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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 상황, '대통령 직속 기관'인 이곳은 손 놓고 있다

[넥스트브릿지] 거수기 역할?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 제고할 때

등록|2024.09.08 18:16 수정|2024.09.08 18:16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4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9차 전체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히 의료대란인 상황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아프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얼마 전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친구의 이야기이다. 연로한 아버지가 몸이 편찮으셔서 119를 긴급하게 불러 응급실을 갔는데, 여덟 군데의 병원에서 거절했고, 참다못한 친구는 그냥 환자를 업고 응급실로 밀고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골든타임을 놓쳐 제대로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상주의 모습이 유달리 슬퍼 보였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거친 의료개혁, 현장을 떠난 의사, 위협받는 국민 생명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은 전형적인 "Big What, Big How(빅 왓, 빅 하우)"다. 에릭 리우와 닉 하우어의 저서 <민주주의의 정원>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Big What, Big How"는 비전은 좋지만, 전략이 거친 상태를 말한다.

무엇이 좋을 것일까? "Big What, Small How(빅 왓, 스몰 하우)"이다. 크고 좋은 비전이 정교한 실천 전략이 만나야 한다. 의료개혁의 대의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지만, 지금은 정교한 전략이 없으니 고통이 다시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제는 뭐가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고, 비난의 화살은 의사 집단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정말 거칠게 의료개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노가 치민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의 생명과 존엄이 우선인데, 이를 내팽겨둔 채 투쟁 전략을 위해 병원 현장을 떠난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심경을 갖게 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할까' 하는 연민과 공감의 마음이 들면서도 의문도 든다. 그들이 병원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를 말하고 있겠지만, 그 떠남의 본질은 '의사 공급이 늘어나면 미래에 나의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는 마음이 아닐까?

▲ 의대 증원과 관련해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6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사 가운과 국가고시를 위한 서적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는 이제 "나의 경제적 수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부가 의료개혁을 철회하고, 수익 구조를 온전히 보장해 줄 때만 유용한 선언인가?

한국사회에서 '공부 잘한다'는 이들은 의사나 법조인의 길을 많이 걷는다. 그들의 대부분은 공교육을 거쳐서 나온 존재들인데 과연 공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들을 길러낸 것일까? 이는 교육의 비전과 가치,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치열한 경쟁의 관문을 뚫고,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얻게 되었다는 관점, 내가 노력해서 이 자리를 쟁취했다는 그 관점은 한국 사회에 독이 되고 있다. 만 18세에 사로잡힌 엘리트 의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의 존재는 누군가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서 존재하기에 이제 다시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조금이라도 환원하겠다는 삶의 자세는 어디에서 누가 길러줄 수 있는 것인가? 또한, 공부 좀 한다는 이들은 너도나도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수능에 매달리는 이 현실은 분명 공대를 포함한 또 다른 영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다시 한국사회의 부메랑으로 다가올 것이다. 진로와 전공 생태계가 붕괴하고 있는 셈이다.

의료대란에 손 놓은 국가교육위원회

이런 상황에서 눈여겨봐야 할 조직이 있다. 아니, 비판받아야 할 조직이 있다. 바로 국가교육위원회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기존의 대통령 교육자문기구보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법' 13조는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과 조정 권한을 주고 있으며, 처리결과를 통보받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해당 교육정책에 대한 위원회의 심의·의결 결과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따르도록 규정하였다.

이는 단순히 대통령 자문 수준을 넘어선다. 즉, 국가교육위원회의 심의 의결 사항이 효력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교육위원회법'에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목적을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추진되도록 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교육발전에 이바지함"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의료대란에 필요한 조항이다.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의료개혁은 추진해야 한다. 이 조직은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국가교육과정 기준 및 내용을 고시하며,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조정을 할 수 있다. 국민참여위원회, 전문위원회, 특별위원회를 두고 다양한 활동을 추진할 수 있다. 이 법을 중심으로 보면, 의대의 대학 정원이나 학사관리 등은 교육부의 소관이기 때문에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사안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고등교육 전문가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으로 각각 추천할 권한을 갖는다.

의대 정원 확대 등은 필요 정원에 대한 과학적 연구, 관계자들의 의견 수렴, 중장기적인 발전 정책 수립을 요구한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국가교육위원회는 존재감 자체가 없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이런 문제에 나설 의지도, 역량도 없는 듯하다. 대통령실의 의중만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는 것일까? 이럴 때 소신껏 일하라고 자주성과 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법률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에 에너지를 쏟다가 뭇매를 맞았다. 수능 이원화, 고등학교 내신 평가와 출제의 외부기관 위탁, 학교장에게 고교학생선발방식 위임을 통한 사실상의 고교 평준화 폐지 방안 등을 내부 논의하다가 내용이 언론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내부 논의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문제의 핵심은 국가교육위원회의가 조직의 설립 취지에 맞는 인사들로 구성이 되었는가이다. 이 와중에 국가교육위원회는 5성급 호텔에서 1박 2일 워크숍하는데 5400만 원을 썼다는 내용이 국회의원과 언론에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았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당과 정부, 대통령실을 조율하면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인물인지도 미지수다. 2022 개정교육과정 고시, 2028 대입안 발표 등의 과정에서 보여준 지금까지의 국가교육위원회의 행태를 보면, 교육부가 정책을 주도하고 국가교육위원회는 이를 형식적으로 추인해 주는 거수기 역할을 했을 뿐이다.

교육부를 견인하라고 만든 조직인데, 교육부가 국가교육위원회를 견인하고 있다. 거버넌스의 중심에 국가교육위원회는 보이지도 않고, 어느새 변방으로 밀려나 있다. 역대 대통령 교육자문기구보다도 못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수준과 역량이라면 이 조직을 없애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한 기대, 이제 접어야 하나

▲ 지난 2022년 9월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식에서 이배용 위원장과 위원, 내외빈 등이 현판 제막식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국가교육위원회의 조직을 보면, 전문위원도 둘 수 있고, 시행령에는 교육연구센터 지정도 가능하다. 국민참여위원회를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 여기에 행정적으로 숙련된 공무원도 30명 이상 근무하고 있다. 이런 여건이면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교육의 난제를 풀 수 있고, 의대 정원 조정은 물론 의료교육의 체계화도 논의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많은 직업이 있지만 유독 의사와 법조인을 꿈꾸는 비상식적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전망 제시다.

모든 직업의 존엄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고등교육, 평생학습과 직업교육의 새로운 비전을 담아내고, 특정 직렬이 독점하는 사회적 지대 및 이윤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즉, 입시만 기능적으로 뜯어고치는 방식을 넘어 유초중등교육은 물론, 고등-평생-직업교육을 포함한 비전과 운영체계를 새롭게 그려야 한다. 이런 과정을 위해서는 치열한 연구와 폭넓은 의견 수렴, 숙의형 논의를 거쳐 중장기 발전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2022년 9월에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의 인상 깊은 활약상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필요하다는 논문을 발표한 적도 있는데, 솔직히 이런 수준을 기대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교육부의 한계를 진작에 인식하고, 풀뿌리 거버넌스를 통해 국가교육위원회가 새로운 교육 비전을 구축하기를 바랐지만, 이미 물거품이 된 것 같다. 이런 조직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나 자신부터 통렬하게 반성한다.

* 필자소개 : 김성천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과 경기도교육청 장학사, 교육부 교육연구사를 거쳐 현재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며 학습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고교학점제란 무엇인가>(공저), <소환된 미래교육>(공저), <교육자치시대의 인사제도혁신>(공저), <융합교육으로 미래교육의 길을 찾다>(공저)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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