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하나 믿고 축구에 발을 들였습니다
'엄마 볼 시간 없다'는 아이들 투정에도 합니다... 저는 달리는 사람이니까요
풋살화를 샀다. 발에 맞나 신어보는데 8세 막내가 묻는다. "왜 맨날 엄마 신발만 사?" 그러고 보니 최근 4개월간 러닝화 세 켤레에 풋살화까지 네 켤레나 샀다. 나로서도 이런 적은 처음이지만 변명처럼 답한다.
"축구를 하려니 축구화가 필요해서."
"뭐어?? 엄마 축구해??!!"
지난 주말 7일, 동네 여자축구팀의 훈련에 다녀왔다. 아무래도, 비현실적인 일이다. 그러니까 내게 축구란 양궁 같은 것으로서, 국가대항전(주로 월드컵), 그마저도 16강전 이상쯤은 되어야 보는 스포츠다.
K리그도 프리미어리그도 안 보고, <골 때리는 그녀들>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아무튼, 술>을 읽고 김혼비 작가에게 홀딱 반해서, 그가 쓴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도 어쩐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첫 저서라 혼이 담겨 있을 텐데.
일이 어떻게 시작된 건지 돌아보자. 어쩌다 노해원 작가의 <시골, 여자, 축구>를 손에 들게 됐고, 시골에서 여자들이 축구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정확히는 '아줌마들'이 '운동'을 하는 이야기에 감명받은 것이었다.
그 무렵 본 '하말넘많'의 영상에서, 강민지님이 말의 내용을 체현하듯 축구에 대한 사랑을 미친 사람처럼 외쳤을 때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게, 우리나라에서 30대 이상 일반인 여자가 축구를 몇 년씩 한다는 건 웬만큼 사랑하지 않고서는 안 될 일 같은데.
축구나 야구, 농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종종 봤다. 하지만 팬으로서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중에, (혹은 그 외에라도) 직접 하고 싶어하는 여자가 있다 해도(왜 없겠는가?), 장소나 여건은 둘째 치고 팀스포츠이기 때문에 일단 사람이 모여야 하고, 또 그만큼의 여자들이 겨룰 상대팀으로 있어야 제대로('축구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굴러간다.
물론 혼자서 달리기나 요가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헬스장에서 PT를 받거나 학원에 등록해서 무엇이든 꾸준히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모든 조건들을 기어이 갖추고 여자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고?(생각보다 많이 하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동해서, <시골, 여자, 축구>의 주인공 여자축구팀이 창단될 때 필독서라고 꼽은 책이자,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여자 축구에 관한 책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천의 말에서 정세랑 작가가 썼듯이, 나 역시 '책을 읽으며 네 번쯤 크게 웃었고 세 번쯤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수를 채우기도 전에 마을카페에 '여자축구'를 검색해서 오래된 글 하나를 찾았다.
내가 달리기를 할 때 늘 지나가는 코스에 야외 체육시설이 있는데(나는 그때까지 입구 표지판만 보았고, 실제 입구는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거기서 연습한다고 했다. 일단 가보기로 하면서, 준비물은 풋살화뿐이라는 말에 풋살화를 고르면서 마음이 널뛰었다. 설레기도 하고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고 꿈을 깨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 축구한대!!!"
셋째가 동네방네(그래봤자 우리집의 이 방 저 방) 소리쳐서 첫째와 둘째도 와서 구경했다. 화장대 근처에서 나름 몰래 신어보고 있었는데... 일단 한 번 가보려는 것일 뿐인데... 뭔가 일이 커지는 것 같아 등골이 서늘...이라기보다, 등 떠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들 앞에서 축구경기를 뛰어봐? 여자인 너희들도 축구할 수 있다고 먼저 보여줘 봐? 하지만 아이의 결론은 엉뚱한 것이었다. "아~ 엄마. 축구 꼭 해야 돼? 달리기도 하고 요가도 하고 축구까지 하면 어떡해? 엄마를 볼 시간이 없어지잖아." 이런 눈물나는 멘트에 미처 눈물이 생성되기도 전에 막내가 한 마디 덧붙인다. "그럼 달리기는 쉬는 게 어때?"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내가 이 말도 안 되는 모험에 발을 들이민 건 '나는 달리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때문인 걸. 정말이지 그거 하나 믿고 뛰어들었단 말이다.
어느 날에 나도 '미숙 언니'처럼 축구를, 혹은 다른 무언가를 그동안 기다려 왔다고 할지 모르겠다. 삶을 되돌아보면서, 내게 있던 사건들을 주욱 엮어보면서 달리기가 아주 쓸 만한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하지만 그건 그때의 일, 알 수 없고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고, 지금은 더욱 탄탄히 달리기를 해나가야지. 그렇지 않니, 딸아?
"축구를 하려니 축구화가 필요해서."
"뭐어?? 엄마 축구해??!!"
오랜 세월 '인간은 안 모일수록 좋다.'라고 내심 생각해오던 '초개인주의자'가 축구에 푹 빠지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입단 첫날 얼굴에 긴장이 역력했을 나에게 그녀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호언장담했던 "첫 반년을 넘긴 사람들은 평생 축구 못 그만둬요. 이거, 기절해요."라는 말 그대로 축구가 갖고 있는 매력도 어마어마했지만, 축구공과 축구하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보낸 시간들은 축구를 통해 세상의 어떤 틈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ㅡ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267쪽
"축구가 최곱니다. 난 축구에 적당히 미쳐있는 여자를 본 적이 없어요. 대단히 미-췬 여자들만 있어요."
ㅡ유튜브 '하말넘많'의 강민지, <ENFP는 절대 하면 안 되는 운동>
지난 주말 7일, 동네 여자축구팀의 훈련에 다녀왔다. 아무래도, 비현실적인 일이다. 그러니까 내게 축구란 양궁 같은 것으로서, 국가대항전(주로 월드컵), 그마저도 16강전 이상쯤은 되어야 보는 스포츠다.
K리그도 프리미어리그도 안 보고, <골 때리는 그녀들>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아무튼, 술>을 읽고 김혼비 작가에게 홀딱 반해서, 그가 쓴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도 어쩐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첫 저서라 혼이 담겨 있을 텐데.
일이 어떻게 시작된 건지 돌아보자. 어쩌다 노해원 작가의 <시골, 여자, 축구>를 손에 들게 됐고, 시골에서 여자들이 축구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정확히는 '아줌마들'이 '운동'을 하는 이야기에 감명받은 것이었다.
그 무렵 본 '하말넘많'의 영상에서, 강민지님이 말의 내용을 체현하듯 축구에 대한 사랑을 미친 사람처럼 외쳤을 때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게, 우리나라에서 30대 이상 일반인 여자가 축구를 몇 년씩 한다는 건 웬만큼 사랑하지 않고서는 안 될 일 같은데.
축구나 야구, 농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종종 봤다. 하지만 팬으로서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중에, (혹은 그 외에라도) 직접 하고 싶어하는 여자가 있다 해도(왜 없겠는가?), 장소나 여건은 둘째 치고 팀스포츠이기 때문에 일단 사람이 모여야 하고, 또 그만큼의 여자들이 겨룰 상대팀으로 있어야 제대로('축구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굴러간다.
물론 혼자서 달리기나 요가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헬스장에서 PT를 받거나 학원에 등록해서 무엇이든 꾸준히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모든 조건들을 기어이 갖추고 여자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고?(생각보다 많이 하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동해서, <시골, 여자, 축구>의 주인공 여자축구팀이 창단될 때 필독서라고 꼽은 책이자,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여자 축구에 관한 책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천의 말에서 정세랑 작가가 썼듯이, 나 역시 '책을 읽으며 네 번쯤 크게 웃었고 세 번쯤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수를 채우기도 전에 마을카페에 '여자축구'를 검색해서 오래된 글 하나를 찾았다.
내가 달리기를 할 때 늘 지나가는 코스에 야외 체육시설이 있는데(나는 그때까지 입구 표지판만 보았고, 실제 입구는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거기서 연습한다고 했다. 일단 가보기로 하면서, 준비물은 풋살화뿐이라는 말에 풋살화를 고르면서 마음이 널뛰었다. 설레기도 하고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고 꿈을 깨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 "축구는 처음이세요?" "네!" "완전 처음?" "네!!" ⓒ 정유진
"엄마 축구한대!!!"
셋째가 동네방네(그래봤자 우리집의 이 방 저 방) 소리쳐서 첫째와 둘째도 와서 구경했다. 화장대 근처에서 나름 몰래 신어보고 있었는데... 일단 한 번 가보려는 것일 뿐인데... 뭔가 일이 커지는 것 같아 등골이 서늘...이라기보다, 등 떠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들 앞에서 축구경기를 뛰어봐? 여자인 너희들도 축구할 수 있다고 먼저 보여줘 봐? 하지만 아이의 결론은 엉뚱한 것이었다. "아~ 엄마. 축구 꼭 해야 돼? 달리기도 하고 요가도 하고 축구까지 하면 어떡해? 엄마를 볼 시간이 없어지잖아." 이런 눈물나는 멘트에 미처 눈물이 생성되기도 전에 막내가 한 마디 덧붙인다. "그럼 달리기는 쉬는 게 어때?"
아니, 그럴 수는 없지. 내가 이 말도 안 되는 모험에 발을 들이민 건 '나는 달리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때문인 걸. 정말이지 그거 하나 믿고 뛰어들었단 말이다.
"나 전부터 남자들이 너무 부러웠거든! 남편도 조기 축구를 그렇게 재밌게 다니고 아들은 뭐 클럽 축구? 요즘은 조기 축구보다 더 세련돼 보이는 그런 게 또 있대? 아무튼 그걸 재밌게 다니고. 나도 어렸을 때 편 갈라서 공으로 하는 운동 너무 좋아했단 말이야. 잘하기도 했다? 근데 여자들은 졸업하고 나면 그런 걸 할 기회가 전혀 없잖아. 그냥 집 근처에서 배드민턴 치고 헬스 가고 그러는 게 다지. 아니, 근데 나 같은 여자들도 축구를 하고 있다잖아?! 완전 놀라 버렸어! 내가 정말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좁은 세상에서 일만 하고 있었구나 싶고, 막 두근두근하더라고. 좀 말도 안 되고 웃기는 소린데, 그래 내가 이걸 그동안 그렇게 기다려 온 거였구나 싶었어."
ㅡ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235-236쪽
어느 날에 나도 '미숙 언니'처럼 축구를, 혹은 다른 무언가를 그동안 기다려 왔다고 할지 모르겠다. 삶을 되돌아보면서, 내게 있던 사건들을 주욱 엮어보면서 달리기가 아주 쓸 만한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하지만 그건 그때의 일, 알 수 없고 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고, 지금은 더욱 탄탄히 달리기를 해나가야지. 그렇지 않니, 딸아?
▲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사회의 맛을 보고 조금은 휘청거렸다. 그럴 때 나를 다시 세워주는 달리기. ⓒ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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