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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캣 레이디'의 정체

[이슬기의 뉴스비틀기] '캣 레이디'가 쓰는 또 하나의 지지 선언

등록|2024.09.20 07:07 수정|2024.09.20 07:07

▲ 지난 10일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 컨벤션 센터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토론한 후 회견장에서 기자들과 대화하는 모습, 지난 5월 24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디 에라스 투어의 일환으로 공연하는 미국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모습. ⓒ AFP/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대통령선거 TV 토론은 끝없는 파장을 낳았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태도, 보디랭귀지까지 두 후보의 모든 것이 화제에 올랐다.

그 가운데서도 글로벌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해리스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한 것은 압권이었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카멀라 해리스와 팀 월즈(민주당 부통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며 스스로를 '자식 없는 캣 레이디(Childless Cat Lady)'라 지칭했다.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인 J. D. 밴스 상원의원이 2021년 해리스를 포함한 몇몇 민주당 인사들에게 자기 삶에서 비참한, 자식이 없는 고양이 여성들"이라고 일컬은 것에 대한 반박이다.

여기에 테슬라 최고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엑스에 "안녕 테일러, 네가 이겼다"라며 "내가 너에게 아이를 주고, 내 목숨을 바쳐 너의 고양이를 지켜 줄게"라는 글을 올려 비판이 쏟아졌다. 이 글은 또 하나의 '캣 레이디'인 내가, 해리스와 스위프트에게 보내는 지지 성명의 하나다.

'캣 레이디'의 역사적 뿌리

'캣 레이디'는 아이를 낳지 않고 고양이를 키우는 1인 가구 여성을 비하하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밴스는 2021년 폭스뉴스 출연 당시 '캣 레이디'를 두고 "(자녀가 없기 때문에) 국가의 미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은 무가치하다는 여성혐오적 발언으로,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캣 레이디'라는 언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BBC는 <고대 이집트부터 테일러 스위프트까지: '캣 레이디'의 역사적 뿌리>라는 기사를 통해 '고양이 아줌마'라는 밈에 대해 설명했다. 기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고양이 아줌마는 남자가 없는 여자, 또는 레즈비언을 뜻했다. '적어도 한 마리 이상의 고양이를 키우는, 가디건을 입고 안경을 쓴 은둔자'의 형태로 자주 재현됐다.

한편으로 '캣 레이디'는 이분법적 편견에 시달려오기도 했다. 책 <캣 우먼>을 쓴 작가 앨리스 매디콧은 '고양이 아줌마' 자체는 비성애적인 존재로 취급되지만, 그가 키우는 고양이는 성적 방종과 음란함을 상징하는 모욕적인 의미로 통용된다고 말한다. '캣 레이디'와 달리 여성을 고양이 그 자체로 치환하는 '캣 우먼'이 여러 영화 속에서 '섹스 심벌'의 이미지를 내포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충분히 지적이고 사람 말을 안 듣는 고양이와 여성에 대한 동일시가 일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뉴욕시립대 영문학과 명예교수이자 책 <고양이와 인간적 상상력>을 쓴 캐서린 M 로저스는 "고양이는 복종하지 않고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며 "여성을 통제할 수 없는 남성은, 여성을 통제할 수 없는 동물과 연관시킨다"고 말했다. '남자'로 상정되는 '사람' 말을 안 듣는 고양이와 여성에 대한 혐오 정서의 총체가 '캣 레이디'에 담겼다는 의미다.

'아이를 주겠다'는 말에 담긴 위협

▲ 테일러 스위프트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선언을 조롱하는 일론 머스크 엑스 게시물 ⓒ 엑스


'캣 레이디'를 향한 강간 위협은 역사적으로 유구했다. 이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 머스크의 언사다. '아이를 주겠다'는 말 속에 담긴 성폭력 암시, '고양이는 내가 지켜주겠다'는 말에서 나타나는 유해한 가부장성까지. 무자녀 여성들이 상시적으로 겪는 자기결정권 침해의 현장이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와 격돌했던 힐러리 클린턴은 최근 여성 저널리스트인 카라 스위셔의 팟캐스트에 출연, 머스크의 글을 두고 "강간을 말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며 맹비난했다. 클린턴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에 참여하는 트럼프 지지자 중 일부가 스위프트의 개인적 성공에 짜증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혐오는 그들 세계관의 일부이며, 그들은 강인함과 잔혹함, 남성다움을 지향한다"고 진단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스위프트는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줘요. 특히 소녀와 여성들에게 인생의 교훈을 전수하는데, 그들은 그것을 참을 수 없을 거예요."

실제 트럼프는 스위프트의 해리스 지지 선언 이후 거푸 역정을 내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나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싫다!(I HATE TAYLOR SWIFT!)"는 글을 올리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선 "아마도 시장에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미 대선의 주요 변수, '캣 레이디'의 결집

▲ 지난 9월 10일 미국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미국 부통령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렸다. ⓒ AFP/연합뉴스


'캣 레이디'를 향한 공격이 혐오의 재생산인 반면, 캣 레이디가 실제 수행하는 사회적 재생산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당장 해리스가 검사 시절부터 여성에 대한 성착취 근절에 앞장선 것, 대선 국면에서 임신중지권 보장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것만 봐도 그렇다. 밴스의 공격 당시 해리스의 의붓딸인 엘라 엠호프는 "콜(오빠)과 나 같은 귀염둥이 아이들이 있는데 (해리스가) 어떻게 '아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수년에 걸쳐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키운 '캣 레이디'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고양이는 회색 페르시안이었는데, 그는 이 고양이가 자신에게 '강한 의지와 자기 권위'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고 회고했다. 스타이넘은 새로운 세대의 여성과 소녀를 키우는 방법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고양이에게서 힌트를 얻자고 제안했다. "고양이는 당신이 자기를 만지게 놔두지 않아요. 고양이는 무엇을 할지 말해주고, 그게 다예요." 남성들이 고양이와 여성을 동일시하며 혐오했던 바로 그 면모, 독립성과 주체성은 바로 오늘의 여성들에 또 하나의 지표가 된다.

TV 토론 이후 해리스는 대선 가도에서 더욱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미국의 여론조사업체인 모닝컨설트가 17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해리스는 지지율 51%를 기록했다. 45%에 그친 트럼프에 6%포인트 앞선 수치이자, 토론 직전 격차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미국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18~29세 여성 10명 중 4명이 '진보적'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임신중지, 환경, 총기, 인종 등의 의제와 관련해 진보 성향을 가진 젊은 여성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캣 레이디'의 결집이야말로, 이번 대선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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