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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철학 강요하지 않아도... 관객은 들으면 압니다"

[인터뷰] 문화비축기지 탱크4서 'KEY AGING' 전시공연 중인 뮤직비주얼 작가 강신욱

등록|2024.09.06 11:33 수정|2024.09.10 11:35
"전시와 공연을 찾아주시는 관객 스스로가 (저의 음악과 비주얼로) 기존 경험 및 생각들을 떠올리고, 그것이 자신만의 확장된 사고(思考)로 이어져 나중에서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 5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T4 (탱크4)에서 강신욱 작가를 만났다. 그는 'KEY AGING', 공간 유산 시리즈 1 전시를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8일까지 이곳에서 연다.

"말이라는 언어를 초월하고 싶었어요. 흔히 '빨간 사과'라고 하면 떠오르는 빨강이 저마다 다르고 사과의 이미지와 느낌 등도 사람마다 제각각일 거예요. 관객 개인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빨간 사과'를 떠올리며 오로지 자신만의 고유한 것들로 채워지는 순간을 연출하고 싶습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그리고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1988년생 대구 출신 강신욱 작가.

"요즘 사람들은 영화나 연극, 오페라와 뮤지컬 등 메시지가 있는 것들에 피곤해져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철학을 전달하기보다 곡의 색채만 알려줘도 음악을 듣고 관객 자신의 경험에 따라 해석합니다."

강신욱 작가의 KEY AGING 전시공간1970년대 오일이 가득했던 탱크 안이 강 작가만의 새로운 공간유산, 예술공간으로 탄생했다. ⓒ 임효준


강 작가 역시 젊은 시절에는 철학적 메시지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고 한다. 국내 대기업 TV광고와 드라마 등 전문 CF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시대상황과 메시지 등에 집중했지만 서른을 넘기면서 '과연 그런 것들이 중요할까?' 의문이 들었다고.

"10년이 넘는 상업 음악으로 돈은 벌었지만 허전했습니다. 그래서 제 음악으로 개인 아티스트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제한적인 활동이었지만 본격적으로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

과거 석유 비축장소였던 문화비축기지 중 TANK4는 유일하게 과거 15M 석유를 비축했던 탱크 모습을 갖춘 곳이다. 그의 '키에이징 (Key Aging - Space Legacy Series Ⅰ)'은 피아노 건반의 이름 'KEY'와 노화와 숙성의 뜻인 'Aging'이 합쳐진 이름이다.

"사운드 체크가 최우선입니다. TANK4에 들어와 제일 먼저 울림 길이가 리버브 테일(자연 환경 혹은 인위적인 이펙트 장비에서 초기 반사음 이후에 나타나는 잔향음)이 8.6초인 것에 놀랐습니다. 이는 거대한 공간의 울림으로 독일의 유명 대성당보다 길고 웅장합니다. 이 넓은 공간이 예전에는 석유로 가득 차 있었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 땅에 묻혀 잠들어 있었던 거죠. 애틋한 시간 여행을 상상하며 돌이킬 수 없는 그 자체로 꼭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실, 그는 4년을 기다린 것이다. 2021년부터 문화비축기지의 T4 설계도 및 공간 등을 확인해 계획했지만 지난해에는 흙 내림 방지공사 등을 1년 내내하면서 결국 공사가 마무리되기까지 기다려 이번 전시공연이 성사된 것이다.

5살 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쳤던 그의 어릴 적 꿈은 뮤지션이 아닌 천문학자였다. 우주 태초의 모습을 상상하고 '인간은 왜 태어났나?'라는 질문을 간직한 소년이었다.

그는 무한한 우주에서, 그리고 무한한 음계에서 인간이기에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7음계와 반음까지 포함하면 12음, 거기에 신디사이저의 반음과 반음 사이의 미분음까지 표현할 수 있는 연주음악 및 소리의 깊이, 원리까지 파고든다.

문화비축기지 Tank4천장 구멍으로 태양빛이 내려오는 광경을 본 강 작가는 강렬하게 작품 전시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 임효준


"처음 탱크4에 들어왔을 땐 황동색(갈색)의 여러 기둥들이 마치 철이 녹슨 것처럼 닳고 노화된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 당시 석유가 차 있는 것을 확인하던 탱크 꼭대기 천정의 구멍에서 햇볕이 일정한 방향으로 빛내림 했던 그 장면이 너무나 멋있었어요."

그는 공간과 시각, 청각의 입체적 통합을 통해 일반적인 전시와 공연의 경계를 넘어 기술 융합을 통한 새로운 장르 플랫폼을 연다.

"전자 악기를 충분히 이해하고 사운드 디자인과 사운드 엔지니어링이 함께 있어야 소화할 수 있습니다. 공간과 함께 고민하면서 '소리'를 전제로 공간부터 생각하고 특성을 조사하고 답사를 통해 성분, 규모, 가로 세로 도면, 공간 울림, 잔향 데이터 등을 체크해 종합적인 공연 전시가 기획됩니다."

공연 이후 공간 자체에 대해 관객들이 스스로 알게 됩니다. 먼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 주말 공연을 찾은 관객들도 Tank4 안에 들어오면서 스스로 공부하듯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직접 울림을 듣고 피아노음이 배음이 되듯 강렬해지는 걸 느낍니다. 관객이 돌아가실 때는 "'너무 감동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1970년대 석유비축을 위해 1급 보안으로 은밀하게 땅 속에 묻혀 있던 문화비축기지의 탱크들을, 석유에서 '아트 컬처'로 승화되는 극적 순간을, 가장 중요한 관객이라는 시민의 이름으로 완성시킨다.

"예술은 받아들임 그 자체입니다. 슬프고 경쾌하고, 때론 강하고 멋지고, 비장함과 결의에 찬 느낌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말이 아니라 오로지 '관객 자신의 생각'입니다. 작가의 이기적 욕망으로 창작이 시작되지만 아주 개인적인 '나'로 인해 공감하는 관객과 팬이 생겨나고 이것이 이어져 선순환 되는 것입니다."

문화비축기지 탱크4 모습강 작가의 작품 전시가 있는 문화비축기지 탱크 4는 15M 높이로 석유탱크로 땅 속에 묻혀있던 곳이다. 산업화 시대의 탱크가 지금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됐다. ⓒ 임효준


강신욱 작가의 'KEY AGING' 공간유산시리즈문화비축기지 탱크4 입구 앞 ⓒ 임효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비축기지 20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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