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 전자'도 깨질 위기... 미국 수상한데 한가한 윤 정부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삼성전자에 직격탄 될 GAA·HBM 규제 움직임
▲ 3나노 파운드리 팹에서 웨이퍼를 들고 있는 삼성전자 임직원 ⓒ 삼성전자
지난 2022년 6월,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게이트 올 어라운드 (GAA : Gate-All-Around)라는 차세대 트랜지스터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3나노 공정은 반도체 제조 공정 가운데 가장 앞선 기술이었으며, 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 공정 파운드리 서비스는 전 세계 파운드리 업체 중 삼성전자가 유일하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 최상이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3% 남짓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최신 기술인 GAA를 세계 최초로 파운드리 양산에 적용했다는 건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게 왜 대단한 일인지 대통령님의 이해를 돕기 위해 GAA가 뭔지 조금 설명하겠습니다. 반도체 소자는 기본적으로 수없이 많은 트랜지스터를 작은 칩 안에 새겨 넣은 것입니다. 검은 몸통에 세 개의 발이 달린 단순한 전자부품인 트랜지스터를 칩 안에 새겨 넣을 수 있게 된 건 모스펫(금속 산화막 전계효과 트랜지스터 )이라는 트랜지스터 구조가 발명되고 나서 부터입니다.
모스펫은 웨이퍼 위에 두 종류의 반도체(p형 반도체, n형 반도체)를 구성 후 그 위에 산화막을 입히고, 금속을 덮어 올리는 형태의 트랜지스터입니다. 지금 생산되는 대부분의 반도체가 이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모스펫을 뜯어보면 전류가 출발하는 부분인 소스(source), 전류가 도착하는 부분인 드레인(drain)이 있고, 그 위에 전류가 흐르도록 신호를 주는 게이트(gate)가 있습니다. 게이트의 신호에 따라 전류가 흐르게 되는 부분을 채널이라고 부릅니다.
모스펫은 처음에 납작한 형태인 플래너(Planar)구조였는데, 공정 미세화 과정에서 채널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전류가 새는 등 개선이 필요해지자 채널을 생선 지느러미처럼 위로 길게 뽑아 올린 모습의 핀펫(FinFET)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핀펫 구조는 게이트가 채널의 세 면과 닿아서 효율이 좋아 지금도 가장 많이 쓰이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반도체 설계가 10나노 이하로 더욱더 미세화되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은 게 채널의 네 면을 모두 감싸는 형태인 GAA입니다.
▲ 모스펫의 진화를 나타낸 그림. 플래너펫에서 시작해 핀펫을 넘어 GAA펫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삼성전자
GAA는 이론적으로 같은 칩 안에서 채널 면적이 더 넓어지기 때문에 전류 관리가 더 뛰어납니다. 하지만 실제로 구현하기가 까다로워서 아직 대세가 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삼성전자는 3나노 제조 공정부터 GAA를 적용하고 있지만 TSMC는 3나노까지는 핀펫을 사용하고 2나노부터 GAA를 적용할 예정입니다. 지금은 수율이나 품질 문제가 있긴 하지만 향후 초미세 공정에서는 GAA가 대세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최초로 양산에 적용했기에 기술 경쟁에서도 유리하겠지요.
GAA와 HBM에 대한 미국의 규제
그런데 GAA 앞에 먹구름이 끼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GAA를 적용한 파운드리 양산을 발표한 지 2년이 된 지난 6월, 미국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에 사용되는 반도체 관련 기술에 중국의 접근을 막기 위해 추가 규제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중국이 GAA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GAA를 이용한 반도체 칩 제조를 못 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GAA를 이용해서 제조한 반도체를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건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태입니다. <블룸버그>는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GAA 규제 초안을 업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술 자문 위원회에 보냈다고 보도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GAA를 이용한 반도체 제조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TSMC도 곧 도입할 예정인 최신 기술입니다. 미국 정부가 중국을 대상으로 GAA 기술을 규제한다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게 되는 건 삼성전자입니다. GAA를 이용한 반도체 칩을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는 것으로 결정된다면 삼성전자는 최신 제조공정의 가장 큰 시장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GAA만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8월 1일 블룸버그는 인공지능(AI)에 사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지금 HBM을 제대로 만드는 회사는 셋 있습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그리고 미국의 마이크론입니다. 이 중에서 마이크론은 중국에 HBM을 수출하고 있지 않습니다. HBM 시장의 50%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역시 엔비디아의 주문을 맞추기도 벅찬 상황이라 당장은 문제가 없습니다.
대통령님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습니까?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삼성전자는 다릅니다. 지난 8월 <로이터통신>은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가 있기 전에 HBM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전자로부터 대규모 매집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삼성전자의 HBM 매출에서 중국이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 기사와 관련해서 <조선비즈>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따서 "현실성 없다"는 기사를 냈지만, <매일경제>는 한국과 중국의 무역통계 수치를 근거로 중국의 삼성 칩 사재기 열풍이 정부 통계에서도 포착됐다는 기사를 냈습니다. 30%라는 숫자는 차치하더라도 HBM에 대한 대중국 수출 규제가 이뤄지면 삼성전자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대중국 HBM 규제를 예상하고 미리 매집하고 있다는 겁니다. 로이터통신 역시 HBM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9월 중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점점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앨런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에서 "HBM을 생산하는 한국이 이를 중국이 아닌 미국과 미국의 동맹에 공급해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HBM 시장은 2022년 27억 달러에서 2029년 377억 달러로 연평균 46%의 고성장이 예상되는 우리 기업들의 주요 먹거리입니다. 특히 전체 D램 비트(bit) 용량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수준이지만,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21%에 달할 만큼 비싸게 팔리는 제품입니다. 게다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이 HBM 시장에서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어서 독점적이고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HBM을 미국과 미국의 동맹에만 제한적으로 판매할 것을 강제한다면 우리 기업의 미래를 빼앗아 가는 것이며, 우리 수출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이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막겠다는 이유로 추진하고 있는 GAA와 HBM에 대한 규제는 정확히 한국의 반도체 기업, 그중에서도 삼성전자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연일 삼성전자를 매도하고, 삼성전자 주가가 연일 연저점을 기록하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요? 주식 시장에는 10만 전자를 외치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는 6만 전자도 깨질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 관계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에서 확정한 것이 없어서 우리가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공식적으로 미국이 요청하면 그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한가하고 안이한 현실 인식입니다.
블룸버그의 GAA 관련 규제 첫 기사가 나온 게 6월이고, HBM 규제 관련 기사가 나온 게 8월입니다. 중국 기업들은 이 소식을 미리 인지하고 진작부터 HBM을 매집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의 규제가 현실이 될까 속이 타는데 우리 정부만 미국이 뭔가를 확정할 때까지 두 손 놓고 기다리겠다는 겁니다. 규제책 나오면 늦습니다. 미국 상무부 고위 관리의 발언이 실제 미국 정부의 반도체 규제책으로 확정돼 발표되기 전에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우리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애정이 넘치던 대통령님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습니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