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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놓고 기역'의 '낫' 모르는 아이들, 스마트폰 탓입니다

[서평] 학교 선생님들과 <도둑맞은 집중력>읽은 뒤 현장 사례들 보니

등록|2024.09.08 18:17 수정|2024.09.11 11:51
"우리는 단순히 집중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난당하고 있다." -<도둑맞은 집중력> 중에서

나는 충북 영동 한 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매월 동료 선생님들과 책 대화 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번 달에는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를 읽었다. 대화는 스마트폰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를 어찌할 것인가로 모아졌다.

버릇없고 산만한 아이들, 잃어버린 집중력과 문해력, 게임 중독과 짧아진 수면 시간 등 문제들의 중심에는 분명 스마트폰이 자리한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

▲ 도둑 맞은 집중력 책표지. ⓒ 어크로스


언젠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된 이유가 무엇일까 토론한 적이 있다. 각자의 경험으로 온갖 주장들이 나왔다. 나름의 근거가 있는 주장은 이렇다.

먼저 너무 어린 나이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되어 중독됐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이미 반 이상이 가지고 다닌다. 고학년이 되면 스마트폰 없는 아이들을 찾기 어렵다. 비례해서 청소년 스마트 기기 사용 시간과 중독도 가파르게 상승한다.

과기부가 발표한 '2023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청소년 10명 중 4명(40.1%)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숏폼 이용자 23%는 '숏폼 시청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는데, 청소년은 이 비율이 37%까지 올라갔다고 한다(<디지털데일리>, 2024.8.14.). 자기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장애를 겪거나 금단 현상을 보인다는 의미이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극심해졌다.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의 자극적인 영상에 노출되면 신경계통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보인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뇌는 일반적인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고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일명 '팝콘 브레인'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큰데, 이렇게 되면 스마트폰 밖 진짜 세상은 온라인에 비하면 너무 느리고 밋밋한, 그래서 아이들에게 참 재미없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부모들이 너무 바빠서 이렇게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민국 부모들은 직장에서 너무 오래 일한다. 한국의 한 해 노동시간이 OECD 평균보다 약 200시간 더 많다고 하니(2023년 기준), 장시간 노동과 과로가 엄마 아빠들 일상인 것은 당연하다. 이런 여건에서 아이들과 같이 놀거나 오랜 이야기를 나누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 공백을 스마트폰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경쟁 교육도 한 원인일 것이다. 학교-학원-집으로 이어지는 갑갑한 일상의 쳇바퀴를 도는 아이들, 학교 끝나면 마땅히 갈 곳도 놀 친구도 없고 집에 가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는 아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이 차라리 휴식이자 안식처일 수 있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지 이제 약 10년이 넘었다. 지구 40억 명 인구가 사용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깨어 있는 시간의 3분의 1을 스마트폰에 갈아 넣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아이들의 눈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폰 화면을 쫓는다. 책의 저자는 아이들이 화면을 향하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애플과 페이스북, 구글 등 거대 기업이 떼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면에 숨어서 돈을 버는 '거대한 세력'을 말하지 않고, '문제는 네 안에 있어' 말하는 것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비만이나 우울, 중독처럼 우리 문화에 근본 원인이 있는 거대한 문제와 관련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언어로 단순한 개인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 주장은 낙관적으로 들리는데, 문제를 금방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 주장은 잔혹한데, 이렇게 제시하는 해결책이 너무 제한적이고 근본 문제를 전혀 보지 못했기에 결국 대다수에게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233쪽)

<경향신문> 기사를 보니, 지난 2월 영국 정부는 각 학교에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2024.8.28.일자). 독일과 네덜란드 정부도 교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권고했으며, 이탈리아는 2022년부터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 11개 주에서는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법을 시행 중이다. 프랑스에서도 '디지털 쉼표' 학교를 시범 실시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모든 초중고에서 휴대전화를 금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하니... 선생님, 제 발이 뭐예요?

▲ 부모가 늘 노동 중인 한국에서 아이들은 그 공백을 스마트폰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놀 친구도 없고 집에 가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는 아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이 차라리 안식처일 수 있다.(자료사진) ⓒ punttim on Unsplash


한 동료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다. 수업 시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나왔단다. 한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제 발이 뭐예요?

이 아이는 '제 발'과 '제발'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발'은 알지만 '제 발'은 모르는 탓이니, 단음과 장음(제〜발)으로 설명해서 이해될 일이 아니었다. 사전적 의미를 설명해도 아이는 갸우뚱한 표정이었는데, 결국 영어로 이건 'please' 뜻이 아니라 'my foot'이란다 설명하니, 그제야 아이는 언더스탠드(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식하다는 뜻의 속담으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또 다른 선생님의 경험에 의하면, 이 속담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기역 자 놓고 낫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은 '기역'은 알아도 '낫'을 모른다. '이건 말이야, 시골에서 풀을 베거나 벼나 보리를 베던 농기구야' 설명해본들, 낫을 본 적도 직접 해본 적도 없으니 알아듣지 못한다.

갈수록 황순원의 <소나기>를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국어선생님의 하소연도 있었다. 소설을 보면 소년이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소녀가 소년에게 "이 바보"라며 조약돌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아름답고 감동적 장면이었다는 것은 어른들 생각이다. 요즘 교실에서 적지 않은 아이들이 이 장면을 이해하지 못한다.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다짜고짜 왜 욕을 하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욕도 기분 나쁜데 돌까지 던지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뭐 이쯤이면 싸우자는 것이냐? 되레 물어본다.

<도둑맞은 집중력> 목차를 보면, 4장의 제목이 '소설의 수난시대'이다. 집중력을 도둑맞은 요즘 아이들이 긴 텍스트(특히 소설)를 읽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긴 텍스트를 읽지 않을 때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고 있다.

2017년 기준, 미국인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17분이고 하루 평균 핸드폰 사용시간은 5.4시간이었다. 우리나라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복잡한 소설이 수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네 망엔은 노르웨이 한 대학에서 문해력을 연구하는 교수로, 20년 간 이 주제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독서는 오랜 시간 한 가지에 집중하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 반면 휴대폰 화면 읽기 방식은 정신 없이 넘기면서 초점을 옮기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액정 화면에서 글을 읽을 때 대충 훑어 필요한 내용을 뽑아내는 식으로 읽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읽기는 더 이상 다른 세상에의 즐거운 침잠이 아니라, 붐비는 슈퍼마켓 안에서 뛰어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잡아채서 빠져나가는 행위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소설은 우리를 다른 삶으로 초대하고 다른 삶을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소설은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다. 책의 주장처럼, 스마트폰은 소설은 상극일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은 소설(긴 글)을 멀리하게 만드는데, 소설과 멀어지면 어휘력뿐만 아니라 공감력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에게 우리의 감각과 능력을 하나씩 도난 당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개인적 해결책이 '잔혹한 낙관주의'로, 미봉책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면,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저자는 집중력을 되찾기 위한 운동으로 먼저 '감시 자본주의'를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주4일제를 도입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을 되찾는 것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보다 덜 일하고 더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것만이 답일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주간영동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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