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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 부모님도 약 부작용? 한국 노인들이 위험하다

[그 약이 알고 싶다] 의약품 부작용 예방은 최선의 피해구제 방안

등록|2024.09.13 07:00 수정|2024.09.13 10:58

▲ 의약품 부작용 [정연주 제작] ⓒ 연합뉴스


1950~1960년대 일본에서 장 질환 치료 환자에게 발바닥부터 위쪽으로 저리는 증상 및 통증과 반신 마비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 증상을 스몬(SMON)이라 명명했다. 당시 스몬의 원인은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고, 피해자는 날로 늘어났다.

한참 지나 1969년이 되어서야 스몬조사연구협의회는 스몬의 원인이 키노포름이라는 정장제의 부작용 때문이라고 밝혔다. 키노포름은 이듬해인 1970년 판매 중지되었다. 의약품 부작용이 스몬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수천 명의 피해자들은 각지에서 집단소송을 제기했으나 많은 절차와 시간이 필요했고, 1978년에 첫 번째 손해배상 판결이 나올 수 있었다.

※ 약물 부작용과 약물이상반응 : 우리가 흔하게 부르는 의약품 부작용은 본래 정상적인 용량에 따라 복용한 약물에 의도하지 않은 작용 전부를 뜻한다. 약물이 목표한 효능(반응)과 다른 작용에는 해로운 작용도 있지만, 불편하지 않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좋은 작용도 있다.

예를 들어 전립선비대증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피나스테리드를 복용한 탈모증 환자의 탈모가 개선되는 반응이 나타난다면 이 또한 약물 부작용이다. 그리고 약물의 의도치 않은 반응 중에 환자에게 해로운 작용을 나타내는 경우로 한정한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약물이상반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게 약물의 해로운 반응을 약물 부작용으로 부른다. 이 글에서도 약물이상반응 대신 약물 부작용으로 대체하여 사용하였다.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가 필요한 이유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사용되는 의약품은 생명을 살리는 역할도 하지만 생명에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의약품으로 인한 부작용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 단계에서 그리고 허가된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의약품을 감시하고 퇴출하기 위한 제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질병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임에도 중대한 부작용 피해가 발생한 경우를 대비하여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도 중요하다. 이런 경우 의약품 제조자인 제약사가 제조물책임 원칙에 따라 의약품 구매자의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제약기업들이 출자한 재원을 통해 의약품 부작용 피해를 겪는 환자의 지원사업을 운영한다.

이를 의약품 피해구제제도라고 하며, 의약품 부작용으로 사망이나 장애와 같은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이 제도를 통해 국가가 보상금이나 진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기존에는 이러한 피해보상금을 받기 위해 피해자들이 제약사와 직접 개별 소송을 통해 부작용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등 장기간 복잡한 소송절차를 거쳐야만 했지만, 지금은 의약품 규제기관의 인과관계 평가를 거쳐 신속하게 보상가능하다.

아직 보완해야 할 피해구제제도

의약품부작용피해구제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지난 9월 3일 서울 잠실 엘타워에서 열린 의약품부작용피해구제 10주년 기념 심포지엄 ⓒ 이동근


하지만 한국의 피해구제제도는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유럽은 이미 1970년대, 일본은 1980년, 대만은 1999년부터 피해구제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한국은 2014년부터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운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보완하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 많다. 첫 번째로 피해구제 보상금이 일시보상금에 불과하여 직접 피해를 구제하기에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의약품을 복용한 환자는 관련 부작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경우, 사망에 이르지 않더라도 평생 신체적 장애를 얻고 생업을 잃게 된다. 심지어 가족들은 피해 환자에게 돌봄을 제공하느라 경제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을 겪어야만 한다.

하지만 피해 환자 가족들이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1억 원 규모의 일시보상금이 전부다. 만약 피해자가 가족을 부양하는 역할을 했었다면 진료비 외에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따로 가입한 민간보험사의 상해보상금을 수령하면, 구제제도를 통한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다. 의약품 부작용이라는 불의의 피해로 생업마저 잃게 된 환자에게 이와 같은 보상은 충분하지 못하다.

두 번째는 제도에 대한 대국민 인식 부족이다. 식약처가 실시한 '2019년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제도 대국민 인지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대상의 87.5%는 제도를 아예 모른다고 답변했으며, 제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답변한 국민은 6.4%에 불과했다. 특히 60대 이상은 93.5%가 제도를 아예 모른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짜 문제는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약사와 의사들도 관련 제도에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국 제도의 활용 수준은 매우 낮다. 2022년 식약처에 보고된 연간 의약품 이상사례는 30만 건 수준이며, 중대한 약물 이상 반응 보고도 2000여 건에 달했다. 하지만 부작용피해구제제도를 통해 구제를 신청하는 사례는 단 200여 건에 불과했다. 낮은 인지도로 인해 사람들은 피해구제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르며, 많은 경우 의약품 부작용에 대한 피해를 개인의 탓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를 이용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이러한 홍보 부족은 매년 국정감사의 단골 지적사항이다. 하지만 관련 문제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올해 의약품 피해구제제도 활성화 홍보를 위해 배정된 예산은 8200만 원에 불과하다. 매달 7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예산 규모이다. 작년도 그랬고, 재작년도 그랬다. 적은 규모의 홍보예산으로 결국 카드뉴스를 만들어 SNS에 홍보하거나 리플릿을 제작하여 의료기관에 배포하는 것 이상의 홍보활동을 하기 어렵다. 최근 의대정원 정책의 홍보를 위해 예비비 90억 원을 배정한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피해구제제도 홍보예산 배정에 인색한 것은 분명하다.

부작용 예방이 최선의 피해구제제도

▲ 의약품 부작용 예방이 우선이다. ⓒ pexels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의약품 부작용에 관련된 정보는 과거에 비해 많이 구체화되었으며 많은 경우 약물처방에 따른 위험을 대비할 수 있다. 항생제의 경우 피부자극 검사 등을 통해 예방할 수 있으며 일부 약물은 사전에 유전자검사를 통해 예방가능하다.

발생가능성이 높은 부작용에 대해서는 미리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가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복약 지도'를 해야 한다. 약물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약물을 증량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임상현장에서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은 너무 더디다.

이러한 노력은 의료인과 약사, 환자가 함께 이뤄 나가야 한다. 환자 중심 치료가 이뤄지기 위해 의사나 약사는 환자에게 최대한 진단과 처방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며, 환자는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최선의 진료탐색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부작용 문제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정부 차원의 부작용 예방 목적으로 지원사업 마련도 중요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통해 처방·조제 과정에서 환자가 복용해선 안 되는 금기약물 등을 미리 알려주는 서비스나 통풍치료제인 알로퓨린올과 같이 처방 전에 부작용 발생 위험이 높은 사람을 걸러낼 수 있는 유전자 검사의 급여화는 부작용 예방을 위한 중요한 사업들이다.

더불어 여러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환자의 약물 상호작용으로 인한 부작용 피해를 미리 점검하고 약물검토를 해주는 다제약물관리사업도 중요한 부작용 예방사업이다. 하지만 이는 8년째 시범사업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법적 기반 마련 및 병의원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의약품 부작용 피해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의약품을 먹는 국가 중 하나다. 5개 이상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고 있는 고령 환자 비율이 70.2%로 OECD 국가 중 1위다. 10개 이상 약물을 복용하는 고령 환자도 10%가 넘는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약물을 한꺼번에 복용하게 되면 약물 부작용 및 여러 약물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건강 피해들이 발생할 우려가 높아진다. 한국은 관련 연구가 적지만 해외 연구에 따르면, 급성기 질환으로 입원한 사례의 5~12%가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은 관련 피해가 의약품 부작용이라는 사실조차 잘 모르며, 알더라도 적절한 피해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환자 권익보호를 위해서, 의약품의 안전성을 검증하고 관련 부작용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인과관계를 규명하여 환자에게 적절한 피해구제를 달성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또한 별다른 복약설명 없이 약을 건네거나 자세하게 문진도 하지 않은 채 처방을 남발하는 약사나 의사의 관행의 변화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의약품 부작용 발생은 단순히 환자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정부와 의사, 약사 모두 환자의 목소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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