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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노동은 정말 노동자들의 '선택'인가?

[풀어쓰는 노동시간] 유통물류업계 앞에서 멈춘 '사회적 과제'

등록|2024.09.19 14:40 수정|2024.09.19 14:40
21세기 들어 생긴 산업이라면 신기술만 강조할 뿐 아니라, 임금이나 노동자 건강 보장 같은 노동조건 역시 가장 선진적으로 앞서 간다면 좋겠지만 그런 산업은 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법이 규제하지 않는다며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 야간 전담 직원을 둔다. '혁신' 기업이라 불리는 쿠팡, 마켓컬리, 그리고 이들을 따르며 경쟁에 뛰어든 유통물류 업체들은 로켓배송, 새벽배송을 소비자들에게 선사하지만 야간노동, 장시간 노동에 따른 노동자들의 건강 악화는 무시한다.

10년쯤 전 자동차 제조업계에서는 주야간 맞교대제를 주간 연속 2교대제로 바꾼 역사가 있다. 노동조합은 국제암연구소가 발암물질로 정한, 노동자 건강을 망치는 밤샘노동에서 벗어나겠다며 투쟁을 시작했다. 정부 역시 밤샘노동 폐지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이 사회적 과제임에 동의했다. 당시 만들어진 사회적 과제라는 인식은 왜 지금은 유통물류업계 앞에서 멈추는가?

노동자가 야간노동을 선택했다는 말

▲ 야간노동자들이 밤에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지만, 그것이 진짜 선호이고 선택일까 되물어야 한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유통물류산업 야간 노동을 옹호하는 논리 중 하나는 노동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위해 야간노동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쿠팡 물류센터에는 수만 명의 일용직, 계약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스스로 주간에 일할지, 야간에 일할지 '선택'한다. 노동자들 누구나 야간노동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야간노동을 한다. 낮에 일을 할 수 없어서, 혹은 월 급여가 야간노동을 할 때 노동자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높기 때문에.

코로나19 시기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자영업자들이 영업을 종료해야 했을 때 쿠팡 물류센터가 이들을 상당수 흡수했다. 조금이라도 급여가 높아서, 투잡을 뛸 수 있기 때문에 야간노동을 하겠다는 노동자들을 유통물류 자본은 적극 활용한다. 이것을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택이란 조금 더 나은 것을 택할 수 있을 때 쓰는 말이지 더 나쁜 상황을 피하기 위한 울며 겨자먹기 식의 결정을 미화하는 말이 돼서는 안 된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쿠팡 물류센터의 야간조 기본 시급이 주간조보다 낮게 책정되어 있음이 드러났다.¹ 더 낮은 시급도 야간 가산을 붙이면 급여 총량이 늘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급여 때문에 야간조 일을 유지한다. 이것을 노동자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나? 결정권은 전적으로 회사에 있고 노동자들은 감내할 뿐이다.

정작 야간노동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면 야간노동을 없애선 안 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한 신문사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의료 등 필수공공서비스를 제외하고) 새벽 배송이나 24시간 운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반 시민들(20.8%)보다 현재 야간노동자들(43.%)에게서 훨씬 높았다. 그런데 야간노동자가 야간노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 유지(44.8%)다.² 야간에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건강한 20대 남성 노동자가 야간 업무를 마치고 과로사할 만큼 힘든 일이지만 노동자들은 생계 앞에서 야간노동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낮은 임금과 실업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유통물류 자본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야간노동 현장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야간 노동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선호이고 선택인가?

야간노동이라는 선택지가 줄어든다면?

사실 이 상황은 우리 제도의 구멍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 야간노동을 규제하는 내용이 전혀 없으니, 플랫폼, 디지털 노동은 기꺼이 24시간 돌아가는 시스템을 채택했다. 야간에 일을 하고 과로하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이 계속 있어 왔지만, 플랫폼, 디지털 노동이라는 새로운 산업에서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지 못했다.

야간 노동에 대해서 급여 50% 할증 외에 이렇다 할 규제가 전혀 없는 한국 법과 달리 프랑스는 노동법전(Code du travail, ar. L. 3122-1)에서 야간 노동을 여러모로 규제한다. "야간근로는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 야간근로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의 보호를 위하여 필수적인 사항들을 고려해야 하며, 사회적 이익을 갖는 업무나 사업의 계속성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에 의하여 정당화되어야 한다"³고 하여, 야간노동으로부터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할 필요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규정이 있으면 의료, 소방, 경찰 등 꼭 필요한 영역이 아닌 산업에서 야간 노동이 무작정 확대되기 어렵다. 열악한 노동자에게 '야간 노동'이라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좀먹는 선택지를 덜 내놓게 되는 것이다. 새벽배송이 우리 삶에 필수인가? 의료, 경찰, 소방, 안전처럼 밤에 꼭 작동해야 하는 요소인가? 그렇지 않다면 물류유통업에서 '야간 노동' 자체를 덜 사용하도록 했어야 한다. 밤새 강도 높은 노동을 시키는 200년 전 노동 조직 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새벽배송이라는 가짜 혁신을 꿈꾸지 못 하게 했어야 했다.

백 번 양보해 야간 노동을 시키는 게 꼭 필요하다면 야간노동 시간 총량 제한, 야간 노동강도 조정, 야간노동 휴식시간 보장 등의 여러 조건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런 규제조차 없어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없이 노동자들이 높은 노동강도로 야간 전담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야간 노동 급여 50% 할증은 오히려 열악한 노동자를 야간 노동으로 유인하는 보상이다. 야간노동을 노동자 건강을 해치는 요인으로 보고 직접 규제할 때가 되었다. 필수가 아닌 영역에는 야간노동을 금지하고, 꼭 필요한 경우라면 야간 노동 시간 총량을 제한하고, 충분한 휴식과 휴일을 줘야 한다. 우리에게도 야간노동은 예외적인 것이라고 분명히 하는 노동법이 필요하다. 그렇게 야간노동을 노동자의 선택지에서 빼는 사회를 만들자.

1) "쿠팡은 바뀌지 않는다 ② 당신이 잠든 사이...노동자는 병든다", 홍주환, 뉴스타파, 2023년 8월 17일. https://newstapa.org/article/F_rGs
2) [단독] "먹고살려면"… 야간노동자가 더 원하는 야간서비스, 송수연, 서울신문, 2020.11.19. https://www.seoul.co.kr/news/plan/night_labor/2020/11/30/20201130008002
3) '서비스업 야간노동 – 인간중심의 분업구조를 위한 제언'. 2019.05. 한국노동연구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유청희 님은 노동시간센터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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