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부하듯 돌아본 낙산사, 볼 것이 충분합니다
국내 사찰 둘러보는 기쁨... 요즘도 조금씩 바뀌는 이곳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사찰을 둘러보길 좋아한다. 지난 사진을 정리하며 보니 참 많은 사찰을 둘러보았다. '절집'이란 폴더를 만들어 정리하고 있다.
사찰은 대부분 산속에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절에는 '산사'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오늘 둘러볼 양양 낙산사(洛山寺)는 이름에 대놓고 '산사'가 들어있으나 산보다는 바닷가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낙산'은 관세음보살이 사는 곳으로 전해진 산스크리스트어 '포탈라카(पोतलक, Potalaka)'을 음차한 한자인 '보타락가(補陀落迦)'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은 33가지 몸으로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바닷가 사람을 보살피는 몸이 '해수 관음'이다.
깨알 정보를 덧붙이자면 '해수 관음'을 모시는 사찰로 양양 낙산사와 남해 보리암 그리고 강화 보문사가 손꼽힌다. 여기에 여수 향일암까지 더해 4대 성지로 꼽는다고 한다. 아쉽게도 향일암과 보문사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83년이었던가,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처음으로 낙산사를 들렀다. 태어나서 처음 바다를 보고 놀랐던 기억과 커다란 해수 관음상이 기억에 남았다. 그 후로 수십 년이 지나 가족 여행으로 두 차례 들렀다. 2005년 산불로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복원된 다음이다. 낙산사는 요즘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지난 주말에 양양에 갔다가 낙산사 전체를 구석구석 찬찬히 둘러보았다. 수학여행 때는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가족 여행 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힘들어해서 서둘러 지나쳤던 곳이 많았다.
과거의 나처럼, 시간에 쫓겨 보는 이들은 아마도 해변 쪽에 있는 후문으로 올라서 해수관음상만 보고 내려오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바빠서 모두 둘러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부족하지만 찍어온 사진을 올려본다.
후문 쪽으로 들어서면 먼저 의상대를 만난다. 의상대에서 보는 해돋이가 멋지다기에 보려고 했으나 날씨와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보지 못했다. 홍련암은 청기와가 눈에 띈다. 이렇게 쓰여있다.
보물 제1723호인 '해수관음공중사리탑'은 보타전에서 해수관음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어서 눈여겨 찾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이번에 홍련암 앞에 있는 '사리탑비'를 보고 찾아보았다.
확실히 요즘 석물에서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보타전 앞에 새로 세운 석상은 뭔가 비례가 안 맞아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해수 관음상은 1971년부터 6년 6개월에 걸쳐 만들어서 그런가, 최근 석상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빈일루를 비롯하여 서너 군데 무료 찻집이 있어서 잠시 쉬면서 땀을 식히면 좋다.
설명을 보니 2005년 산불로 소실된 전각을 복원할 때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토대로 삼았다고 한다.
홍예문은 1467년에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한 것을 기념하려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돌문이다. 보물이었던 동종도 같은 때 만들어졌지만, 아쉽게도 산불로 녹아버리고 새로 복원하는 바람에 보물에서 해제되었단다. 복원된 숭례문이 귀하듯이 복원된 낙산사 동종도 그냥 보물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봤다.
역사 공부하듯이 사찰을 둘러보니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다음엔 반드시 의상대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사찰은 대부분 산속에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절에는 '산사'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오늘 둘러볼 양양 낙산사(洛山寺)는 이름에 대놓고 '산사'가 들어있으나 산보다는 바닷가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깨알 정보를 덧붙이자면 '해수 관음'을 모시는 사찰로 양양 낙산사와 남해 보리암 그리고 강화 보문사가 손꼽힌다. 여기에 여수 향일암까지 더해 4대 성지로 꼽는다고 한다. 아쉽게도 향일암과 보문사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83년이었던가,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처음으로 낙산사를 들렀다. 태어나서 처음 바다를 보고 놀랐던 기억과 커다란 해수 관음상이 기억에 남았다. 그 후로 수십 년이 지나 가족 여행으로 두 차례 들렀다. 2005년 산불로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복원된 다음이다. 낙산사는 요즘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지난 주말에 양양에 갔다가 낙산사 전체를 구석구석 찬찬히 둘러보았다. 수학여행 때는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가족 여행 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힘들어해서 서둘러 지나쳤던 곳이 많았다.
과거의 나처럼, 시간에 쫓겨 보는 이들은 아마도 해변 쪽에 있는 후문으로 올라서 해수관음상만 보고 내려오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바빠서 모두 둘러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부족하지만 찍어온 사진을 올려본다.
▲ 홍련암 가는 길에 뒤돌아 본 의상대 ⓒ 박영호
▲ 낙산 바다 ⓒ 박영호
후문 쪽으로 들어서면 먼저 의상대를 만난다. 의상대에서 보는 해돋이가 멋지다기에 보려고 했으나 날씨와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보지 못했다. 홍련암은 청기와가 눈에 띈다. 이렇게 쓰여있다.
▲ 홍련암 ⓒ 박영호
672년(문무왕 12) 의상(義湘)이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 대나무가 솟은 곳에 지은 불전(佛殿)이라 한다. 또, 일설에는 의상이 이곳을 참배할 때 푸른 새를 만났는데 새가 석굴 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하였다. 7일 후 바다 위에 홍련(紅蓮)이 솟아 그 가운데 관음보살이 현신하였으므로 이 암자 이름을 홍련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 해수관음공중사리탑 ⓒ 박영호
보물 제1723호인 '해수관음공중사리탑'은 보타전에서 해수관음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어서 눈여겨 찾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이번에 홍련암 앞에 있는 '사리탑비'를 보고 찾아보았다.
확실히 요즘 석물에서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보타전 앞에 새로 세운 석상은 뭔가 비례가 안 맞아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해수 관음상은 1971년부터 6년 6개월에 걸쳐 만들어서 그런가, 최근 석상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 해수 관음상 ⓒ 박영호
▲ 꿈이 이루어지는 길 ⓒ 박영호
▲ 원통보전과 7층석탑 ⓒ 박영호
▲ 빈일루 무료 찻집 ⓒ 박영호
빈일루를 비롯하여 서너 군데 무료 찻집이 있어서 잠시 쉬면서 땀을 식히면 좋다.
설명을 보니 2005년 산불로 소실된 전각을 복원할 때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토대로 삼았다고 한다.
▲ 사천왕문 ⓒ 박영호
▲ 복원한 동종 ⓒ 박영호
▲ 홍예문 ⓒ 박영호
홍예문은 1467년에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한 것을 기념하려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돌문이다. 보물이었던 동종도 같은 때 만들어졌지만, 아쉽게도 산불로 녹아버리고 새로 복원하는 바람에 보물에서 해제되었단다. 복원된 숭례문이 귀하듯이 복원된 낙산사 동종도 그냥 보물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봤다.
▲ 주차장에서 원통보전으로 오르는 길 ⓒ 박영호
▲ 낙산사 일주문 ⓒ 박영호
역사 공부하듯이 사찰을 둘러보니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다음엔 반드시 의상대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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