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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사랑한 영국인 박사가 한국 법정에서 겪은 일

[2024 기후정의 현장르포] 26년째 한국살이... '새와 생명의 터' 대표 나일 무어스 박사 인터뷰

등록|2024.10.07 12:01 수정|2024.10.07 12:02
기후위기로 드러나는 온갖 환경문제와 불평등 문제, 그로 인해 삶의 위협을 받는 존재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기후위기가 왜 나의 문제인지 공감대를 만들고, 우리에게 닥친 생존의 위기를 고민하기 위해 생태공동체로서 공존하는 지혜를 모아보고자 합니다.[기자말]

▲ 나일무어스 박사가 2019년 1월 북한 서해보를 탐조 중인 모습. ⓒ Bernhard Seliger


"전곡역에 도착하기 바로 전에 철도 노선은 한탄강 위를 지나갑니다. 정확한 지점(남서쪽을 바라보면서)은 버드 코리아, 연천 카운티, 랜드 아우라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팀이 공동으로 습지 공원 조성을 추진해 온 곳입니다. 그 공원이 이후 연천 지역의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의 파일럿 프로젝트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일 무어스 박사는 야생조류와 서식지 보존 단체인 '새와 생명의 터' 대표다. 위의 글은 나일 무어스 박사를 만나기 며칠 전 그가 보내온 문자 내용이다. 연천역 전역前驛에 있는 전곡역은 2023년 12월 1호선 동두천에서 연천 연장 구간이 개통되면서 전철역이 되었다.

전곡역이 가까워지자 밖을 두리번거리다 얼핏 강을 보았다. 저 강인가? 하는 순간 강은 우리 시야를 벗어났다. 통역을 해주신 시러큐스대학교 유이지운 교수와 전곡역에 내려 그의 숙소까지 10여 분을 걸었다. 한때 군인이 많았던 동네, IMF 때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 상권이 무너지자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났고 나이 드신 분들만 고향을 지키고 있다.

"현재 산재한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활동가들이 하나하나 대응해서 투쟁하고 있어요. 우리의 목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에요. 우리는 사회, 경제, 생태공간성, 이 세 가지 기본 원칙에 집중해서 활동하고 있어요."

나일 무어스 박사는 미리 준비해 온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태공간성(Biosphere)은 생물과 무생물을 포괄해 생명을 생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균형 같은 것들을 고려하는 개념이다. 대기권 내에 생명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범위가 아주 넓다.

"보통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를 보면 먼저 개발 목표가 있고 그 밑에 다른 지향점들이 있는데요. 이 프로젝트는 그것과 달리 생태 공간에 기반을 두고 그 위에 사회를 건설하고 사회 위에 경제를 고려하는 거예요. 거꾸로죠."

야생성 회복 생태복원 프로젝트

▲ 연천군 생태복원 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되는 시민과 함께 하는 비전플랜 워크숍 ⓒ 연천군


연천군은 '새와 생명의 터', '새와 생명의 터 연천지부',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팀'과 공동으로 연천군 전곡 지역에 생태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2021년 연천군이 생물 다양성 조사를 하면서 호사비오리, 흰목물떼새, 큰부리큰기러기, 수달을 복원 목표 종으로 정하고 생태습지 복원을 추진하면서 시작되었다.

올해 1월에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팀에서 전곡 한탄강을 대상지로 대학원 환경설계 수업을 진행했고 비전플랜을 수립하였다. 8월에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팀이 연천을 방문해 심포지엄과 비전플랜 워크 세션에서 전문가와 학생, 지역주민 등에게 내용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는 나일 무어스 박사와 함께 '비전플랜 워크 세션'에 함께 참여했다. 발표자와 주민, 활동가들이 중간중간 질의응답을 했고 전문가들은 주민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복원'보다 '야생성 회복'이 필요하다는 주민의 말에 모두 공감하기도 했다.

"기후 위기나 생물다양성 위기는 인간의 개발 활동으로 인해서 완전히 파괴된 어떤 결과물이에요. 우리가 연구하는 환경 디자인, 환경 설계, 생태 계획, 생태디자인 분야는 어떻게 하면 여기에 가해지는 온갖 피해와 압력들을 줄이면서 파괴된 에코 시스템을 되살릴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학문 영역입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생태공간성이라는 개념은 유네스코에서도 사용하고 있는데, 그들 역시 이 상관관계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생태 공간성 회복 지역으로 연천군 전체가 지정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생물권보전지역

나일 무어스 박사가 말한 생태공간성 회복 지역은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s)을 말한다. 2019년 연천 임진강 지역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생물권보전지역은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면서 지속 가능한 이용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생태계를 대상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육상, 연안 또는 해양 생태계"다.

생물다양성협약(Convention Biological Diversity CBD)은 보전과 생물 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으로 얻어지는 이익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1992년 5월 유엔환경개발 회의에서 채택되었다. 우리나라는 1994년 10월 3일에 이 협약에 가입하였고 현재 가입국은 총 196개국이다. 협약안에는 일정 정도의 생태구역을 지정해서 보호해야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토양, 땅, 또는 바다, 해양자원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그 구역을 30%까지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생태 지정구역이라는 것은 고도의 생태 다양성과 인간의 교류, 모든 활동들, 문화 역사까지 포함해서 사회적인 어떤 효과들을 창출해 내는 장소를 말하는 거예요. 세 가지 유형의 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생태 다양성을 위해서 반드시 보존해야 되는 지역을 핵심구역(core zone)이라고 합니다. 임진강, 한탄강, 차탄천이 여기에 속하죠. 두 번째 완충구역(buffer zone)은 생태 다양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입니다. 세 번째는 협력구역(Transition area)으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인데요. 지금 연천이 전환지역으로서는 대표적인 예인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사회, 경제, 생태공간성이라는 세 가지의 기본 원칙 아래 한탄강 전곡 구간을 자연 상태에 가깝게 되돌려 놓기 위해 수질 개선과 서식지 복원, 환경 개선, 주민의 이익 증대 등, 지속 가능한 발전목표를 실현하고 국내외의 모범 사례를 만드는 일이다. 지역 생태복원 사업은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분야이지만 외국에서는 활성화되어 있다. 이 사업을 성과 있게 만들어내고 그 성과를 토대로 다른 지역의 풀뿌리 생태복원운동을 확산해가는 것이 목표다.

연천군의 변화, 어떻게 이루어졌나

▲ 연천군 생태복원 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되는 시민과 함께 하는 2024년 비전플랜 심포지엄의 모습. ⓒ 연천군


2012년 중앙정부 주도로 진행되던 DMZ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이 주민들의 반대로 유보되었다. 연천군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주민교육사업을 진행했고, 주민들은 자연자원을 이용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 개의 커뮤니티 비즈니스 기반 주민공동체를 만들었고 그중 두 곳은 창업에 성공하여 사업을 하고 있다. 연천군의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은 주민들의 참여와 지자체의 노력 덕분이다. 이로 인해 국제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 생태 구역을 지정할 때 유네스코 인터내셔널, 유엔 이런 국제기구에서 우리(한국)한테 압력을 넣는다고 착각을 하고 그걸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예요. 환경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정치가들은 개발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각종 이익집단들의 정치 환경에 둘러싸여 있어요. 모든 결정은 각 국가의 이익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계산된 정책들이라는 것이죠. 여러 나라들이 자기 이익을 반영하려고 해서 국제기구 회의 선언문을 보면 진짜 볼품없어요. 국제기구가 어떤 압력을 행사한다는 건 잘못된 인식이에요. 지역 환경정책에 관해서는 지역 정부(지자체)의 책임과 힘이 가장 커요."

나일 무어스 박사는 영국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학교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했는데 어느 시점에서 본인이 교사로서 인종차별 문제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어떻게든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밖으로 나가서 자신을 돌아봐야 그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 갈지 결정하게 된 것은 넓적부리 도요새 때문이었다.

'왜 그 새는 부리가 뾰족하지 않고 저렇게 생겼을까? 왜 그런 부리를 가지고 태어났을까? 왜 동아시아에 서식하는 그 새가 일본에만 있는 걸까?' 그런 질문을 가지고 일본으로 향했다. 1990년대 일본 후쿠오카의 어느 지역에서 넓적부리 도요새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마을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지역은 멸종 위기종 넓적부리 도요새를 위해 습지 복원운동을 풀뿌리 운동으로 벌이고 있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일본에서 8년 동안 생활했다.

'아무도 관심없는 새만금'

나일 무어스 박사는 동아시아 철새와 습지 보호 운동가다. 한국 습지연대에서 나일 무어스 박사에게 한국에 와줄 것을 요청했을 때, 그는 일본에서 환경설계 공부를 마친 상태였고 습지에 대해서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일본에서 80헥타르의 작은 지역조차 습지를 조성하기 위해서 10만 명이 서명운동을 하고 있을 때, 4만 헥타르라는 어마어마한 넓이의 새만금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는 1998년 한국으로 이주했다. 1999년 3월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람사르 회의에서 한국, 북한, 일본 전문가들의 요청으로 설명을 하다가 '엄청난 인종차별을 못 견디고 이해할 수 없어서 남의 나라에 왔는데 내가 이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내가 속한 영국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폭력에 대해서 내 활동으로 회복할 수 있겠구나'라는 어떤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갯벌은 지구의 생물다양성 보전과 멸종 위기 철새의 중요 기착지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2021년 7월 31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충남 서천 갯벌, 전북 고창 갯벌, 전남 신안 갯벌, 전남 보성-순천 갯벌이 등재되어 있다. 한국 정부가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 신청할 때 내세웠던 것이 도요새였다.

"도요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새만금 갯벌에 신공항이 들어서는데 국토부가 낸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도요새가 언급되지 않았어요. 원주민인 새에게 소음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가 이루어졌어야 되는데 아예 연구하지 않았고 언급조차도 없었어요. 제가 법정에서 이 이야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다 웃었어요."

존재의 이유

▲ 한국의 갯벌 현황을 지도로 표시함 ⓒ 해양환경정보포털


간척과 매립으로 면적이 줄어들면 갯벌에서 사라지는 것은 새뿐일까. 면적이 줄어들면 갯벌 생물들이 줄어들고 갯벌 생물을 잡아먹고 살던 조류도 사라진다. 새는 물론 이곳이 터전인 어민들의 삶이 파괴되고 홍수와 태풍의 피해도 커진다. 갯벌과 생물들의 터전 위에 쌓아 올린 인간 문명은 파괴가 불가피하다. 습지, 갯벌, 강, 호수, 새, 식물, 동물, 천연자원 등이 그 자리에 존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나일 무어스 박사에게 26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저는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있어요. 여기서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한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서 태어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한국을 사랑하지요. 전 세계의 이민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에 유용하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얻은 모든 경험들 덕분에요."

나일 무어스 박사가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여정을 짚어보다가 그의 사랑이 어디를 향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서두에 말했던 대기권 내 생물과 무생물을 포괄해 생명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인 생태공간성이다. 나일 무어스 박사가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특히 약한 존재에 대한 강한 연민이 아니었을까. 인종차별을 용인할 수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으리라 짐작한다.

나일 무어스 박사의 바람대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 지역인 연천이 개발주의가 압도하는 한국에서 생태공간성이 실현되는 소중한 선례가 될 것을 기대한다. 자신의 터전에 의존해 삶을 일구어 온 생명이 그 터전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존재 자체의 존엄과 생명가치의 존중을 실현하고 있는 나일 무어스 박사의 사랑에 우리도 이제 화답해야 할 때다.

"예를 들어서 조류독감이나 이런 게 걔네가 이주하다가 우리한테 가지고 오는 게 절대 아닙니다. 우리의 농업과 우리의 삶이 동물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반성해야 해요. 우리가 미친 영향의 결과물이니까요. 인터넷 같은 데 보면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왜 우리가 환경을 돌봐야 하죠? 왜 우리가 환경을 신경 써야 되죠? 근데 사실 우리가 환경이거든요."

○ 변정윤 : 작은책 편집위원 /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밀양을 살다>, <기록되지 않은 노동>,<숨을참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등을 함께 썼다.
○ 유이지운 : 시러큐스대학교 교수 / 통역을 맡아 나일 무어스 박사와 원활하게 소통하는데 큰 도움을 주셨다.
덧붙이는 글 기획 공동진행 :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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