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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콘서트장 간 연쇄 살인마, 도망칠 수 있을까

[리뷰] 영화 <트랩>

등록|2024.09.12 17:37 수정|2024.09.12 17:38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팝스타 레이디 레이븐의 콘서트장, 쿠퍼(조쉬 하트넷)는 그녀의 광팬인 딸 라일리(아리엘 도노휴)와 함께 왔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모양이라 기분을 풀어줄 절호의 기회다. 수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 그래서인지 경찰이 눈에 많이 띈다. 쿠퍼는 콘서트장을 들어가기 전에도 또 들어가고 나서도 유독 경찰을 살피는 눈치다. 그래도 딸아이가 좋다고 하니 즐기는 데 신경을 쏟으려 한다.

그런데 경찰들이 키 큰 장년층의 남자 백인들을 하나둘 끌고 가는 게 아닌가. 쿠퍼도 거기에 딱 들어맞는다. 쿠퍼는 안면 있던 티셔츠 판매원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그가 이것저것 알려주길, 10여 명을 토막 살인한 연쇄살인범 일명 '도살자'가 이곳에 왔다는 첩보를 전해 받은 FBI가 대대적으로 병력을 끌고 왔다고 한다. 즉 이 콘서트 자체가 도살자를 잡기 위한 함정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쿠퍼는 눈알을 굴리고 머리를 팽팽 돌리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가 바로 도살자였기 때문이다. 탈출하기가 여의찮아 보이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하나둘 큰 위험에 빠트린다. 오로지 탈출할 수 있는 각을 보고자 사람들의 시선, 특히 경찰들의 시선을 분산하려는 수작이었다. 그는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라일리는?

연쇄 살인범은 덫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 영화 <트랩>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 <트랩>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작품이다. 당연한 듯 연출, 각본, 제작을 도맡았다. 20세기 말 <식스센스>로 역대급 성공을 거둔 후 그 후광에 잠식된 듯했지만 돌이켜보면 쉬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 왔다. 200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 동안 암흑기였지만 부활에 성공해 지금에 이르렀다. 아직 50대 중반에 불과하기에 앞날이 창창하다 하겠다.

영화는 주지했다시피 주인공 쿠퍼가 희대의 연쇄살인범인 도살자라는 사실을 초장에 알려준다. 사실 극초반에 그가 경찰을 의식하는 데부터 관객들은 그에게 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상당히 자신감 있는 그리고 공격적인 전개라 하겠다. 샤말란 감독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반전'의 요소가 굉장히 줄어드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재밌다면 가히 대단하다 하겠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재미'를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대신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쿠퍼는, 아니 도살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수백 명의 경찰 감시를 뚫고, FBI가 대놓고 설치한 함정을 뚫고, 혼자도 아닌 딸과 함께 콘서트장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영화는 다분히 쿠퍼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그러니 양가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잡혔으면 좋겠으면서도 왠지 긴장된다.

쿠퍼, 아니 도살자라는 사람에게 감정이 이입된다기보다 자신을 잡으려고 함정을 판 수백 명을 뚫고 빠져나가야 하는 사람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것이다.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듯,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끝장인 듯,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탈출할 구멍이 안 보이는 듯. 그러니 쿠퍼가 마치 도장 깨기를 하듯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나가며 조금씩 탈출에 가까워지는 걸 긴장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감정이입 대신 게임처럼 바라보기

▲ 영화 <트랩>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는 범죄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다. 종일 긴장감을 유발하니 말이다. 그런데 감독은 해선 안 되는 짓(?)을 저지른다. 비록 추리 미스터리가 아니기에 '후더닛(Who done it)'의 기본 개념을 가져올 것까진 없지만 초장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줄 뿐더러 다분히 범인의 입장에서, 시선에서 극을 진행한다니 말이다. 자연스레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자신감 또는 자만감의 표출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보다 오락성을 띠기 시작한다. '007'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까지 연상된다. 물론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작은 스케일이지만 말이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다를 뿐이다. 차라리 그런 식으로 보면 영화를 조금 다르게 대할 수 있다. 악한에게 감정 이입하는 걸 멈추고 게임처럼 바라보면 재밌을 것이다.

그래서 쿠퍼 또는 도살자는 잡힐까, 탈출할까. 그런가 하면 라일리가 하는 걸 보니 가족은 그가 도살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가족은 어떻게 될까. 영화의 흥행 여부는 모르지만, 후속편은 스핀오프 식으로 나와 그의 철두철미하고 괴이한 이중생활을 다루면 재밌을 것 같다. 역사상 화목한(화목해 보이는) 가정생활을 영위하며 악마 같은 연쇄 살인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 말이다.

제목에 다시 집중해 본다. '트랩', 즉 '덫'이다. 간단명료하지만 그 자체로 반전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FBI가 놓은 덫이 외면상으로 비추지만, 도살자가 놓은 덫이 이어질지 또는 다른 누군가가 놓은 덫이 이어질지 알 수 없다. 누가 이어서 덫을 놓든 또는 아무도 덫을 놓지 않든 반전의 여지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 또한 영화 밖의 관객을 반전에 빠트릴 덫을 항상 준비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자. 이 영화, 들여다볼수록 재밌고 매력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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