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징용 거부하고 산에 올라 저항한 청년들

[오늘의 독립운동가 4] 2001년 9월 20일 타계한 김특술 지사

등록|2024.09.20 09:22 수정|2024.09.20 09:22

▲ (왼쪽부터) 김특술 지사, 경북 경산시 사월리 '대왕산 죽창의거 공적비', 대왕산 정상 '항일 대왕산 죽창의거 전적지' 표지석, 대왕산 정상. 산 정상이 뾰족하지 않고 평지여서 소규모 군대가 주둔할 수 있다. ⓒ 정만진


2001년 9월 20일 김특술(金特述) 지사가 세상을 떠났다. 1923년 1월 29일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송내리에서 태어났으니 향년 78세였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 갱생을 도모하느라 목숨을 잃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 견주면 김 지사는 그래도 천수를 누린 셈이다.

1945년 당시 그의 나이 22세였다. 그해 8월 15일 독립을 되찾을 때 20대 초반에 지나지 않았던 지사들은 대체로 1943~1945년에 체포되었다. 고문을 당하면서 갇혀 지낸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으므로, 생존한 상태로 옥중에서 해방을 맞이한 경우가 많았다.

생가 마을에서 약 10리 떨어진 대왕산으로 들어가다

김 지사의 본적지인 송내리 86에서 북쪽으로 300m쯤 떨어진 사월리 15-4에 '항일 대왕산 죽창의거 공적비'가 있다. '항일 대왕산 죽창의거 유족회'가 관리하는 이 공적비는 1995년 5월 31일 건립되었다. 남산면 일대 청년들이 일제 징용을 거부하고 대왕산에 들어 죽창의거를 일으킨 1944년 7월로부터 약 51년 만이었다.

대왕산(615.7m)은 공적비에서 남쪽으로 3.7km쯤에 있다. '항일 대왕산 죽창의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은 1944년 7월 15일이었다. 안창률, 김경화, 김특술, 김명달, 성상용, 송수답 등 29명의 남산면 청년들은 "자인면 원당보에 모여 돌 많고 산세 험한 대왕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신축 중에 있는 남산 주재소를 습격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준비에 착수했다(국가보훈부 현충시설정보서비스)."

한 달 동안 준비 끝에 '빨치산'식 항전을 결의

청년들이 처음 의기투합한 때는 약 한 달 전인 6월이었다. 사월리 출신 박재달 등이 "징병·징용을 위해 청년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청년들을 규합하여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 그 이후 7월 5일, 8일, 15일 연이어 세 차례 회합을 가졌다.

7월 15일 원당보 회합 때 김특술 지사는 같은 송내리의 김위도·최덕종 청년과 함께 참석했다. 이윽고 열흘 지난 7월 25일 밤, 모두들 죽창으로 무장을 하고 대왕산에 올랐다. 이튿날인 26일 아침 안병률의 선창으로 힘차게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곧장 일경 30명이 몰려왔다. 청년들은 돌과 죽창으로 맞서 그들을 물리쳤다. 다시 8월 5일에도 일경 30명을 격퇴했다. 하지만 보급이 끊기면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일부 대원들을 차례차례 하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8월 10일에서 13일 사이에 전원 체포되고 말았다.

두 차례 일경을 물리쳤지만 보급 끊겨 결국 피체

김특술 지사는 첫 선발대로 하산했다가 8월 10일 붙잡혔고, 소위 보안법 및 치안유지법 위반 죄목으로 경산경찰서와 대구형무소에 갇혀 고문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안창률, 김경화 지사는 옥중 순국했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인명록은 "경산군 남산면 청년들이 일제의 강제동원을 거부하고 집단적·조직적으로 벌인 징용·징병 거부운동, 이른바 대왕산죽창의거"는 "정보연락대 3인 외에 대왕산에 오른 26명의 청년들로 결심대(決心隊)를 조직하고 편제를 정했으며", 김특술 지사는 "3소대장 최외문 휘하에서 일본 경찰과 무력 충돌을 이어갔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남산면 죽창의거는 강제징용을 거부하고 세칭 "빨치산"이 되어 일제에 맞선 보기드문 사례로, 사월리의 공적비 외에 대왕산 정상에도 '항일 대왕산 죽창 의거 전적지' 표지석이 별도로 세워져 있다. 평지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데 약 1시간가량 걸리는 대왕산 정상에 꼭 한번 올라보실 것을 권유드린다. 봄철에 가면 진달래가 아주 곱다.

(관련 기사 : 산꼭대기에 세워진 보기 드문 독립운동 전적비)
덧붙이는 글 국가 인정 독립유공지가 1만8천여 분 계시는데,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는 1500년 이상 걸립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날, 의거일 등을 중심으로 '오늘의 독립운동가'를 써서 지사님들을 부족하나마 현창하려 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