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산책, 가능하면 많이 할수록 좋은 걸까요
[개를 위한 개에 대한 이야기] 내 반려견에게 맞는 산책을 해야하는 이유
10년 차 반려견 훈련사로서 가장 큰 깨달음은 훈련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기자말]
해의 길이가 짧아지고, 아침과 저녁의 바람이 선선해져 산책하기 좋아진 요즘. 날이 뜨거워 나서길 망설이던 불과 한 달 전과는 달리, 내 반려견과 망설임 없이 산책할 수 있는 시기가 돌아온 것이다.
▲ 늦여름 반려견과 산책9월 휴가 때, 훈련사 지인과 함께한 자연에서의 산책 ⓒ 최민혁
반려견 출장 교육을 해오면서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실내에서 크게 짖음' 문제 의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반려견들과의 이 '산책 고민'이 짖음 문제를 제치고 항상 1~2위를 다툴 정도다. 이는 그만큼 많은 보호자들이 반려견과의 산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산책을 자주 나간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시대가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0년 즈음만 해도 평생 산책을 안 해본 개들도 많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약 10년 전 쯤부터 반려견 산책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산책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산책을 너무 많이 하는 게 권장되지 않을 때가 있다. 종종 반려견 출장 교육을 가 솔루션으로 "산책을 조금 줄여주세요" 라고 하는 가정이 있을 정도다.
사나워서 짖은 게 아니라, 아파서 예민했을 수도
올해 초 만난 한 닥스훈트 초코네가 그랬다. 산책 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초코였지만, 언제부턴가 보호자에겐 큰 고민이 생겼다. 다른 개들이 다가오는 것을 피하더니 이제는 아예 공격까지 하기 시작했다는 것. 처음엔 활발하게 다가오는 개들에게만 그랬던 초코는 이제는 어떤 종류든 상대 개만 보면, 마치 다가오지 말라는 듯 크게 짖어대는 개가 됐단다.
가정에 방문해 초코의 행동을 보니, 과하고 긴장된 상태의 모습, 그래서 보호자가 목줄을 과격히 당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불편해 보이는 초코의 다리였다. 보호자님께서는 산, 산책로, 시내 할 것 없이 하루에 무조건 3번, 총 2시간 이상씩 산책을 시켰다고 하셨다. '산책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 시작한 일이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초코에게 산책이 과해 보였다.
나는 우선 초코의 신체 정밀 진단을 추천드렸다. 초코의 행동은 행동 문제도 있지만, 산책이 과해서 다리가 불편해진 후, 자기 방어적 행동이 강화된 형태로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코는 슬개골 탈구, 경증 허리 디스크, 인대 근육 상태 모두 좋지 않은 상태로 진단을 받았고, 결국 산책을 줄여야 했다.
결과적으로 초코네는 산책은 하루에 한 번, 20분 내외로 줄였다. 대신 실내에서 교육을 통해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자신감을 키워주는 교육을 했다.
▲ 올해 초에 만난 한 닥스훈트 초코네가 그랬다. 내가 보기엔 초코에게 산책이 과해 보였다.(자료사진) ⓒ lierra on Unsplash
사람도 그렇듯 개들도 뇌를 많이 쓰면 에너지 소모가 된다. 건강 관리를 기초로 하면서, 보호자님이 자연스레 리드하고, 다른 개를 보면 보호자님께 시선을 돌려 환기시키고 긍정적인 기억을 심어주는 교육을 천천히 병행했다.
그렇게 3달이 지나자 초코는 정말 확연하게 다른 개에 대한 짖음 반응이 줄어들었다. 몸도 나아졌을 뿐 아니라, 다른 개가 오면 보호자가 막아서 줄 것이란 신뢰와 안도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과거와 달라진, 오래 걷지 못하는 개들
동물의 근육에는 지구력을 담당하는 지근(遲筋)과 인 폭발적 힘을 담당하는 속근(速筋)이 있다. 예를 들어,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스피드로 쫓아가서 사냥하는 치타와 호랑이 같은 고양이과 동물들은 속근이 발달되어있고, 무리 협동과 끈질긴 추격으로 사냥에 성공하는 늑대나 리카온 같은 개과 동물은 지근이 발달되어있다. 개과 동물은 원래 오래 잘 걷는 동물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개가 과거와 달라진 부분도 많다. 대다수 견종이 그렇지만, 특히 한국에 많은 소형견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선택적 번식을 통해 혈통 고정을 시킨 개들이다. 10~20km까지도 추격해 자기 몸집의 두 배 이상 큰 야생 들소를 이빨로 넘어뜨리던 늑대과의 개, 그런 개가 지금처럼 '내 품에 쏙' 들어오기까지는 아마 자연의 섭리를 많이 거슬렀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개들은 유전병을 가지게 됐고, 대표적인 게 소형견들 다수가 겪는 슬개골 탈구다. 무릎 관절 앞쪽 삼각형 뼈인 슬개골. 슬개골을 지탱하는 인대 힘이 약하면, 무릎이 충격을 받았을 때 슬개골이 홈에서 빠져나간다. 이를 '슬개골 탈구'라 하는데 염증과 통증이 수반되는 질병이다. 걸을 때 한쪽 발을 깨금발로 걷거나, 오래 걷지 못하고 안아 달라고 하는 개들이 많은 이유기도 하다.
소형견뿐일까. 대형견들 또한 유전적 질병이 생겼고, 골반을 연결하는 고관절이 잘못 형성된 '고관절 이형성증'이란 유전 질병을 자주 보게 된다. 이런 유전 질환은 특정 견종에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유행에 따라 오로지 외모만 보고 공장처럼 번식한 개들이 많았던 것이 한국의 현실이고, 그곳에서 건강한 강아지가 태어나기란 어렵다.
뿐만 아니다. 요즘은 반려견 미끄럼 방지 매트도 많고 하지만, 일단은 한국의 실내 주거지의 바닥은 대부분 미끄러운 바닥이기 때문에 개들이 지속적으로 관절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실제로 2023년 발표된 메리츠 화재의 반려견 보험 지급액 조사에 따르면, 보험금 지급액 1위는 슬개골 탈구였단다. 그만큼 많은 개가 겪는 질병이란 뜻이다.
▲ 초가을, 반려견과 산책작년 가을 일본에서, 일본 반려견 교육 클럽에 훈련사 친구와 그 반려견의 산책 모습 ⓒ 최민혁
산책 시 다른 개나 사람들에 심하게 흥분하는 개들도 마찬가지다. 과하지 않게 산책하는 게 좋다. 물론 교육을 통해 행동교정을 해야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개들을 일반 개들처럼 외부 상황에 오래 노출하는 것이 결코 좋은 해법은 아니다. 이런 개들은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개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이 한번 강하게 작동한다. 문제는 이 코르티솔이 개의 몸에 남는데 약 72시간, 3일 정도가 지나야만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산책 시 어려움을 겪는 개들은 되려 스트레스 호르몬을 쌓아오는 시간이 되고, 코르티솔이 누적되면 신체에도 무리를 준다. 조금씩 점진적으로 늘려가야 하는 게 맞다.
개와 살면서 산책의 중요성은 두 말하면 입이 아프다. 과거에 비해 산책을 많이 해주는 보호자가 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무조건 어떤 경우에도 산책을 많이 하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과하지 않게, 내 반려견에게 맞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왕 산책하는 것을 내 반려견에 맞게 한다면,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반려동물과의 즐거운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