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절대 무시해선 안 될 '자잘자잘한 목소리'

[서평] 6411의 목소리 지음,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등록|2024.09.08 16:55 수정|2024.09.08 16:55
자칭 타칭 우리나라를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한다. 매일 쏟아지는 사건 사고들로 한국의 역동성을 진단한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르다. 그러나 아무리 엄청난 사건이라도 하루가 지나면 다른 사건에 묻히고 지워진다. 논제와 논의가 많은 만큼 특정 사안에 대해 대안 심층적인 모색 없이 와글와글 시끄럽다가 지나가는 일이 돼 버린다.

외신 기자들에 관한 일화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에 근무하는 외신기자들의 공통된 말은 '한국이 외신기자로 생활하기 좋은 나라'라고 한다고. 기자의 존재 이유가 기사인데,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사회나 정치 면에 굵직굵직한 기사가 매일 쏟아지기 때문에 기사를 찾아다녀야 하는 노력 없이도 새로운 뉴스, 생생한 뉴스를 본국에 전달할 수 있단다.

요즘은 더 그런 것 같다. 대통령 부인의 명품백 수수 현장이 그대로 방송이 됐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고 온갖 비리로 점철된 인사들이 매일 요직을 차지한다. 독도는 빠르게 분쟁지역화 되고 있다. 대통령실 누군가의 외압 등도 나온다.

현상에 대한 진단도 빠르다. 명품백은 몇 번의 변신 과정을 거쳐 감사의 선물이 됐고, 독립운동의 역사는 다양한 이견쯤으로 정리가 됐으며, 독도의 명운은 일본의 마음에 달리게 된 듯하고, 어떤 조직의 수장은 철학과 신념과 업무 관련성이 없어도 가능하단다.

상황이 이러니 서민들의 생활쯤은 자잘하다 못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당연히 뉴스가 될 수 없다. 노동자의 죽음, 화재 현장의 죽음, 핼러윈의 죽음, 세월호의 죽음, 쪽방촌이나 생활고에 의한 죽음에 이어, 비정규직이나 소수자의 하소연, 고통, 투쟁, 죽음 같은 일들은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포털에서 마음먹고 검색해도 다른 기사 끄트머리에 한 줄 언급되면 그나마 비중이 있는 편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서민들이 지탕하는 나라

▲ 책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표지. ⓒ 창비


그런 자잘한 목소리들이 책으로 나왔다. 제목부터 힘들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인 노회찬의 유지를 이어받아 그의 정신을 기리며 기획된 책이다. 6411번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새벽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사회적 약자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노동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말한다.

글쓴이는 웹툰작가, 물류센터 직원, 도축검사원, 번역가, 대리운전기사, 요양보호사, 기숙학원노동자, 사회복지사, 전업주부, 예능작가, 헤어디자이너, 농부, 건설노동자... 각자의 노동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이다. 전국 방방곡곡 다양한 현장에서 땀 흘리는 75명 노동자의 이야기가 실렸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대한민국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서민들이 지탱하는 나라이기도하다'는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말이 그렇게 웅장하지 않다. 촘촘하고 꼼꼼하게 소외된 비정규직의 세상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극단적 미래의 단면을 상상하게 한다.

돈 없고 소외되고 연줄 없어 버려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의 사람들이 돈 많고 모든 것이 넘치고 그들끼리의 끈끈한 자본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위해 부품처럼 구석구석 활용되고 버려지는 미래.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린이 이야기한 것처럼 화폐의 흐름은 시장의 합리성이 아니라 화폐의 사용과 흐름을 주도할 힘과 기술을 누가 장악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곤 한다. 권력을 갖지 못한 이들은 권력이 강요하는 질서를 따를지, 따르지 않고 이탈할지 결정할 뿐이다.

그나마 이 질서 속에 있어야만 노동에 대한 금전적인 대가라도 얻을 수 있다.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책 260쪽, '그래도 책을 만드는 이유'

비정규직의 노동과 급여란, 그나마의 질서 속에서 받는 정당하지 못한 금적적인 대가다. 거기에 자존을 위한 재미, 성취감, 기대감 한 스푼을 얹어야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그나마 버틸 힘을 얻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노동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은 없다(책 332쪽). 그러나 책의 목소리대로 누구에게나 적용될 줄 알았던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멀다.

'같이 살자'는 목소리

▲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필진들. 국회로 간 6411의 목소리 행사 당시. ⓒ 노회찬재단


책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에서 이야기의 힘은 진심에 있다. 꾸미지 않아도 그들의 삶의 현장은 투명하다 못해 창백하다. 누구나 가슴 아픈 사연 하나쯤은 품고 산다지만, 사람들의 인생을 풀면 다들 책 몇 권은 넉넉히 나온다지만, 그래서 자신을 돌보기만도 벅차고 힘든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우리 일터 구석구석에서 어느새 '투명인간'이 돼 버린 노동자의 한숨과 땀방울에 대한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연대가 있고 분노하는 절실한 호소와 울림이 있다.

지금의 정치는 이들의 호소에도 희망을 얘기하기 어렵다. '약자의 눈물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 그 절박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지만 그럼에도 변화를 이끄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부디 법과 제도가 그들의 한계를 시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소한의 선의(문유석)>에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들끼리 서로 존엄하게 취급하기로 약속하기 시작한 데서 출발한다. 약속의 바탕에는 동료 인간들의 비참한 처지에 본능적으로 울컥하는 감정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본능에 따라 국민에게 차마 해를 가하지 못하는 정치, 저자는 맹자의 이 측은지심이 국정운영의 최고 이념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2013년 방영된 드라마 <직장의 신>에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 작은 바늘도 큰 바늘도 가고 그렇게 다 같이 가야 갈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다 같이 가야 나 같은 고물도 돌아가는 거야. 그런데 김 양은 맨날 혼자서 큰 바늘 작은 바늘 다 돌리면 김양이 너무 외롭잖아. 내 시계는 이제 멈출 날이 더 많아도 김양의 시계는 가야 될 날이 많은데..."

시계든 부품이든 조직이든 혼자서 저절로 움직이는 것은 없다. 서로의 외로움까지 살피는 크고 작은 부품끼리의 연대, 생명은 유한하고 가진 것은 영원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공생이 보편적 가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함께 떠받치고 살아가는 사회, '같이 살자'는 이들의 목소리가 외면받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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