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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래자랑 나가 최우수상, '판소리자매'가 서산에 있습니다

[인터뷰] 권도희(25)-권도연(23) 자매의 소리사랑... 오는 24일 국악콘서트 열려

등록|2024.09.10 10:52 수정|2024.09.10 10:54

▲ 왼쪽부터 언니 권도희(25살), 동생 권도연(23살) 서산판소리자매 . ⓒ 권도희


글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시절, 무대에 오를 때마다 심장이 간질간질 설레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는 이십 대 청년 국악 자매. 서산 유일 전통판소리 전공 재원 '권도희·권도연 자매'는 관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신명 나는 무대를 만들어버린다는 '소리청(廳)' 공동대표다.

'소리청(廳)'은 소리+청廳(관청청·마루청)을 결합해서 만든 단어로,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의 판소리에다 지극히 한국적인 정체성과 역사성 동시에 조상들의 한과 정서가 진하게 녹아 있는 귀한 가치의 전통음악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다.

청명한 하늘 아래 저 멀리 사위어 가는 배롱나무 꽃잎들이 통유리 안으로 들어온 지난 5일, 서산 작은 카페에서 서산판소리자매를 만났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온 그녀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소리청(廳)' 제1회 기획공연 포스터 한 장을 불쑥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는 서산시민과 함께 하는 '2024 가을밤 국악콘서트 <풍악을 울려라> 공연'이 오는 9월 24일(화) 저녁 7시 서산시문화회관 무대에 올려진다는 내용이었다.

"당대 최고의 명창과 서산시 최초 국악관현악단의 콜라보예요. 웅장한 사운드가 모든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공연인 만큼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으니 꼭 와주세요."

언니 도희씨는 낮에는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고 저녁이 돼서야 비로소 모여 연습에 매진한다는 두 자매. 하지만 소리 앞에서는 낮 동안의 피로는 잊은 양 물 만난 고기처럼 협업을 이루며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다. 다음은 둘을 만나 나눈 대화를 1문1답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1남 2녀 모두가 예체능 전공... "부모님이 금반지까지 파셨어요"

- 요즘 한창 국악콘서트 <풍악을 울려라> 공연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줄 안다. 이번 공연 관전 포인트는?

▲ 국악인 권도연 2023경기청년갭이어 프로그램사업 선정 팀 무던 -보컬 활동 ⓒ 권도연


권도연(동생): "고향 서산에서 객원(게스트)으로 초대된 공연은 많이 해봤지만, 당대 최고의 명창 신영희 스승님 이하 여러 선생님을 모시고 소리청 이름으로 직접 기획하여 올리게 된 공연은 처음이에요.

관전 포인트라면 평소 접하기 어려운 국악관현악단(국악오케스트라)과의 협연 무대가 준비된 만큼 자라나는 인재들과 부모님, 가족분들, 직장동료 등과 함께 오셔서 즐기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서산국립국악원 유치를 기념하기 위함은 물론, 많은 관람객이 국악의 참맛과 아름다움을 느끼시고 돌아가실 수 있도록 열과 성의를 다해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 왼쪽부터 국악인 권도희,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신영희 인간문화재 . ⓒ 권도희


- 이번 공연에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신영희 인간문화재 선생님이 같이 출연하는 포스터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소감을 말해달라.

권도희(언니): "격려해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 먼저 올리며, K-국악의 진정한 진수를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저희 곁에서 늘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민요를, 그 후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판소리를 배우게 됐습니다. 동생(도연)은 제가 판소리 테스트를 받던 중, '너도 한번 해볼래?'라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판소리계에 뛰어들었고요.

집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1남 2녀 모두가 예체능을 전공했으니 부모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버거웠을까는 짐작하지 않아도 압니다. 여름과 겨울 방학이면 보름 정도 합숙 훈련에 돌입하는데 딸 둘은 산공부('득음'), 막내아들(현재 스페인 마드리드 수학 중)은 축구 전지훈련으로 자식 셋 모두 나가니 얼마나 혹독했겠습니까.

어떻게든 보내주고 싶은 마음에 금반지도 죄다 팔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도 모두 부모님 덕분이고요. 현재는 몸이 불편한 이용인들을 보살피면서 열심히 봉사하며 살아가십니다. 부모님께 고마움과 존경을 보내드립니다."

- 어린 시절부터 아버님의 영향으로 두 자매가 모두 태권도와 판소리를 배웠는데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나.

권도연(동생): "부모님이 맨 처음 한두 번만 레슨하는 곳에 데려다주시곤 그 후부터 저희 자매 둘이서 서산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전주, 고양할 것 없이 판소리를 배우러 다녔어요. 그때 제가(도연) 8살, 언니(도희)가 10살이었죠.

가훈 '강하게 커야 강하게 산다'에 걸맞게 저희를 정말 강하게 키우셨어요. 언제는 한번 언니랑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는데 그만 문이 닫히는 바람에 제가 미처 타지 못하고 미아가 될 뻔했어요. 그래도 다음 정거장에 언니가 기다리고 있어서 만날 수 있었죠. 서로 울다가 웃다가 하는 가운데 문득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의 교육철학 덕택에 힘들어도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었던 우리 자매였어요. 제 자랑 같지만 초·중·고 시절 모두 전교회장이었고, 언니는 초등학교 전교 회장 중·고등학교때는 임원이나 학급회장을 놓치지 않았죠.

당시 유치원 원장님이셨던 어머니가 '소리한다고 공부 소홀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하셨고. 태권도학원 관장님이셨던 아버지는 예의범절을 지나치게 강조하신 분이셨어요. 부모님의 교육철학이 밑거름되어 저희 삼 남매 각자의 길에서 최선을 다해 각자도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 교원자격증까지 있는 언니 권도희씨는 전통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연희예술(판소리)과를 수석 입학·최우등으로 졸업했다. 동생 권도연씨는 한국예술종합대학교 4년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올해 진도 전국 가무악대제전 일반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두 자매가 함께 전통판소리를 하는데 현대음악과 전통의 갈림길에서 갈등은 없는지.

▲ 중고제 축제에서 장사익 선생님과 함께 . ⓒ 권도희


권도희·권도연 자매: "매번 전통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갈림길 위에 설 때가 있어요. 오로지 전통만을 지켜갈지, 전통을 지키면서 현대 음악을 함께 끌고 갈지. 요즘은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것 같아요. 큰 선생님들께서는 '오로지 전통만을 지켜가라'는 말씀을 하시지만 글쎄요.

거역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저는 그렇습니다. 일단 대중(관객)들에게 판소리를 알리기 위해서는 '범 내려온다', '사랑가'처럼, 우리의 전통을 지키면서 국악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퓨전 음악으로 함께 끌고 가고 싶은 바람입니다."

- 현재 언니 도희씨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서산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사회재활교사로 근무하고 계시는 데 힘든 점은 없는지?

권도희(언니):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에요. 맨 처음에는 부모님 일을 도와드린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하지만 요즘은 일하면서 행복을 느낀답니다. 이용인들과 함께 하하 호호 웃으며 소통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이용인들이 소소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돼요. 그럴 때 상당한 보람을 느낀답니다.

제 생활신조가 바로 '웃으면 복이 온다'입니다. 항상 어떤 일을 하든지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밝은 얼굴로, 매사 최선을 다하여 성실히 임하며 생활하자이죠. 앞으로도 사회재활교사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이용자분들에게 제 전공을 살려 판소리도 더 열심히 가르쳐 드리고, 소리 재능봉사도 다니며 차별이 아닌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함께 따듯하게 살아가고 싶은 게 제 작은 소망이랍니다.

참! 이건 저희 집 비밀인데요. 지금도 하루 일과가 끝나고 동생(도연)이 기분이 좋을 때, 때론 지치고 힘들 때, 아니면 아버지가 힘들어 보일 때는 어머니 시절의 7080이나 조혜련의 아나까나 등 신나는 노래를 크게 틀고 막춤을 춘답니다. 훗날 이런 시간들이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아요."

- K-POP을 좇는 기류 속에서도 두 분은 여전히 한국 전통판소리의 험한 길을 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신영희 선생님 자택에서 소리공부를 하며(오른쪽 첫번째 국악인 권도희) . ⓒ 권도희


권도희(언니): "어렸을 때부터 가사집을 펴면, 경기민요 판소리에는 생소한 한문 사설이 많았어요. 한자를 읽을 수 있어야 이면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저는 한문 관심이 무척 높았어요. 가장 어린 나이로 한자 급수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가기도 했어요. 시험을 보다가 문득 눈을 들어 창문을 바라본 적이 있는데 창밖에 서 있는 엄마를 발견해버렸어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엄마만 바라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있답니다.

대학 시절에는 필수 교양으로 한문 수업(대학 한문, 글로벌 한자)을 들었어요. 사자성어로 마부정제(馬 말 마 不 아닐 부 停 머무를 정 蹄 굽 제)라는 글자가 있는데, 이 말인즉슨 '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 뜻이었어요. 결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발전하고 나아가자는 의미의 사자성어였는데 지금까지도 새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배워 두면 언제, 어디서든, 꼭 필요한 시점이 올 거란 확신을 믿으며, 더 끊임없이 (소리를)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권도연(동생): "2024년 2월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어요. 학부생일 때도 그랬지만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나와보니 이 질문이 더 많이 와닿는 것 같습니다. 많은 국악인이 단순히 (국악의) 전통과 퓨전의 경계 두 가지 갈림길에 서게 되지요. 레슨 선생님(명인 명창 선생님)들은 제자들이 퓨전국악 활동이나 트로트 매체에 노출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셔요. 국악계 인재를 빼앗긴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사실, 저 또한 앞으로 전통국악공연을 해야 할지 퓨전으로 나아가야 할지 한참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답니다.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은 '국악을 향유하는, 소비하는 관객, 대중들이 있어야 국악이 전승될 수 있다'였습니다. 국악인들만이 고수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관객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과 그 음악의 장을 만들어나가야만 국악인으로서 현시대를 잘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7개월 정도 시간이 지났어요. 전통공연, 행사공연, 국악강좌 수업 공연뿐만 아니라 국악 인재육성 교육에도 국악의 전승과 계승에 기여하고 있답니다. 국악인 권도연으로서도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24년 전국노래자랑 서산시편 최우수상을 수상한 서산국악소녀 권도희 권도연 자매 . ⓒ 권도희


KBS '2023 전국노래자랑 서산시' 편에서 '서산국악자매'로 망부석을 불러 최우수상을 받기도 한 권도희 권도연 국악 자매.

그녀들은 한국의 전통음악과 공연 예술이 국제무대에서 더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국악의 세계화에 힘쓰고 싶다고 밝혔다. 아울러 두 자매가 나고 자란 서산을 중심으로 전통예술체험 공연 및 인재육성사업을 통해 서산에서 차세대국악인들을 발굴하고 함께 성장해나가고 싶다는 당찬 포부도 던졌다.

▲ 왼쪽부터 서산판소리자매 권도희 권도연 전통 판소리국악자매 ⓒ 권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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