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이 제목 보고 눌러 봤다는 글, 이유를 알았다
다정한 길동무 같은 책, 최은경 지음 <이런 제목 어때요?>
오늘도 새벽에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어느덧 7년째 반복하고 있는 일상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마찬가지로 7년째 반복하고 있는 혼잣말을 내뱉고 있다.
"아... 왜 이렇게 안 써지지?"
다행히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행동은 탈모방지 마사지로 승화시켰지만, 이상을 따르지 못하는 현실로 인해 솟구쳐 오르는 불만은 끝내 승화시키지 못했다. 응어리가 쌓이고 있다.
갈 길을 잃은 느낌. 글이 잘 쓰이지 않는 심정을 표현하는 수만 가지 표현이 있지만 '오늘은' 딱 길을 잃은 느낌이다. 분명 글은 적고 있는데 갈피를 못 잡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갈팡질팡하는 기분.
글쓰기라는 일상은 매일매일 새로운 길을 걷는 듯하면서도, 사실상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느낌일 때가 많다. 특히나 글의 제목을 짓는 순간은 늘 초보 운전자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막힘없이 길을 달리다 기약 없는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착각을 일으키곤 한다.
제목이 먼저 떠오르면 글도 매끄럽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안갯속. 번번이 핸들을 잘못 꺾어 다른 길로 새버리기 일쑤다. 그것도 하필 산으로. 글이 산으로 가는 일상을 보내며, 7년째 반복하고 있는 또 하나의 고민이 바로 제목 짓기인 이유다.
떠오르는 제목들이 어쩜 이리 고리타분한지. 뜻밖에 손쉽게 글을 완성하고도 그에 어울리는 제목을 정하지 못해 며칠을 허비하는 날도 있다.
일전에 어느 연재 글에서 제목 정하는 것이 어려워, 제목을 무조건 첫 문장을 그대로 적게 되었다는 글쓴이를 본 적이 있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런 극단적인 결단을 내렸을지 심하게 공감했다.
당연히 나는 그런 결단력조차 없기에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반전이 나을까? 어그로로 비치진 않을까? 그렇다고 밋밋하게 적을 수도 없고.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남의 글 제목을 고민하는 사람을 만났다. 얼굴도 모르는 시민기자의 글을 다듬고 제목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 바로 오마이뉴스의 편집기자다.
제목을 함께 고민하는 편집기자
오마이뉴스와의 만남은 나로선 행운이다. 다양한 글을 적는 계기가 되었고 꾸준히 글을 쓰고 점검 받는, 훈련과 배움의 장이 되었다. 무엇보다 고민해서 지은 제목이 편집기자에 의해 어떻게 바뀌는지 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송고 제목 : 괜찮다는 부모님의 말, 가끔 모른 척해도 됩니다.
발행 제목 : "내는 괜찮다" 어머니 말, 못들은 척 워터파크 갔습니다 https://omn.kr/20058
이 글이 발행되고 회사 사람들로부터 어머니 모시고 워터파크 다녀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뜻하지 않은 사생활 노출. 알고 보니 네이버 메인에 노출된 글이 오랫동안 인기글로 남아 있었던 탓이었다. 흔한 말로 매체와 독자에게 모두 픽(Pick)된 경우였다.
오마이뉴스 좋아요 670개 이상, 네이버 포탈 공감 580여 건에 댓글 130개 이상. 인터넷도 잘 하지 않는 A 부장님이 제목 보고 눌러 봤다고 할 정도이니 제목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 확실했다.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이고 혹하면서도 단순한 어그로가 아니어야 하는 제목. 제목을 정한다는 것은 고민의 땅굴을 깊이 파고 다크서클을 짙게 만드는 일임이 분명하다. 결코 쉬워지지 않는 일이다.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을 위해 많은 시민기자들의 글을 다듬고 제목을 함께 고민해온 22년차 편집기자가 제목 짓기에 관한 책을 냈다.
'아, 그때 제목이 바뀐 게 이런 이유에서였어?'
읽다보니 편집기자가 실전에서 체득한 노하우의 본질을 알게 됐다.
글 쓰는 입장에서 책 <이런 제목 어때요?>는 다정한 길동무 같은 느낌을 준다. 길잡이가 아닌 길동무.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딱 정해진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느낌이다. 매일같이 '제목 짓기'라는 과제를 마주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시도와 고민의 결과를 알려주며 아낌없는 조언을 담고 있다.
글쓰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아우르는 제목 짓기의 노하우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독자와의 소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도 던져준다. 22년 동안 제목을 고민했으면서도 저자는 말한다.
제목 짓기 9단일 것 같은 저자가 이렇게 말하니 제목 짓기에 괜스레 위축되던 마음이 허리를 편다. 여전히 배우고 노력하고 있다는 저자 덕에 조급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제목보다 중요한 것
유명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점과 조심해야 할 사항, 반전이나 질문을 통해 집중을 이끌어 내는 방법 등, 책에는 다양한 관점에서 제목 짓기를 고민한 흔적이 진하게 배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다름아닌 글의 내용이다.
다양한 노하우를 나열하면서도 저자는 일관되게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사람의 이목을 끄는 제목이라도, 내용이 먼저라고. 무엇도 좋은 내용보다 먼저일 수 없음을 틈이 날 때마다 힘주어 말한다. 크게 공감했다.
책을 읽고 표시해둔 곳을 다시 들추며 생각한다. 제목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글의 일부이자 연장선으로 글의 핵심을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본질적으론 글에서 태어나는 것이 제목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고민하는 시간을 단순한 고통으로만 여길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 시간은 글을 완성해가는 또 하나의 과정이고 독자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설렘의 순간이기도 할 터.
저자가 제목 짓기가 쉽지 않다고 고충을 호소하면서도 동시에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아마도 이런 본질을 알고 있기 때문일 테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다 쓴 글을 바라본다. 역시나 이거다 싶은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번엔 애써 여유를 가져본다. 이 글을 읽어 줄 독자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나만의 제목을 찾는 과정도 분명 글쓰기의 즐거움이란 걸 떠올리면서.
'이 글 제목은 어땠나요?'라고 묻고 싶다.
"아... 왜 이렇게 안 써지지?"
갈 길을 잃은 느낌. 글이 잘 쓰이지 않는 심정을 표현하는 수만 가지 표현이 있지만 '오늘은' 딱 길을 잃은 느낌이다. 분명 글은 적고 있는데 갈피를 못 잡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갈팡질팡하는 기분.
글쓰기라는 일상은 매일매일 새로운 길을 걷는 듯하면서도, 사실상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느낌일 때가 많다. 특히나 글의 제목을 짓는 순간은 늘 초보 운전자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막힘없이 길을 달리다 기약 없는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착각을 일으키곤 한다.
제목이 먼저 떠오르면 글도 매끄럽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안갯속. 번번이 핸들을 잘못 꺾어 다른 길로 새버리기 일쑤다. 그것도 하필 산으로. 글이 산으로 가는 일상을 보내며, 7년째 반복하고 있는 또 하나의 고민이 바로 제목 짓기인 이유다.
떠오르는 제목들이 어쩜 이리 고리타분한지. 뜻밖에 손쉽게 글을 완성하고도 그에 어울리는 제목을 정하지 못해 며칠을 허비하는 날도 있다.
일전에 어느 연재 글에서 제목 정하는 것이 어려워, 제목을 무조건 첫 문장을 그대로 적게 되었다는 글쓴이를 본 적이 있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런 극단적인 결단을 내렸을지 심하게 공감했다.
당연히 나는 그런 결단력조차 없기에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반전이 나을까? 어그로로 비치진 않을까? 그렇다고 밋밋하게 적을 수도 없고.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남의 글 제목을 고민하는 사람을 만났다. 얼굴도 모르는 시민기자의 글을 다듬고 제목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 바로 오마이뉴스의 편집기자다.
제목을 함께 고민하는 편집기자
오마이뉴스와의 만남은 나로선 행운이다. 다양한 글을 적는 계기가 되었고 꾸준히 글을 쓰고 점검 받는, 훈련과 배움의 장이 되었다. 무엇보다 고민해서 지은 제목이 편집기자에 의해 어떻게 바뀌는지 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송고 제목 : 괜찮다는 부모님의 말, 가끔 모른 척해도 됩니다.
발행 제목 : "내는 괜찮다" 어머니 말, 못들은 척 워터파크 갔습니다 https://omn.kr/20058
이 글이 발행되고 회사 사람들로부터 어머니 모시고 워터파크 다녀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뜻하지 않은 사생활 노출. 알고 보니 네이버 메인에 노출된 글이 오랫동안 인기글로 남아 있었던 탓이었다. 흔한 말로 매체와 독자에게 모두 픽(Pick)된 경우였다.
오마이뉴스 좋아요 670개 이상, 네이버 포탈 공감 580여 건에 댓글 130개 이상. 인터넷도 잘 하지 않는 A 부장님이 제목 보고 눌러 봤다고 할 정도이니 제목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 확실했다.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이고 혹하면서도 단순한 어그로가 아니어야 하는 제목. 제목을 정한다는 것은 고민의 땅굴을 깊이 파고 다크서클을 짙게 만드는 일임이 분명하다. 결코 쉬워지지 않는 일이다.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을 위해 많은 시민기자들의 글을 다듬고 제목을 함께 고민해온 22년차 편집기자가 제목 짓기에 관한 책을 냈다.
'아, 그때 제목이 바뀐 게 이런 이유에서였어?'
읽다보니 편집기자가 실전에서 체득한 노하우의 본질을 알게 됐다.
▲ 이런 제목 어때요? 글쓰는이들의 길동무 같은 책. ⓒ 남희한
글 쓰는 입장에서 책 <이런 제목 어때요?>는 다정한 길동무 같은 느낌을 준다. 길잡이가 아닌 길동무.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딱 정해진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느낌이다. 매일같이 '제목 짓기'라는 과제를 마주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시도와 고민의 결과를 알려주며 아낌없는 조언을 담고 있다.
글쓰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아우르는 제목 짓기의 노하우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독자와의 소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도 던져준다. 22년 동안 제목을 고민했으면서도 저자는 말한다.
표현 하나에 쩔쩔맬 것이 아니라 그분 말대로 제목을 뽑을 때 '존중의 마음'을 담아 문장을 쓴다면, 차별적 내용이나 혐오 표현이 들어설 자리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지 않을까? 독자에게 제목에 대해 한 수 배웠다.
제목 짓기 9단일 것 같은 저자가 이렇게 말하니 제목 짓기에 괜스레 위축되던 마음이 허리를 편다. 여전히 배우고 노력하고 있다는 저자 덕에 조급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제목보다 중요한 것
▲ 제목 짓기인터넷도 잘 하지 않는 A 부장님이 제목 보고 기사를 눌러 봤다고 할 정도이니 제목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 확실했다. 나도 이 글을 읽어 줄 독자를 생각하면서 여유를 가져 본다. ⓒ indraprojects on Unsplash
유명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점과 조심해야 할 사항, 반전이나 질문을 통해 집중을 이끌어 내는 방법 등, 책에는 다양한 관점에서 제목 짓기를 고민한 흔적이 진하게 배어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다름아닌 글의 내용이다.
뭐든지 적당히 해야 한다. 재미를 위해 약간 과장한 제목을 쓰고 싶다면 일단 내용을 먼저 보자. 소리만 요란한지, (독자가 읽고) 뭐라도 마음에 남길 게 있는지, 내용 있는 과장은 귀엽게 봐줄 수 있지만 소리만 요란한 제목은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그럴 때는 아무리 재미있는 제목이라 해도 미련을 버리자. 때론 최고보다 차선의 제목이 나을 때도 있으니까.
다양한 노하우를 나열하면서도 저자는 일관되게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사람의 이목을 끄는 제목이라도, 내용이 먼저라고. 무엇도 좋은 내용보다 먼저일 수 없음을 틈이 날 때마다 힘주어 말한다. 크게 공감했다.
책을 읽고 표시해둔 곳을 다시 들추며 생각한다. 제목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글의 일부이자 연장선으로 글의 핵심을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본질적으론 글에서 태어나는 것이 제목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고민하는 시간을 단순한 고통으로만 여길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 시간은 글을 완성해가는 또 하나의 과정이고 독자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설렘의 순간이기도 할 터.
▲ 글의 제목짓기는 글을 완성해가는 또 하나의 과정(자료사진). ⓒ alejandroescamilla on Unsplash
저자가 제목 짓기가 쉽지 않다고 고충을 호소하면서도 동시에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아마도 이런 본질을 알고 있기 때문일 테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다 쓴 글을 바라본다. 역시나 이거다 싶은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번엔 애써 여유를 가져본다. 이 글을 읽어 줄 독자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나만의 제목을 찾는 과정도 분명 글쓰기의 즐거움이란 걸 떠올리면서.
'이 글 제목은 어땠나요?'라고 묻고 싶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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