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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뒤 몸이 불편해진 아빠, 그건 민폐가 아니에요

큰아버지 장례식 이후 "아빠 덕에 행복하다"는 어색한 고백을 하다

등록|2024.09.23 19:18 수정|2024.09.23 19:18
스코틀랜드로 온 지는 3년 되었습니다. 틸리라는 조그만 마을에 영국인 남편과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국적도, 자라 온 배경도,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곳의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기자말]
한국 사는 아빠와 자주 대화하고 가깝게 지냈던, 여든 넘은 내 큰아버지가 최근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종이 한 장을 남기고는 떠나가셨단다.

'미안하다.'

손바닥만 한 종이엔 빼곡하게 '미안하다'라는 말로 채워져 있었단다. 뭐가 그리 미안하셨을까.

▲ 아빠와 아주 가깝게 지냈던 친척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장례식장에 다녀온 아빠와 며칠 전 통화를 했다. 아빠가 괜찮을지 어떨지 걱정됐다.

"억울하다. 억울해."

고생만 하다 떠난 것 같다며 아빠는 이렇게 답했다. 아빠의 삶도 억울하냐고 묻자 아빠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나는 행복하지'라고 답한다. 직설적인 성격의 아빠가 그저 딸인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한 것 같진 않다. 아빠는 왜 행복할까?

"애들이 잘 지내고, 잔소리 하는 와이프도 있으니 난 행복해. 외로울 틈이 없잖아."

아빠가 웃으며 대답했다. 핸드폰 너머로 웃고 있는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도 아빠가 외로울 거라는 생각은 종종 한다.

남에게 밥 사주길 좋아하고 집으로 초대하길 좋아하던 아빠가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기 시작한 건 10년 전 중풍, 뇌졸중이 오고나서부터였다. 그 뒤로 전신 왼쪽에 마비가 와 숟가락 하나를 잘 들기도 어려워졌다.

▲ 아빠는 뇌졸중으로 움직이는 게 불편해진 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어려워했다. 아빠는 이 모든 걸 '민폐'라고 불렀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뒷모습(자료사진). ⓒ 스플래시


조금 상황이 나아져 지금은 혼자 화장실도 가고 산책도 하지만, 5분 걸으면 10분은 의자에 앉아서 쉬어야 한다. 말하는 것도 전과 달리 점점 어눌해지면서 사람들과 말하는 것도 불편해졌다.

다니는 교회에서 그룹끼리 소풍을 가는 날이면 아빠는 불안해했다. 느릿느릿 걷는 아빠를 사람들이 기다려줘야 하고, 의자나 화장실 위치를 계속 확인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아빠 말을 천천히 귀 담아 들어야 할 인내심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교회 사람들 생각과는 상관없이, 아빠는 이 모든 걸 '민폐'라고 불렀다.

7080 친구들이 많아진 뒤의 변화

마흔 중반인 내가 스코틀랜드 외국에 나와 살다 보니 내 나이 또래의 친구만큼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도 많아졌다. 내 친구들을 소개하면 이렇다.

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만난 제시카(83세)는 초등학교 아이들과 종이나 클레이(반죽)로 만들기를 한다. 교회에서 하는 토들러 그룹(Toddler's group, 0세부터 3세까지의 놀이 시간)을 돕는 티파니(80세)는, 아이들과 부모를 동그랗게 모여놓고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불러주곤 한다.

▲ 교회에서 하는 토들러 그룹(Toddler's group) ⓒ 제스혜영


금요일마다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공동체인 '라더'(Food ladder)라는 곳에서, 내 친구 폴은(78)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만들어 준다.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버둥대는 엄마들에게 이들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들에겐 '옳거니' 장단을 맞춰주는가 하면 문 밖에서 무료 음식을 가져갈까 말까 망설이는 이들에겐 커피 한 잔을 건네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나는 제시카, 티파니, 폴과 함께 자주 산책에 나선다. 가끔은 그냥 커피를 마시러 갈 때도 있다. 영어는 한국어와 달리 나이 많은 이에게 쓰는 존칭어가 따로 없고, 또 이름만을 부르는 게 일상이다 보니 훨씬 장벽이 낮아지는 기분이랄까.

▲ 초등학교 방과 후 공예 클라스 ⓒ 제스혜영


이해관계 없는 친구로 만나서 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나이를 까먹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에게 무례하다는 말은 아니다. '친구' 간 지켜야 할 존중과 신뢰만 있다면 나이는 문제 될 게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나는 이들 할아버지, 할머니 친구와의 대화를 좋아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처럼 느껴져 스릴도 있다.

한 할머니가 자기가 지금 사귀는 연하 남자친구와 울고 웃고 지내는 이야기를 할 때면, 듣는 나도 마치 연애를 하는 듯 설레곤 한다. 스물네 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 그 아들이 어릴 적 낙서했던 벽돌을 만지며 이야기할 때면 얘길 듣다 같이 펑펑 눈물을 쏟기도 한다.

한 친구는 중국 만리장성을 걷다가 자기 선글라스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고. 일단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장벽 밑으로 30분 이상을 걸어서 다시 내려가려고 했지만(구조상 그래야 했단다) 거기 있던 중국 군인이 친구를 보고는 안타까운 얼굴로 안경을 주워서 건네줬다는 이야기를 했다. 만리장성 장벽을 내려 가려던 친구가 흰머리 70대 노인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할머니 친구와 산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내 걸음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풀밭 사이로 솟아오른 검은 버섯들이 보이고 나무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검푸른 도마뱀도 보았다. 어느 날은 새들의 지저귀는 톤이 달라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보이는 게 달라지는 것이야 이해하는데, 청각도 더 예민해지고 발달할 수 있나? 새삼 신기했다.

'할머니 친구' 반기는 10대 딸... 우린 결국 다 연결돼 있다

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우리 집 열세 살 둘째는 앞집에 살고 있는 제니 할머니(73세) 집에 자주 들락거린다. 이래 봐도 제니 할머니가 재작년 가든대회 때 우리 지역구에서 2등을 하고 신문 앞면에 대문짝만 하게 사진이 찍혀 나왔었다. 사진 속 할머니 옆에는 한 아이가 수줍게 웃고 있었는데, 그 여자아이가 우리 딸이었다.

딸은 두 달 가깝도록 할머니와 함께 정원을 가꿨다는 이유로 '청소년 가든상'을 받았었다. 그날 이후로 딸은 물을 주거나 잡초를 뽑으러 자주 앞집으로 찾아가곤 했다. 어느 날엔 새로운 꽃을 산 할머니가 와서 꽃구경 해보라고 딸을 부를 때도 있다. 딸이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앞집을 자주 드나들 때, 자칫 귀찮을 수 있을 텐데도 제니 할머니는 매번 딸을 반갑게 맞아주곤 했다.

진짜 '할머니'인 내 엄마는 한국에서 살고 있고, 또 외할머니인 남편의 엄마는 런던에서 살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 살고 있는 우리 집에 할머니가 놀러 오는 날은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다. 이모저모로 할머니가 그리운 우리 딸에게, 73세 제니는 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어주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 할머니가 고픈 딸에게, 73세 제니는 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어주는 좋은 친구가 돼주었다(자료사진). ⓒ b3njamin on Unsplash


코로나 때도 느꼈듯, 이 세상을 사는 데 있어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빠가 한 '민폐'라는 말은 실은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하늘을 보면서 이 하늘을 같이 바라보고픈 사람이 있다거나, 노란 낙엽이 떨어진 거리를 손잡고 걷거나, 걷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행복은 만들어지고 전해지는 게 아닐까.

며칠 전 아빠와 통화하다가, 새삼 이렇게 말했다.

"아빠, 아빠 덕에 행복해요. 감사해요."

약간은 어색했다. 하지만 아빠와 통화를 끝내기 전 꼭 하고 싶은 말이었다.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실은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했고, 아빠가 알 것도 같아서 평소엔 굳이 말을 해야 하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놓고 말해야겠다고 느꼈다. 언제고 평생 내 옆에 있을 것 같은 아빠, 아빠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아이 없는 세상을 우리는 미래가 없다고 말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노인이 없는 세상은 과거가 없다고 말해야겠다.

대한민국은 OECD 가입국 중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 모두 1위라는 오명을 떠안고 있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과거 없인 현재도 없다. 지나온 과거를 쓱싹 모두 잘라버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러니 지금 어딘가에서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지 말기를 바란다. 인생은 외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 덕에 어느 평범했던 하루가 괜찮았다고 말할 사람이 반드시 주변에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어쩌면 그들에겐 구수한 된장국 한 그릇 같이 먹고 '맛있다' 소리칠 딱 한 사람만 있으면 족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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