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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전자 피아노, 업체에 수리 문의했더니

바느질 하고 부품 갈아 끼우는 나의 '고쳐쓰기' 라이프

등록|2024.09.20 17:20 수정|2024.09.20 17:20
"우리 아이는 교구가 없는 상태로 수업을 들어요. 후회하지 않아요. 쓰레기를 거절하고 싶거든요."

어린이집에서 제공하는 교구를 거절한 분을 최근에 만났다. 방과 후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놀이 교구는 일회용으로 쓰이고 버려지기 일쑤였다. 교구가 없는 아이는 짝꿍이 하는 걸 지켜본다고 했다. 환경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거나 답답해하지 않냐고 묻자 너무나도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수업 끝나면 친구들이 아무도 안 갖고 놀아요. 한 번 만지고 휙! 그때 가지고 놀아도 충분하더라고요. 불편한 건 아주 잠깐인 것 같아요. 어린이 장난감, 물건 중에 그런 것들이 얼마나 흔한지 몰라요."

나도 초등학교 교사인지라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는 각종 사업 명목으로 들어오는 단기 교육 프로그램이 꽤 있다. 활동에 쓰이는 교구는 대부분 한 번 쓰고 버려진다. 종이라면 이면지로 활용이 가능하지만 플라스틱류는 정말 난감하다.

교육청이나 기타 기관 이름이 찍힌 기념품도 마찬가지다. 기념품으로 볼펜이나, 우산, 포스트잇 종류가 자주 보급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개인의 취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 천 원짜리 삼색 볼펜이 단체 기념품으로 나와도 자기가 고른 천오 백 원짜리 캐릭터 볼펜을 먼저 쓴다. 특히 기념품의 디자인이나 색이 별로면 즉각 부정적 반응이 나온다. 일부 학생들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기에는 보편적인 반응이다.

내가 고쳐 쓰는 것들

교사인 나는 학용품을 좀처럼 구입할 일이 없다. 학생이 안 써서 두고 간 각종 학용품이 교실에 매년 쌓인다. 나름 쓸 만한 것만 추려도 양이 상당하다. 물자가 흔한 선진국에서는, 더군다나 저출산으로 아이가 귀해진 나라에서는 어린이 관련 물건이 별 의식 없이 소비된다. 보호자인 어른도 돈을 아끼지 않고, 아이도 물건을 아껴 쓸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예전에 오 년 동안 방글라데시의 한 소녀를 후원한 적이 있다. 단체에서 보내준 편지에는 후원금이 아이의 학비와 학용품비로 쓰였다고 적혀 있었다. 그 아이가 한국의 학교와 학원, 유치원에서 버려지는 엄청난 팬시용품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쓰레기봉투가 아니라 멀쩡한 물건이 담겨있는 보물주머니쯤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 교사인 나는 학용품을 살 일이 좀처럼 없다. 교실에 버려지는 것들이 수두룩 하니까. ⓒ 이준수


나는 학교에서 교사지만, 집에서는 두 아이의 아빠다. 우리 집은 직접 만들 수 있는 건 만들고 고칠 수 있는 건 고쳐 쓰자는 주의를 가지고 있다. 물건은 귀하게 써야 한다고 믿는다. 일기장이 없으면 종합장에 줄을 그어 쓴다. 가계부도 남는 공책을 반으로 접어서 뚝딱 만든다. 청소기도, 냉장고도 틈틈이 수리를 받아가며 십 년 넘게 사용 중이다.

레고 블록처럼 제작이 불가능한 장난감의 경우 중고품을 구입했다. 한때 유행했던 고무 팝잇도, 킥보드도 모두 당근에서 가져왔다. 그래서일까. 우리 집 아이들은 새 물건에 그리 집착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물건을 아주 섬세하게 다룬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들 물건은 자주 망가진다.

머리핀과 머리띠는 늘 어딘가 부속품이 빠져있다. 건전지로 멍멍 짖으며 움직이는 강아지 인형의 관절은 덜그럭 거린다. 편의점이나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소형 장난감은 말할 것도 없다. 수리 자체가 불가한 경우도 흔하다.

플라스틱 장식이 달린 머리핀은 그나마 고치기가 수월하다. 실리콘 글루건으로 떨어진 부위를 고정할 수 있다. 천으로 된 봉제인형도 나쁘지 않다. 반짇고리로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아주 섬세한 작품이 아니라면 터진 곰인형 옆구리 정도는 금방 실로 꿰맬 수 있다.

바퀴와 프레임이 찌그러진 정도가 아니라면 간단한 자전거 수리도 할 만하다. 지난달에 큰 아이가 두 발 자전거를 타다가 오른쪽 페달이 빠졌다. 당황하지 않았다. 유튜브에 초보를 위한 자전거 수리 영상이 잘 나와있었다. 준비물은 드라이버와 몽키 스패너.

수리는 아주 간단했다. 페달을 끼우고 방향을 맞춰 조이면 끝났다. 페달 하나를 제대로 달았을 뿐인데 기뻤다. 스패너를 쥔 김에 헐거운 다른 나사도 단단히 죄였다. 자아효능감이 높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전거 수리에 재미가 들린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그간 미루고 있던 경종과 자전거 스탠드를 달았다. 헝겊으로 구석구석 닦자 새 자전거처럼 보였다.

▲ 드라이버와 몽키스패너만 있어도 간단한 자전거 수리는 뚝딱이다. ⓒ 이준수


수리의 기쁨을 어디에 비할까

어느 날에는 전자 피아노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반년째 전원 버튼이 잘 안 눌려서 애를 먹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전원을 켜는 데 성공하면 소리가 나왔으므로 그냥 썼다. 하지만 아무리 세게 버튼을 눌러도 인식이 되지 않았다.

피아노 수입 업체에 문의를 넣었다. 해당 모델에서 종종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했다. 전원 버튼 부위가 약한 모양이었다. 버튼만 단독으로 교체할 수는 없고 연결된 패널을 통째로 갈아야 했다. 문제는 비용. 우리는 강원도 소도시에 살고 있어 기사님 출장비 및 수리비가 비쌌다. 가정 방문형 서비스는 이십만 원 중후반대 비용이 나온다고 했다. 피아노 값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고객님, 번거로우시겠지만 다른 방법도 있기는 합니다."

담당자분은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피아노를 분해해서 케이블을 해체한 후 전자기판만 따로 보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꼼꼼하게 포장해서 낙원상가에 있는 센터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수리 비용은 배송비 포함 팔만 칠 천 원. 솔깃한 제안이었다. 나는 단박에 받아들였다.

전화 통화로는 피아노 분해 설명이 힘들어 전자우편으로 따로 안내를 받았다. 전선이 끊어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드라이버 세트를 이용해 케이블을 떼어내고 나사를 풀었다. 케이블을 받치는 굵은 철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곧 해냈다. 아이들은 드라이버 자석에 나사가 붙는 걸 무척 신기해했다.

택배를 보낸 후 일주일 만에 새 기판이 돌아왔다. 조립은 해체의 역순으로 금방 끝났다. 직접 드라이버를 돌린 덕분에 수리비가 굳었다. 또 아이들은 수리 과정에서 기계의 내부를 처음으로 봤다. 단순 소비자일 때는 알 수 없는 세계였다. 수리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면 얼마나 신날까. 삶의 중요한 기술 하나를 배운 느낌이 들었다.

▲ 생각보다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었던 전자 피아노 내부 ⓒ 이준수


물건을 고쳐 쓰면 자원을 절약하고 폐기물을 줄일 수 있어 좋지만 다른 이득도 있다. 물건에 마음을 쏟으면 정이 든다. 전자 기판을 교체한 피아노도 내가 분해하고 조립했더니 더 예뻐 보인다. 아이들도 예전보다 자주 피아노를 친다. 이런 표현은 적합하지 않겠지만 보살펴주는 것처럼 보인다.

물건은 나와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소중히 여기며 지내고 싶다. 부서지면 다시 붙이고, 벗겨지면 칠하며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한다. 수리하는 습관을 들인 이후로 물건을 덜 사게 되었다. 신중하게 고른 물건을 사용할 때도 만족도가 높았다.

홧김에 주문한 택배는 박스 개봉과 동시에 흥미가 식지만 수리의 기쁨은 오래간다. 만약 혼자서 수리나 수선이 힘들다면 동네 수선집에 떨어진 단추 수선이라도 맡겨보자. 간접 경험이라도 '고쳐 썼다'는 작은 성공의 만족감은 크다. 새로 사는 것보다 돈이 덜 드는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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