 동요가 있었습니다. '내가 커서 엄마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 집은 내 손으로 지을 거예요. 울도 담도 쌓지 않은 그림 같은 집...' 그렇게 기억되는 노래를 부르며 놀았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놀다가 친구들과 저는 나중에 '이런 집을 지을 거야'라고 앞다투어 그림을 그리며 상상 속 집을 자랑하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처럼 넓은 정원에 수영장도 만들고 동화 속 예쁜 집을 그렸는데, 마음 한구석에 '밖에는 집이 없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내가 이렇게 큰 집을 차지하고 살아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며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마당 한쪽에는 집 없는 사람도 살 수 있도록 방을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 방은 너무 좁아서 불편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럼 우리 집과 비슷하게 지어서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서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어려서부터 사회복지사가 될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도 어린 시절 제가 가졌던 그 마음으로 누구 한 명 소외되지 않고 모든 아동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꿈꾸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 송죽원은 어떻게 오시게 됐나요?

"저는 어려서부터 어렵고 힘든 친구들을 바라보는 게 편치 않았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 만난 보육원 아이들과의 만남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에는 보육원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한 친구는 지금까지 저희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며 친정 가족처럼 왕래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동복지에 관심을 두게 됐고, 대학을 아동복지학과로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구청에서 서울시 아동복지 전문 공무원으로 아동복지 업무를 했고, 그 후 공직을 떠나 아동권리 국제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했습니다.

제가 서대문구청 가정복지과에서 송죽원을 담당하여 근무하고 있을 때 송죽원 대표이사가 교체되면서 송죽원에 갈등과 혼란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송죽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자녀 양육 문제로 송죽원이 안정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공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송죽원의 문제는 내가 해결하지 못한 일'이라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송죽원의 채용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내가 다시 이곳에 가야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송죽원의 갈등과 혼란은 끝나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 모두 문제가 많은 곳에 왜 가냐며 말렸습니다. 하지만 송죽원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송죽원이 처한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아이들에게 안정된 시설을 되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송죽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 원장님이 오시면서 송죽원을 정상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송죽원의 정상화를 위해서 김거성 전 이사장님과 설립자의 손녀이신 김덕신 이사님 등 많은 분이 애쓰셨습니다. 제가 사무국장으로 취임할 당시 송죽원은 전 대표의 비리와 부실한 운영으로 서울시에서도 고개를 가로 저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송죽원이 신뢰를 상실한 상태라 어떤 일을 추진하기도 어려웠습니다. 2개의 이사회가 소송 중이었고, 서울시로부터 매월 지도 감독을 받았으며, 3년 동안이나 아이들 신규 입소가 중지된 상황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고 피해자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른들에 대한 신뢰가 없었습니다. 이직률도 매우 높아서 아동 양육이 불안정했습니다. 시설평가를 하면 꼴찌를 하기 일쑤였습니다.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무엇보다 아동과 지역사회로부터의 신뢰를 얻어가는 것이 최우선적인 목표였습니다. 서울시에 신뢰와 책임 있는 시설 운영의 청사진을 담은 송죽원 운영 계획서를 만들어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밤 10시가 넘어가도록 야근하며 효율적이고 투명한 운영체계를 구축해갔으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하며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송죽원 운영 정상화 과정이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새로 구성된 민주적인 이사회, 아동 중심의 운영철학과 '여기를 다시 세우겠다'는 일념이 저를 움직이게 한 것 같습니다. 노력하는 만큼 아이들이 안정되고 직원들의 이직률도 줄어들었습니다. 아동들과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서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이 늘어나는 것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됐습니다."

- 송죽원 졸업생 중에서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면?

"아이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 주 양육자와의 애착에 실패하고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서도 얼마나 씩씩하고 예쁘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상처가 큰 아이 중에 부적응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시설에도 마음이 많이 쓰이는 아동이 두 명 있었습니다. 두 아이의 공통점은 모두 입양 후 파양을 경험한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한 아이는 아이들이나 자신을 보육하는 사람들에게 거칠고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아 힘들게 했고, 또 다른 아이는 심한 우울감에 자해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 두 아이를 키우며 한숨과 눈물이 떠나지 않았고, 불안과 힘겨움에 지치고 좌절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육자분들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덕분에 두 아이는 잘 자라서 모두 퇴소하여 자립하였고, 전문 직장인이 되어서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면서 동생들을 위해 기부도 하고 키즈카페에 데리고 가서 놀아주기도 합니다. 한 아이는 퇴소한 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저에게 전화를 걸어 철없던 시절에 마음 아프게 했던 것을 미안해하며 눈물로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이 두 아이를 통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이는 없다는 소망을 배웠습니다. 친부모와 이별하고 입양한 부모로부터 다시 거절당하는 큰 아픔을 겪었지만, 다시 힘을 내서 멋진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존경스러운지 모릅니다. 이 아이들 곁에서 포기하지 않고 함께 버텨주고 성장시켜 준 우리 직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 2021년 송죽원 일대가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됐다고 들었는데, 재개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지도 궁금하고요.

"송죽원이 현재 위치한 장소에 존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으로 송죽원이 이주해야 하는 경우 아동들의 성장과 보호에 여러 어려움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첫째, 학교 전학 문제로 아동들이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현재도 시설아동이라는 주위 친구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위축으로 친구 사귀는 것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전학 가는 경우 아동들이 적응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한 학교 통학 거리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우려됩니다. 재개발로 인해 송죽원을 이전해야 하는 경우 통학의 어려움과 학교 부적응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둘째, 시설을 이전할 경우 이전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아동들이 심리적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회복지시설이 새롭게 지역사회에 설치되는 경우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이 발생할 것이 우려됩니다. 그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거절당하는 상처를 받게 되면 아동의 발달과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셋째, 저희 법인에서 운영 중인 서대문지역아동복지센터를 이용하던 아동들이 방과후에 보호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안전의 문제와 결식의 문제에 당면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지역아동복지센터에서 40여 명의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이 부모의 부재 시간인 방과후에 급식과 교육을 제공받고, 안전한 환경에서 돌봄과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재개발로 인해 이전될 경우 근처에 아동들이 옮겨 갈 지역아동복지센터가 없어서 아동들이 방치되어 아동의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송죽원은 현재 위치한 주소에 그대로 있기를 원합니다. 고은산 서측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의 일환으로 이전하는 것은 송죽원의 역사적·아동복지적인 가치와 의미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귀한 존재'임을 가르쳐야 할 의무와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죽원은 아동들에게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희망과 기회를 제공하는 '소중한 가정'입니다. 아동들이 지금처럼 안정된 주거와 학습 환경을 누리며 살아갈 권리는 재개발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존치가 불가능하다면 보상을 받아 이주할 계획은 없으며, 시행 주체로부터 재개발 구역 내 아동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환경과 위치에 송죽원 생활시설을 신축해 달라고 요청할 것입니다. 또한 현재 생활하는 시설이 없어지기 전에 신축 건물로 들어갈 때까지 생활할 수 있는 임시 건물 제공을 요청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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