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의 기적... 뒤늦게 터진 '빅토리' 인기 요인
[리뷰] 영화 <빅토리>
▲ 영화 <빅토리> 스틸컷 ⓒ 마인드마크
<에이리언: 로물루스>에 <비틀쥬스 비틀쥬스>까지. 쟁쟁한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극장가를 지배한 8월이었는데도 이혜리·박세완 주연의 <빅토리>는 꿋꿋하게 버텨왔다. 박스오피스 순위 10위권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천천히 사라지는 듯하더니 주연 배우들의 게릴라 무대인사, 그리고 알음알음 퍼져나간 입소문을 통해 개봉 후 27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박스오피스 5위에 안착해 꾸준히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진심 마케팅'이 얼마나 강한지와 상관없이, 한 영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력한 특장점이 필요하다. <빅토리>의 무엇이 그렇게 특별했기에 관객들을 다시 끌어모아 '역주행'에 성공하기까지 한 것일까? 영화의 내적 요소에서 그 원인을 간단하게 찾아보자.
거제상고의 불량아 '추필선(이혜리 분)'과 '장미나(박세완 분)'는 댄스 연습실을 가지겠다는 일념으로 서울에서 온 '김세현(조아람 분)'을 내세워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든다. 처음에는 치어리딩을 대의명분으로만 생각하던 미나와 필선도 점차 치어리딩과 협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학교 축구를 응원하기 전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 거제의 방방곡곡으로 향하며 응원을 시작한다.
'정면돌파' 와 '직면'
▲ 영화 <빅토리> 스틸컷 ⓒ 마인드마크
<빅토리>의 본질은 이러한 플롯 속에서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직면'에 있다. 주인공 필선과 미나는 자신들에게 찾아온 문제로부터 달아나지 않는다.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부원이 필요하면 온 복도를 춤추고 다녀서라도 사람을 모으고, 첫 무대를 망친 후에는 좌절할 틈도 없이 곧바로 연습에 들어간다. 이러한 고속도로식 전개는 관객이 한 요소를 비판하기도 전에 빠져들게 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관객은 그야말로 필선과 미나의 정면 돌파에 끌려가고 있는 셈이다.
물론 <빅토리>가 갈등 없이 무작정 행복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 필선은 싸움에 휘말려 학교를 박차고 나간 뒤 서울로 향하고, 필선의 아버지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윗선의 압력 사이에서 갈등하는 관리자로서 한계에 부닥치는 데다, 필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남학우들의 '로맨스 경쟁'도 갈등이라면 갈등이다.
<빅토리>는 이러한 갈등을 무시하지 않는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필선은 자신이 탄생시킨 치어리딩 동아리의 끝을 제대로 맺기 위해 아이돌이 될 기회도 마다하고 경남 거제로 내려오며, 필선의 아버지는 딸과의 진심 어린 대화 끝에 초심으로 돌아가 노조원들과 함께한다. 이러한 장면은 감동을 불러일으킬 만하고, 조금 더 길게 끌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 모르지만 <빅토리>는 이를 과감하게 끊어내고 다음 이야기로 계속 전진한다.
▲ 영화 <빅토리> 스틸컷 ⓒ 마인드마크
로맨스마저도 그렇다. 이 영화에서 필선을 둘러싼 남자들의 이야기는 사건의 기폭제가 되지도,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기만 한다. 약간의 개그 포인트로.
이것은 <빅토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개인에 대한 응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선은 친구들을 돕고, 아버지를 돕고,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들과도 직면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추필선 본인의 이야기를 장악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은 것이다. 추필선은 거제상고 학생이기 이전에, 아버지의 딸이기 이전에, 그리고 누군가의 '여자친구'이기 이전에 추필선 본인이고, <빅토리>는 이를 명확히 한다.
작중 인물들도 꾸준히 자기 자신으로서의 지위를 되찾는다. 동생만 여섯이고 집안의 가게 일을 돕는 미나는 '미나반점 딸' 대신 '짱미나'가 되고, 치어리딩을 가르쳐 준 세현은 '축구선수 김동현 동생'이 아닌 '김세현'이 된다. 숱한 조연들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을 이루는 요소에 정복당하는 대신 주체적인 삶의 개척자로서 재탄생한다.
<빅토리>의 정면돌파식 편집은 조금 급하게 느껴질지라도 관객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안 될 거 뭐 있냐고, 우리는 다른 것이기 이전에 우리인데 조금만 더 과감하게 나아가 보면 안 되겠냐고. <빅토리>의 쾌활한 전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응원인 셈이다.
<빅토리>의 손익분기점은 200만 관객 이상. 현재 누적 관객 수는 약 43만 명. 장기 상영을 통한 흥행을 노려본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빅토리>의 메시지는 관객들의 진심을 노리기에 충분하며 그 특유의 밝은 에너지는 새까만 화면 속에서 범죄자를 쫓는 대부분의 '흥행 한국 영화'에 더할나위 없는 개성을 가진다. 근처 남은 상영관을 통한 <빅토리> 관람으로 각자의 삶에 대한 응원을 받아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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