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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행이 꿈인 독일 젊은이들이 많아요"

독일 청년 레오니... 한국 문화 제대로 이해려 한국어 공부

등록|2024.09.09 10:36 수정|2024.09.09 10:37

▲ 미술사를 공부하는 레오니는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농장 분위기를 시원하게 만들어줬다. 깻잎을 수확하는 모습 ⓒ 조계환


"5년 전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패키지 관광객의 일원으로 한국을 처음 여행했어요. 당시 케이팝 소녀였던 저에게 한국 여행은 굉장한 경험이었어요. 현대적인 건물, 세련된 패션, 맛있는 음식, 친절한 사람들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뒤 10개월 정도 머물 계획을 잡고 3월에 다시 한국에 왔어요. 여행하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폭염이 절정이던 8월 중순, 24살 독일 청년 레오니가 백화골에 팜스테이를 하러 찾아왔다. 독일 북부의 마센이라는 마을에 살고, 인근 함부르크의 대학에서 유럽미술사를 전공했다. 지난 3월에 한국에 온 뒤 학원에서 한국어 공부부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지만, 특히 한국 음식을 좋아해, 음식의 바탕이 되는 채소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싶어 한국 유기농 농장에 찾아왔다.

레오니가 농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많이 지쳐 있었다. 지난 여름은 정말 더웠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나고, 밤에도 여전히 온도가 내려가지 않아 힘들었다. 이런 폭염에 레오니는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농장 분위기를 시원하게 만들어줬다. 우리도 다시 힘을 내서 레오니와 함께 가을 배추와 무, 양배추, 브로콜리 등을 심었다. 이제 9월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찬 바람이 불고 있다.

독일에 인기 많은 한국

우리 농장에서 하는 팜스테이는 노동과 숙식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하루 5시간, 주 5일을 일하면 숙박을 제공받는다. 1968년 5월 혁명의 여파로 환경문제가 대두되며 유럽에서 유기농장이 조금씩 늘어갔다. 풀 매기 등 많은 노동이 필요한 유럽 유기농가들이 모여 이런 봉사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금은 새로운 여행법으로 변형되어 게스트하우스, 미술관, 언어교환 업체 등에서 활발하게 활용한다. 관광지에서 사진찍고 끝나는 여행이 아닌, 현지인과 함께 머물며 제대로 문화를 느껴보는 여행법이다.

우리 농장은 10년 째 외국인 봉사자를 받고 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함께 지냈는데, 독일인들은 특히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찾아왔다. 코로나 때 집에 머물며 OTT서비스로 한국문화를 접하게 된 젊은이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한국 문화 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독일은 상대적으로 세계적인 유행의 속도에 민감하지 않은 편이라, TV에서도 비서구권 문화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OTT와 SNS 등 인터넷으로 폭넓은 세계 문화의 장이 열리면서 독일 젊은이들이 한국 문화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 폭염이 계속되었지만 레오니와 함께 가을 작물을 심었다. ⓒ 조계환


베를린에는 한식당이 100여 개가 넘고, 독일 전국의 약 40개 초중고에서 한국어 수업을 실시한다. 해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도 늘어서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22년 12월에는 한국 문화가 왜 전세계적으로 인기인지 독일 공영방송 ZDF와 3SAT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문화의 왕 한국(Kultur-King Korea)'이 방송되기도 했다.

우리는 뒤늦은 독일의 한류 열기를 팜스테이 신청 메시지를 보면서 느꼈다. 2021년부터 독일 젊은이들이 보내는 메시지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19살 친구들부터 20대 후반까지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한국어를 조금씩이라도 했고, 한국 음악, 드라마, 영화에 통달해 있었다.

이전에는 독일인이라고 하면 장난삼아 '노잼'이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여러 독일인들과 지내다보니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마다 다 달랐다. 대체로 열심히 일하고, 떠난 후에도 계속 연락하거나 독일 집으로 초대하는 친구도 있었다.

한 번은 독일 유기농 채소 씨앗을 소포로 보내주기도 했다. 독일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영어로 소통하는 게 쉽다는 점이다. 대부분 영어를 잘하는 데다 알아듣기 쉽게 또박또박 명확하게 발음해주기 때문에 듣기에 편하다.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었어요

▲ 자급자족용으로 키운 작은 수박을 수확해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 자전거로 세계를 여행하는 프랑스 친구 피에로와 함께. ⓒ 조계환


"많은 독일 젊은이들이 한국을 여행하는 것이 꿈이에요. 저는 서울에서 몇 달을 머물렀는데, 관광객처럼 잠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었어요. 한국은 매우 현대적이고, 살기가 독일보다 편리하고, 특히 여자 혼자 다녀도 안전해서 여행하기 좋아요. 한국의 패션과 뷰티산업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 길거리의 한국 사람들을 보는 일 자체가 재미있어요."

한국 문화를 접하게 되면 다음 단계는 한국어 배우기이다. 레오니도 지금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요즘은 농사일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면 한국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면서 혼자 한국어를 공부한다.

재미있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너무 욕설이 많이 나와서 한국 사람 입장에서 좀 민망하기도 하다. 10분 드라마를 보고 문장을 공부한 다음에 다시 본다고 하는데, 이러다가 레오니가 한국 욕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도 된다. 다음에는 착한 말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를 봤으면 좋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조언해주었다.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었어요. 한글 쓰기와 읽기 및 문법을 배우기 위해 2개월 동안 서울에 있는 학원에서 공부 했어요. 처음에는 길을 가다가 한글 간판이 나올 때마다 읽으며 독해 연습을 했어요. 계속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문법이 달라서 쉽지 않아요. 내년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동아시아 미술사를 공부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려면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해요."

▲ 한국 여행 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제주.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지만 한라산 백록담에 올랐다. ⓒ 레오니


한국과 독일의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코로나 이후로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꽤 괜찮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하자, 레오니는 반대로 "코로나 이후로 독일의 의료 시스템이 실망스럽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독일에는 일단 의사가 부족하다고 했다. 무상의료이긴 하지만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병원은 응급상황에서만 예약이 쉽다고 했다. 한국처럼 아플 때 바로 병원에 가는 일도, 빠르게 약을 처방받는 일도 어렵다고.

반면 레오니는 독일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공부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조화롭게 짜여져 있고,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다고 했다. 학창 시절 늘 학교 가는 일을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방과후에 외국어 학습, 스포츠, 연극, 악기 레슨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알찬 학교 교육을 받았다.

▲ 레오니는 농장에서 갓 수확한 채소들로 요리한 한국 음식들을 정말로 좋아했다. ⓒ 조계환


물론 어떤 시스템이든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2022년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독일은 OECD 국가 중에서 수학 21위, 읽기 18위, 과학 18위다. 반면 한국은 수학 2위, 읽기 3위, 과학 2위 등 학업성취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한국은 경쟁이 치열하고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회라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그만큼 단시간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을 레오니도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한국 병원에 다녀온 다음에 쉽게 의사를 만나고 치료를 받았다는 것을 듣고 한국 의료시스템이 좋은 걸 알았다고 했다.

다시 한국에 오면

"서울에서 많은 박물관과 갤러리에 방문했어요. 그중에서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에 대한 전시회를 보았는데, 한국인들이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발돋움한 현대사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북한산 정상에 올라 도시 경관을 바라보는데, 어떻게 한국이 변화되어 왔는지 상상할 수 있더라구요."

레오니는 농사일 할 때 항상 일찍 나와서 준비하고 열심히 일했다. 이런 육체노동이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시간이 갈수록 훌륭한 농부가 되어 가고 있다. 요리도 잘 해서 한국 음식 만드는 법을 많이 배우고 있다. 김치도 많이 먹고 특히 참기름을 좋아해서 모든 요리에 참기름을 넣어 먹는다.

▲ 망원시장에서 각양각색의 한국 음식들을 실컷 맛보았다. ⓒ 레오니


"한국 음식의 특징은 가볍고 담백하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채소에 된장, 고추장, 간장을 절묘하게 사용하여 독특한 맛을 내는 게 매력이에요. 망원시장에서 먹었던 한국 스타일의 치킨과 닭갈비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에요. 물론 유기농 농장에서 일하며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로 만든 음식들도 정말 맛있어요. 갓 수확한 유기농 채소의 맛과 제가 알던 슈퍼마켓 채소의 맛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팜스테이를 하며 매일 매일 식사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10대 때 한창 좋아하던 케이팝은 요즘 덜 듣지만, 대신 전반적인 한국 문화에 매료되어 있다. 특히 한국의 뷰티산업과 패션에 관심이 많다.

"드라마 <싸이코지만 괜찮아>를 재미있게 보았어요. 이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인 서예지를 좋아하는데, 극 중 서예지 패션에 완전히 반했어요.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서예지처럼 옷을 입고 싶어요."

한국을 6개월간 여행하며 레오니는 친구들과 길거리 떡볶이를 먹기도 하고, 보드게임 카페에서 새로운 게임을 하며, 거리에서 한국 사람들의 패션을 구경하는 일이 여전히 재미있다고 한다. 내년에 한국에서 동아시아 미술사로 석사공부를 하고 싶은데, 한국에 있는 동안 인턴 사원으로 한국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은 소망도 있다.

▲ 농사 일 마치고 경주 금장대에 가서 야경을 구경했다. ⓒ 조계환


우리 농장을 떠난 후에는 부산을 꼼꼼하게 여행해보고 싶고,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해서 다시 한국에 돌아올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독일 친구들이 많이 오다보니 어떨 때는 마치 우리가 독일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평소 우리가 몰랐던 한국의 장점과 매력, 그리고 새로운 독일 문화를 공유해줘서 재미있었다.

한국이 여전히 정치나 사회 곳곳에 문제도 많지만, 세계인들이 매료되는 재미있는 콘텐츠와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독일 친구들이 새삼스레 알려줘서 고마웠다. 최근 의료분쟁 때문에 문제가 좀 있지만 그래도 아플 때 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유럽과 달리 밤 늦게 거리를 걸어도 안전하다는 점 등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레오니가 남은 한국 여행 기간 동안 더 한국의 매력을 발견하고 평안하게 여행하기를 기원한다. 내년에 다시 한국에 돌아오면 맛있는 우리 농장 채소를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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