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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수 322명에 그친 이 영화, 숨겨진 사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한국영화 <독전>의 원작영화 <마약전쟁>

등록|2024.09.11 11:40 수정|2024.09.11 11:40
지난 2006년 이해준 감독과 함께 만든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데뷔한 이해영 감독은 대한민국 영화대상과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10년에 개봉한 첫 단독 연출영화 <페스티벌>과 2015년에 개봉했던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이 각각 19만과 35만 관객에 그치면서 쓴맛을 경험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후 이해영 감독은 2018년에 개봉했던 4번째 장편 영화 <독전>을 통해 <페스티벌>과 <경성학교>의 아쉬움을 한 번에 날렸다. 조진웅과 류준열, 차승원, 고 김주혁 등이 열연을 펼쳤던 <독전>은 마약 조직을 추적해 온 형사가 말단 조직원과 함께 조직의 보스 '이선생'을 검거하는 일에 뛰어드는 범죄 스릴러 영화였다. 2018년 5월에 개봉한 <독전>은 5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독전>은 <친절한 금자씨>, <헤어질 결심> 등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정서경 작가와 이해영 감독이 함께 완성한 탄탄한 시나리오로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독전>은 2012년에 개봉한 홍콩 영화의 판권을 사와 각색한 리메이크 영화였다. 국내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독전>의 원작 영화는 바로 홍콩 금상장 시상식 감독상 3회에 빛나는 두기봉 감독이 연출한 <마약전쟁>이다.

마약 사건에 얽힌 이들의 죽음

▲ 고천락은 <마약전쟁>에서 마약을 의인화한 듯한 캐릭터 차이톈밍을 연기했다. ⓒ (주)미디어데이


중국 본토의 수사관 장레이(손홍뢰 분)는 홍콩에서 소규모 마약 제조실을 운영하는 마약조직 보스 차이톈밍(고천락 분)을 만나고 차이톈밍을 이용해 악명 높은 마약왕 리전뱌오(이진기 분)를 잡으려 한다. 차이톈밍과 작전을 짜고 마약 구매자로 위장해 마약 거래 현장에 투입되는 장레이는 그곳에서 여러 마약상을 만난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협력을 이어가던 경찰과 마약상은 결코 함께 갈 수 없는 사이였다.

경찰에 협력하는 듯했던 차이톈밍은 결정적인 순간에 마약 조직의 편으로 돌아서고 장레이는 이를 막기 위해 총격전 끝에 차이톈밍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다. 차이톈밍은 자신의 손목을 부러뜨려 수갑을 풀었지만 장레이는 차이톈밍의 발목에도 수갑을 채웠고 결국 차이톈밍은 경찰 특공대에 의해 체포된다. 장레이 역시 마약 조직과의 총격전 끝에 큰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숨이 다하고 말았다.

법정으로 이송된 차이톈밍은 마약제조 및 판매, 그리고 장레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죽인 죄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는다. 차이톈밍은 사형장에서 약물 주사용 침대에 묶이는 순간까지 필리핀과 미얀마 등에 퍼져 있는 거물 마약상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자신에 대한 선처를 요구한다. 사형 집행인들은 차이톈밍의 애원에도 약물주사용 바늘을 꽂은 후 덤덤하게 사형을 집행한다.

영화 <마약전쟁>에서는 차이톈밍을 비롯해 그와 얽혔던 대부분의 인물이 사망한다. 차이톈밍과 공조 수사를 했던 경찰 마약반은 사실상 전멸했고 차이톈밍의 거래처들이나 함께 일을 했던 동료들, 심지어 그의 아내와 가족들까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차이톈밍은 마약을 의인화한 듯한 캐릭터였는데 <마약전쟁>은 마약을 접한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한 결말에 다다르는지 경고하는 영화였던 셈이다.

<마약전쟁>의 공식 포스터에 쓰여 있는 한자를 자세히 보면 마약가루가 뿌려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국내 포스터에는 그 장면이 디테일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범죄 누아르 영화 특유의 매력에 마약의 위험을 강조하는 교훈(?)까지 담은 영화 <마약전쟁>은 국내에서 지난 2014년 2월 '발렌타인데이 시즌'에 개봉했다. 그리고 국내에서 단 322명의 관객에 그친 채 IPTV로 직행했다.

어린 아이를 돕다가 차에 치이는 소패

▲ 후앙 이가 연기했던 마약반의 여성형사 소패는 어린 아이들을 돕다가 차에 치어 순직한다. ⓒ (주)미디어데이


영화 <마약전쟁>은 소규모 마약조직의 두목 차이톈밍이 생존을 위해 경찰과 공조하는 내용의 영화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주인공 차이톈밍은 홍콩의 가수 겸 배우 고천락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배우로 먼저 데뷔했다가 2000년부터 가수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고천락은 세대교체가 더딘 홍콩 영화계에서 2000년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흔치 않은 배우로 꼽히고 있다.

지난 2000년 장이머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에서 장쯔이와 연기 호흡을 맞췄던 순홍레이는 <마약전쟁>에서 터프한 마약반 형사반장 장레이 역을 맡았다. 장레이는 마약반을 이끄는 간부임에도 언제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일을 처리한다. 평소 동료들 앞에서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장레이는 차이톈밍과 함께 마약 거래현장에 잠입하지만 결국 정체가 드러나고 마약 조직과의 총격전 끝에 사망한다.

<엽문3>에서 엽문의 아내로 출연했던 배우 후앙이는 <마약전쟁>에서 마약반의 여성 형사 소패를 연기했다. 리메이크작 <독전>에서 모델 출신 배우 강승현이 맡았던 김소연에 가까운 역할이다. 다만 김소연이 전투 캐릭터(?)였던 것에 비해 소패는 장레이와 파트너로 다니며 여러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영화 후반 총격 현장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피시키던 소패는 차이톈밍이 모는 차에 치여 순직한다.

홍콩 영화계의 대기만성 거장

▲ 홍콩에서 2012년에 개봉했던 <마약전쟁>은 국내에서 2014년2월에 개봉했다. ⓒ (주)미디어데이


국내 관객들은 1980~1990년대 홍콩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흔히 <영웅본색>, <첩혈쌍웅> 시리즈의 오우삼 감독이나 <황비홍>시리즈로 유명한 서극 감독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두기봉 감독은 오우삼 감독과 서극 감독이 전성기를 보내던 시절에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면서 커리어를 쌓아갔다. 이후 홍콩의 중국 반환 전후로 홍콩 영화인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면서 비로소 홍콩에서 확실히 자리잡았다.

두기봉 감독은 1980년 <벽수한산탈명금>을 통해 데뷔한 후 작년 옴니버스 영화 <칠중주:홍콩 이야기>까지 상당히 다작했다. 데뷔 초부터 꾸준히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다가 경지에 오른 '대기만성형 대가'로 꼽힌다. 홍콩영화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썩 높지 않지만 홍콩 영화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남은 '거장'으로 꼽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감독이다.

1999년에 개봉했던 <미션>은 황추생과 임달화 주연의 누아르 영화로 두기봉 감독은 <미션>을 통해 홍콩의 차세대 대표 감독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두기봉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중화권 최고의 영화제였던 홍콩 금상장과 대만 금마장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휩쓸었다. 특히 대만 금마장 시상식에서 두기봉 감독과 함께 후보에 올랐던 감독은 <와호장룡>의 이안 감독과 <화양연화>의 왕가위 감독이었다.

2005년과 2006년 두 편에 걸쳐 제작됐던 <흑사회> 시리즈 역시 두기봉 감독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임달화와 양가휘, 고천락 등이 주연을 맡은 범죄 누아르 영화<흑사회>는 1편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일부 관객들은 두기봉 감독의 대표작 <흑사회>를 <영웅본색>, <무간도>와 함께 '홍콩 누아르의 계보'를 잇는 걸작이라고 분류하기도 했다.

양조위, 양가휘와 함께 홍콩 영화계의 '3대 연기파배우'로 불리는 황추생의 열연이 돋보이는 <익사일>도 홍콩 영화 특유의 액션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러닝타임 대부분이 액션으로 채워져 있음에도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특히 영화 말미에 나오는 슬로 모션 총격전은 두기봉 감독의 액션에 대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명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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