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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배로 뛴 8월 전기요금, 정말 역대급 여름이었다

우리 삶에도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기를

등록|2024.09.06 11:39 수정|2024.09.06 11:39
요즘 더위가 한 풀 꺾인 덕에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을 맞을 수 있어서 좋다. 밤낮으로 에어컨에 의존하며 살았던 올해와 같은 여름은 다시 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인간의 끝없는 욕심으로 여전히 훼손 진행 중인 자연을 보자면 나의 바람은 덧없는 것만 같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나는 늘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을을 한껏 즐길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데 올해는 '가을'스러운 기분이 나지 않는다. 여름이 너무 더웠던 탓일까? 단지 그 이유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올해 여름 나는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초등학생인 두 아들을 전학 시켰다. 그리고 아이들이 새로운 학교에 적응을 할 때 즈음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쓴 아이들을 위해 이번 방학 기간 동안은 방과 후 수업을 한 개도 신청하지 않았다.

남편의 홑벌이로는 생활비가 부족하여 맞벌이 생활을 해야 하는 형편이지만 우선은 아이들이 낯선 곳에서 적응을 먼저 해야 나도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나는 일을 하지 않는 쪽으로 계획을 세우고 아이들과 함께 보냈다. 아이들은 자유권 보장을 받게 된 민주 공화국의 시민처럼 환호했다.

아이들은 불볕더위를 피하기 위해 에어컨이 있는 집 안에만 있으려고 했다. 밤낮 없는 폭염을 피할 길은 에어컨밖에 없었다. 이번 방학 기간은 매일 20시간 이상 에어컨을 '풀가동'한 것 같다.

올여름은 우리 집처럼 거의 하루 종일 에어컨을 튼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전력 공급난 소식이 들려올 줄 알았는데 그런 뉴스는 없었다. 그래서 더 마음 놓고 에어컨을 틀고 생활했던 것 같다. 올여름의 전기요금이 얼마나 많이 나올까 걱정을 하면서도 에어컨은 일단 켜고 봐야 했다.

더위를 피해 집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편하게 피서를 하는 나와 아이들이지만, 한편으로 서울 도심 속 뜨거운 열기의 주원인이 바로 에어컨이라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또 전기세 폭탄에 대한 두려움도 들었다.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는 물음이 생겼다.

그래도 7월 전기요금은 5만 원 이하여서 그럭저럭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방학이 7월 말에 시작했으니 8월 전기요금이 진짜 문제였다. 아직 고지서를 받기 전이어서 숫자로 대략 계산을 해보니 무려 7월의 네 배 정도 되는 요금이 청구될 예정이다.

방학 기간 동안 아이들을 사교육의 도움 없이 집에 있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나는 초등학생 아들 둘의 엄마이다. 그러다 보니 식비로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한창 성장기인 남자아이 둘은 냉장고를 수시로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냉장고 문이 부서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물가도 너무 올라서 마트에 가는 재미도 줄었다. 반면 가성비를 꼼꼼히 살피느라 장 보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어린 두 아들의 허기진 배를 매일 채우는 일은 물심양면의 수고가 필요한 일인데 이번 여름 방학은 엄마로서 역대급으로 수고의 땀을 흘렸던 것 같다. 동시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무상급식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둘째출출해진 둘째가 냉장고를 열어보고 있다. ⓒ 김은유


방학 기간 동안 파리 올림픽 경기를 보며 무더위를 잊을 만큼 즐거운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지인들이 병원 진료에 애를 먹는다고 들려오는 소식, 연일 울리는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알림 문자로 인해 불안감이 엄습할 때면 폭염을 겨우 이길 힘마저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9월이 되자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살랑거렸다. 하지만 지난한 여름의 후유증으로 인해 가을이 주는 혜택을 망각한 것처럼 가을 바람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저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봐야 비로소 이 후유증이 가실까?'하는 노파심마저 생긴다.

물가가 안정되고 소득이 좀 더 늘어난다면 1 년 후에 다시 찾아 올 여름이 올해보다는 덜 부담스러울 것 같다. 아픈 지인들이 병원에서 적당한 때 잘 치료 받았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살 맛이 날 것 같다. 냉각되어버린 남한과 북한이 대화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아이들에게 더욱 신나게 미래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응시할 때면 예전엔 떠오르는 '가을'스러운 노래가 있었는데 아직은 먼 곳에서 어렴풋하다. 파란 하늘을 유영하듯 가을 바람을 타고 윙윙 거리는 고추잠자리들이 나타날 때 즈음이면 들려올까? 폭염 지옥의 후유증이 푸른 하늘 저 편으로 사라지고 산들산들한 가을 노래를 흥얼거리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고추 잠자리가을 바람을 타기 위해 발돋움하는 고추 잠자리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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