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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넷 데리고 시댁 가기,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나만의 추석 플레이리스트] 유튜브 때껄룩,악동뮤지션, 정지영의 라디오 프로

등록|2024.09.17 11:25 수정|2024.09.17 11:25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 어떻게 보내시나요. 장시간 귀성길의 피로, 부모님의 잔소리,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의 쏟아지는 질문들 앞에서 잠시 볼륨을 켜 보세요. 명절 스트레스를 녹여 줄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두통약은 챙겼고, 비타민도 먹었고.

명절의 시작은 약을 챙기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1년에 2번. 빨간날이 적어도 3일에서 5일까지 이어지는 대혼란의 기간을 버텨야 하니 언젠가부터 두통약과 비타민은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결혼 전이나 신혼 때 찾아오는 명절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결혼 전엔 직장 생활에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게 연휴였다. 달력에 빨간날이 하루라도 더 있길 바랐다. 그중 명절 연휴가 되면 며칠 동안 출근도 안 하고 어찌나 좋던지, 엄마가 차려주시는 명절 최애 음식을 먹고 친구를 만나는 등 여유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신혼 때도 그나마 나았다. 남편과 함께 오붓하게 달리는 고속도로는 낭만이라는 게 있었다. 차가 막혀도, 시댁에 가서 전을 부쳐야 해도 그 시간에 내 몸만 챙겨서 움직이면 됐다. 쉴 틈은 존재했고, 양가를 다녀온 후 명절 마지막 날엔 남편과 쇼핑을 하는 등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결혼 12년 차, 네 아이의 엄마가 되니 명절은 쉬는 날이 아니라 전쟁을 치르는 날로 의미가 변해 있었다. 한 달에 하루 정도 있을까 말까 한 공휴일은 귀여웠다. 명절은 사방에 지뢰가 깔린 날들이었다. 시작부터 험난하다. 늦잠은커녕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노는 아이들 성화에 수면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넷 중 하나가 아프기라도 하면 연휴에 문을 연 병원을 찾아 진료받기에 급급했다. 잘 있다가 집을 떠나기 전이돼서야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가겠다는 녀석, 물을 왕창 흘려 옷을 갈아입겠다는 녀석 등 변수를 챙기다 보면 출발 시간이 예상보다 30분씩 늦어지는 건 일도 아니다.

명절이 다가올 때면 빨간색으로 칠해진 날짜가 하루라도 적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과 함께, 불쑥 생겨나는 대체공휴일을 째려보며 원망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렇게 한 해 두 해, 명절을 보내다 보니 이 시간을 원만하게 보내려면 '잘 버티는 요령'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차 안에 울려 퍼지는 네 아이의 동화

▲ 아이 넷과 차에 타면 펼쳐지는 흔한 모습 ⓒ 이지혜


'잘 버티는 요령' 중 하나가 '듣는 것'이다. 명절이 되면 4살, 5살 쌍둥이, 6살 아이가 타고 있는 우리 차 안에선 동화 뮤지컬이 종종 들린다. 사실 시댁과 친정에 다녀올라치면 차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이미 피곤하다. 왜냐하면 길 위의 멈춰 선 차 안에서 네 아이와 보내야 하는 아니 견뎌내야 하는 시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주제가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고요한 차 안에서 한 명만 말해도 시끄러운데 무료함에 꿈틀대는 네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저마다 소리를 높이면, 귀여운 목소리는 어느새 소음으로 변해 내 귓가를 맴돈다. 이때는 정말 머리가 지끈거리고 차 밖으로 튀어 나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이니 빠른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의 귀를 자극하는 동화 이야기를 들려주고, 손에 간식을 쥐여주면 시끄럽던 차 안도 복작대던 내 마음도 이내 잠잠해진다.

동화 뮤지컬 듣기, 동요 떼창, 수수께끼, 끝말잇기 등 할 수 있는 것들로 시간을 꾸역꾸역 보내다 보면 시댁에 도착한다. 아이들은 시댁에 들어서자마자 양말을 벗어 던지고 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예정된 노동의 현장으로 가야 하는 엄마는 아이들에게서 벗어나는 동시에 바로 주방으로 향한다.

아직 아이들이 모두 어려서 음식을 장만하다가도 돌봐야 할 상황이 종종 생겨난다. 이런 아이들 덕분인지 시댁 주방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음식 준비가 출산 전보다 간소해졌다. 그럼에도 명절이라는 명분으로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내 눈앞에 놓여있다. 빨리해 내고 주방을 나가는 게 최선의 방법. 아이들이 잘 놀고 있나 곁눈으로 거실 쪽을 보며 부지런히 음식을 장만해 본다.

집으로 가는 길,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 나만의 심리적 처방전, MBC 라디오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 ⓒ 픽사베이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기어이 찾아온다. 놀다 지친 아이들은 고맙게도 더 이상 떠들 힘이 없는지 고요하다. 집으로 향하는 길,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 앱에서 '때껄룩'을 찾아 들어간다. '때껄룩(Take a look)'은 감정이나 상황, 장소 등 콘셉트에 따라 여러 음악을 모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는 유튜브다.

'때껄룩' 검색창에서 추석이나 드라이브 등 상황에 맞는 단어를 검색해 이 순간에 가장 어울릴만한 플레이 리스트를 선택해 본다. 신기하게도 어디서 이런 곡들을 찾았나 싶을 정도로 야무진 선곡에 매번 만족하게 된다. 마무리로 마음을 정화해 주는 악동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며 조잘조잘 따라 부르다 보면 어느새 깊어진 밤과 함께 집에 도착한다.

명절 전쟁을 마치고 다시 찾아온 짙은 검은색 숫자의 평일. 명절을 보낸 후엔 언제나처럼 심리적 처방전인 MBC 라디오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를 집안 곳곳에 들리게끔 틀어 놓는다. 이 라디오 프로그램은 엄마, 아내, 며느리, 주부라는 공통 역할을 가진 이들의 연대로 묶인 청취자가 꽤 많다. 2시간 동안 명절 내 있었던 저마다의 공감 가는 사연이 읽히고 그 이야기들에 함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아 이번 명절도 감사히 잘 보냈구나 싶어 마음이 다독여지고, 명절 스트레스가 쉽게 풀리기도 한다.

청취자들의 마음을 잘 아는 음악 작가의 역량인지 감탄이 나오는 선곡들과 함께 아이들이 등원하고 없는 텅 빈 집의 가라앉은 먼지를 쓸어내 본다. 익숙했던 것들로 찾아들다 보니 일상으로 다시 스며들고 있음이 슴슴하게 느껴진다.

지친 몸에겐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들음'이라는 감각을 통해 위로되는 것들이 내게 전해지고 있었다. 어떨 때는 멜로디가, 또 어떨 때는 사람의 목소리가 힘이 되어주어 조금은 버겁게 느껴졌던 순간들로부터 해방되었던 것. 언젠가는 음악을 듣지 않아도, 라디오를 듣지 않아도 될 만큼 명절 기간에 쉼과 틈이 있는 날들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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