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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떠나 미 장교 되기까지... "미군 안에서 다양한 기회"

[인터뷰] 웨스트포인트 졸업한 김채린 소위

등록|2024.09.10 10:40 수정|2024.09.14 11:21
김채린 소위(26)는 지난 5월 미 육군사관학교(아래 웨스트 포인트)를 졸업하고 현재 미주리주에 있는 장교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오는 11월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82공수 사단 정보장교로 근무할 예정이다.

김 소위는 한국에서 압구정초, 신구중, 양재고를 졸업했다. 초중고교를 서울 강남, 서초구에서 다니다 보니 입시 스트레스를 심하게 겪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한다. 외국 초중고교를 다닌 학생이 미 웨스트 포인트에 입학한 것은 김 소위가 처음이다.

김채린 생도웨스트 포인트 정장을 입은 생도 시절의 김채린씨. ⓒ 김채린


김 소위는 유학생 신분이었던 아버지와 재미동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생후 7주 만에 한국에 와서 줄곧 한국에서 성장했다. 미군 출신 목사의 조언을 듣고 고교를 졸업하고 미군에 입대했다. 희망은 군병원 근무를 거쳐 군의관으로 가는 코스였는데, 미군 모병관은 한국어와 영어에 모두 능통한 김씨에게 육군 정보부의 정보분석요원에 응시하라고 제안했다. 한국과 미국 국적을 함께 갖고 있다가 2017년 미군에 입대해 평택기지 정보분석 요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주변 사람들이 "기왕 군 생활을 시작한 김에 웨스트 포인트를 가라"고 권유했다. 웨스트포인트는 입학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김씨가 미국 학제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웨스트 포인트는 다른 응시생에 비해 높은 미국 수능(SAT) 성적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남자 생도들과김 생도의 머리가 남자 생도들의 어깨 밑으로 내려와 있다. ⓒ 김채린


웨스트 포인트의 커리큘럼은 지도자 양성 코스 같다. 취득 학점과 학습 분량도 너무 많다. 보통 오전 5시경 기상해서 첫 수업은 7시 반에 시작한다. 학기 중에는 공부와 의무적인 체육 활동을 하고 군사훈련은 여름방학 기간에 진행한다. 1학년 때는 집에 가는 외박이 두 번 허용된다. 꿈 같은 외박은 2학년 때 4번, 4학년 때 5번 식으로 찔끔찔끔 늘어난다. 웨스트 포인트는 학교 규율이 엄격하기로 이름이 나 있다.

"학교 슬로건은 Duty(임무), Honor(명예), Country(국가)입니다. '국가를 위해 명예롭게 임무 완수하자'는 뜻이라고 할까요. 1학년 때는 생활관에서 4학년 선배들 시중을 들어줘야 합니다. 수업 시간 외 학교생활에서 발언하려면 4학년 선배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1학년 때는 리더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Followership을 배우는 기간이라고 할까요. 커닝하면 정도에 따라 6개월에서 1년까지 유급을 당합니다. 커닝을 발견한 학생도 반드시 보고를 해야 하구요.

생활수칙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속이지 않는다, 훔치지 않는다 입니다. 불시에 소변 검사도 받습니다. 마약을 하면 무조건 퇴교입니다. 규율을 어기면 주말에 학교 주차장에서 제복을 입고 무거운 박물관용 총을 들고 80~100시간 걸어야 합니다. 한 주에 못 채우면 주말에 과제도 못 하고 몇 주씩 주말 주차장 트래킹을 계속하지요. 시간을 빼앗는 고통스런 처벌입니다. 아무튼 함께 입학한 동기생 1200중 300명가량이 유급 또는 탈락하고 같이 졸업한 학생이 900명 정도입니다."

- 정보병과인데, 정보 전쟁은 어떤 전쟁을 말합니까.
"현대전은 Multi-Domain War(다중 영역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눈에 보이는 전쟁 뒤에서 눈에 안 보이는 정보전쟁을 합니다. 탱크와 보병이 돌진하는 전쟁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 도청, 위성정보 수집 등으로 정보를 빼내 드론으로 공격하고 미사일로 때리는 전쟁이지요. 정보 조작도 하구요. 정보 전쟁을 잘하는 국가가 전쟁에서 살아남습니다. 정보전쟁은 미군이 지상전보다 더 잘하는 우월적인 도구입니다."

- 파키스탄에서 미국이 탈레반 지도자에 대한 위치 정보를 수집해 지프를 타고 가는 탈레반을 드론으로 때려 사살한 적이 있는데요? 이런 것도 정보전쟁인가요.
"그렇죠. 온갖 정보 수단을 동원해서 탈레반 지도자의 위치와 이동 경로를 알아냈던 거지요."

- 한미동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군의 기본 입장은 중국과 소련이 동맹국을 위협하는 적국이라는 겁니다. 더 이상 숨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한국은 지리적 요충지입니다. 미국도 자기 이익을 위해 한국을 지켜주는 겁니다. 동맹은 일방적 시혜가 아닙니다."

한국은 미군들에게 인기 있는 근무지가 되었다고 한다. 3~4개월짜리 로테이션 근무까지 포함하면 장성부터 일등병까지 70~80%가 한국 근무 경험자다.

웨스트포인트 졸업식미 육사 졸업식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 김채린


"미군들이 한국에 자리가 안 나와서 못 가는 형편입니다. 한류의 영향도 크지요. 지금 나와 방을 같이 쓰는 룸메이트가 나보다 더 김치를 좋아해요. 낙지 탕탕이처럼 처음 보는 음식도 잘 먹습니다. 한국 화장품도 인기입니다."

신장은 158cm. 사관학교의 신장 하한선은 145cm로 사병과 똑같다. 아마 키 작은 생도를 안 받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고 보는 모양이다. 미군은 2~3년에 한 번 근무지를 옮긴다. 한곳에서 연장 근무도 가능하다. 미군이 민간인과 결혼할 경우에는 배우자 직업도 찾아주고 미군 PX나 음식점에도 취직시켜 준다. 배우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결혼을 해 배우자가 생기면 호봉이 올라간다. 결혼 계획을 묻자 "대학원도 가야 하고… 서른이나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먹고 살기 바빠 결혼을 짐이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부모 도움 없이 커리어를 시작하려면 정말 바쁜 거지요."

- 여군이 장군이 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 입니까.
"무척 어렵지요. 한국계 남자 장군은 있는데, 한국계 여성 장군은 아직 없어요. 무관이 되어 군사 외교관이 돼보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미군 안에 있으면 다양한 기회가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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