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바뀌어 거꾸로 달린 대문, 일부러 그런 겁니다
'못 먹는 사람 없어야'... 옛주인의 이웃 배려 돋보이는 나주 도래마을
▲ 나주 도래마을 홍기창 가옥의 돌담. 고택과 마을의 품격을 높여준다. ⓒ 이돈삼
'드넓은 나주평야 호남의 명촌/ 노령산맥 서기 받은 식산 자락에/ 세 갈래길 물줄기로 내천(川) 자를 그려서/ 아름답게 펼쳐진 도래마을/ 선비정신 얼을 살려 유교문화 지켜가는/ 선조들의 숨결 가득한 유서 깊은 도래마을….'
홍건석이 지은 '도래마을 노래' 앞부분이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를 피해 내려온 홍한의가 정착하면서 풍산홍씨로 자작일촌을 이뤘다. 지금도 풍산홍씨가 전체 주민의 3분의 2에 이른다. 주민들은 취나물을 많이 재배한다. 생으로 팔고, 말려서도 판다.
▲ 도래마을 입구에 있는 두 개의 정자 가운데 하나인 양벽정. 양반들이 풍류를 즐긴 정자다. ⓒ 이돈삼
▲ 양반들이 풍류를 즐긴 양벽정. 해마다 설날이면 마을주민들이 모여 합동 세배를 하는 곳이다. ⓒ 이돈삼
지난 13일 이곳을 찾았다. 마을로 가는 길, 두 개의 정자가 마주 보고 있다. 오른편이 영호정이다. 오래 전 도천학당이 있던 자리다. 풍류 공간으로 쓰인 다른 지역 정자와 다르다. 지금은 마을사람들 쉼터로 쓰인다.
왼편 양벽정은 정면 5칸, 측면 2칸에 3칸의 제실을 두고 있다. 양반들이 풍류를 즐긴 정자다. 빼곡하게 걸린 시문에서 옛사람의 멋을 엿볼 수 있다. 설날 마을주민들의 합동세배 공간으로 활용한다. 두루문화행복학습센터 주관 전통혼례식도 오는 10월 1일 여기서 열린다.
양벽정 앞은 연못이다. 마을 출신 홍연석이 내놓은 땅에 만들었다. 홍 씨는 미원그룹(현 대상) 임원을 지냈다. 고향 후배들 취업과 후원, 지역발전에 앞장섰다. 그를 기리는 공적비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양벽정 옆으로 경로당도 있다. 한옥체험관을 겸하고 있다.
마을 전체 건물의 반이 한옥인 이곳
▲ 홍기응 가옥의 솟을대문. 자세히 보면, 대문의 안과 밖이 바뀌어 있다. ⓒ 이돈삼
▲ 안과 밖이 바뀐 홍기응 가옥의 솟을대문. 옛주인의 독특한 이웃 배려 방식이 배어있다. ⓒ 이돈삼
마을에 한옥이 많다. 전체 건축물의 절반 가량 된다. 대부분 풍산홍씨 고택이다.
홍기응 가옥은 현존하는 풍산홍씨 종가다. 안채는 一자, 사랑채는 ㄱ자 모양을 하고 있다. 안채는 1892년, 사랑채는 1904년에 지어졌다.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 사당, 정원 등으로 이뤄져 있다. 계은고택으로 불린다.
사랑채에는 장서실도 따로 있다. 옛주인이 책을 가까이했다고 전한다. 주인 홍기응이 죽고 자손들이 외지에 사는 사이 책을 모두 도둑맞았다고 한다. 벽에 붙은 그림도 그때 없어졌다.
솟을대문의 앞뒤가 바뀐 것도 별나다. 춘궁기에 배곯는 사람을 위해 부러 거꾸로 만들었단다. 아무라도 대문을 타고 넘어와 곡식을 가져가도록 한 것이다. 주인은, 형편 어려운 이웃이 언제라도 곡식을 가져갈 수 있도록 대문 안에 이를 상시로 뒀다고 한다.
지금은? 대문은 여전히 거꾸로 달려 있다. 하지만 외지인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문이 늘상 잠겨있다. 비밀번호를 눌러야 문이 열리는 번호키가 지킨다. 나누고 베푼 옛주인의 생활과는 거리가 느껴진다.
▲ 홍기헌 가옥 사랑채. 도래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 이돈삼
홍기헌 가옥은 우남 홍범식이 살던 집이다. 초가지붕의 대문채와 헛간채, 그리고 기와지붕의 사랑채와 안채로 이뤄져 있다. 대문채는 1930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드나들 수 있도록 출입문을 따로 두지 않았다.
사랑채는 1790년에 지어졌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1905년 지어진 안채는 2001년 화재로 불타고 2005년 다시 지었다. 도래마을옛집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 홍기창 가옥. 정원이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 이돈삼
▲ 홍기창 가옥. 언제라도 정원이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민박 손님도 받는다. ⓒ 이돈삼
홍기창 가옥도 오래됐다. 안채가 1918년에 지어졌다. 본디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다. 안채의 둥근 기둥은 바닷물에 3년간 담근 비자나무를, 대청마루 판재는 먹감나무를 썼다.
안채로 연결되는 중문을 대문으로 쓰고 있다. 안마당 정원과 넓은 잔디밭도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서기당(瑞基堂)'이란 간판을 내걸고 민박손님을 받고 있다.
고택이 마을의 품격을 높여준다. 주변 풍광과도 잘 어우러진다. 굴뚝도 뒤로 배치하거나 건물 아래에 뒀다. 밥 짓는 연기가 담장을 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가난한 이웃을 위한 집주인의 배려다. 이웃집과 오가는 작은 샛문을 둬 소통한 것도 눈길을 끈다. 옛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이쁜 집들이다.
▲ 도래마을옛집. 시민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 이돈삼
▲ 홍기응 가옥 안채. 一자 모양을 하고 있다. ⓒ 이돈삼
도래마을옛집도 있다. 풍산홍씨 종가의 넷째 집으로 1930년대에 지어졌다.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지정한 시민문화유산이다. 시민이 모은 돈으로 터를 사고 복권기금으로 안채와 대문채를 복원했다. 별당채는 새로 지었다. 시민문화 공간으로 운영된다. 평일에 가끔 대문이 잠기는 건 흠이다.
감투봉 자락에 들어앉은 계은정도 멋스럽다.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 가운데에 제실을 뒀다. 홍기응의 할아버지 계은 홍대식을 기리는 정자다. 그의 아들 홍병희·태희가 지었다. 조그마한 연못과 조화를 이룬다. 1927년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지금 건물은 1992년 홍연식이 고쳤다.
▲ 도래마을 계은정.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에 제실을 뒀다. ⓒ 이돈삼
▲ 도래마을 경로당. 마을의 경관을 고려해 한옥으로 지어졌다. ⓒ 이돈삼
계은정에서 도래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마을 너머로 자리한 들녘이 누렇게 물들기 시작했다. 한낮 햇볕은 여전히 뜨겁다. 여름날이 갈 곳을 잃어 방황하는 것 같다. 마을 고샅엔 감이 떨어져 뒹군다. 담장 위에서 땡볕에 몸을 맡긴 호박덩이 빛깔도 변하고 있다.
돌담 너머로 보이는 집도 단아하다.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다. 마당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애틋하다. 청초한 샤프란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빈터에서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는 가을날을 노래한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예스럽다. 어렸을 뛰놀던 옛 기억 속의 마을이다.
▲ 홍기응 가옥의 뒤태. 계은정에서 내려오면서 본 모습이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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